〈시대의 불침번〉 |
‘40년 망명객’ 정경모선생의 자서전
제국주의에 빌붙은 친미·친일 비판
체험 바탕으로 풍성한 일화 엮어내
〈시대의 불침번〉정경모 지음/한겨레출판·1만8000원
정경모(86). 언젠가 한국 역사는 1970년 9월 유효기간 6개월짜리 여권을 손에 쥐고 일본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 40년 망명객의 시선으로 재조명될 날이 올지 모른다. 그것은 지금 대한민국 다수에게는 낯설고 충격적일 수도 있다.
그가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을 냈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저항’이다. 주류 세계에 대한 거부이며 전 생애를 건 요지부동의 싸움이다. 저항의 화살은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패권세력, 그리고 그들과 손잡고 자민족을 비참으로 내몬 대가로 영달해온 조국의 매판세력 내지 부역세력을 겨냥하고 있다. 정경모를 알려면 이것부터 살펴야 한다.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이 미국 국무부 외교정책기획실장 시절 작성한 ‘설계도’ 중의 일부는 이렇다.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일본의 영향력과 제반 활동이 조선에서 만주에 이르는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날은 우리 예상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압력을 완화하고 저지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인 유일한 방도인 까닭이다. …다시 한번 이러한 정책을 채용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일치된 견해다.” 전범국 일본을 동아시아 냉전 교두보로 재건해서 한반도와 만주일대를 다시 그 지배 아래 두도록 하자는 케넌의 생각은 그대로 실현되진 않았지만 기본전략은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정경모는 생각한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표현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방위를 위한 전초기지일 뿐이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6월6일 존 포스터 덜레스 미 외교고문(나중에 국무장관)은 “미국은 일본인이 중국인이나 조선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우월감을 십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공산진영을 압도하고 있는 서방 쪽 일원으로서 자신들이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일본인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메모를 남겼다. 전형적인 이이제이다. 미 점령군 사령관 하지는 휘하 장병들에게 “조선인들은 미국의 적”으로, “일본인들은 우리의 우호국민으로 간주한다”는 통고문을 보냈다. 한반도를 분단한 미국 군대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온 것이다. 한국전쟁은 이미 그때 시작됐거나 예정됐다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생각이며 정경모도 동의한다. 정경모의 시선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도 같은 해에 일어난 이란혁명과 팔레비 비밀경찰 간부들 처형, 미국대사관원들 인질 사태가 야기한 미국과 한국 권력자들의 위기의식과 연관지어 해석한다.
정경모(86) |
정경모를 망명으로 내몬 것은 미국·일본의 그런 신식민주의 전략에 빌붙어 아무런 민족적 비전도 없이 단물만 빨던 한국 권세가들의 한심한 작태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었다.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와 서울대 의대, 미국 에머리대에서 공부했고, 한때 이승만 장학금도 받았으며, 도쿄의 맥아더 최고사령부(GHQ)에서 문익환, 박형규 등과 함께 근무하면서 한국전쟁 휴전회담 때 미군 통역업무를 맡기도 했던 그는 미군조차 썩어빠진 친일파 인간 쓰레기들만 쓸어모았다고 욕한 이승만,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뒤 비슷한 길을 걸은 박정희와 그 친일·친미주의 후예들의 행각을 사정없이 비판한다. 판문점 포로교환 관련 회의에 한국군 옵서버로 파견됐던 유재흥 중장 얘기는 놀랍고도 쓰리다. 일본육사 26기 친일파 유승렬 대좌의 아들로 일본육군유년학교 시절부터 일본인으로 교육받은 유재흥이 장군으로 출세해서 미군 주도 아래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 한국군 파견 옵서버로 파견되고, 자신이 대표한 나라의 말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 일본말 통역사에게 기대야 했던 희극적 상황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가. 평균적인 한국인들에겐 “설마!” 싶은 그런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으로 비칠지도 모를 <시대의 불침번>은 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채워주는 귀중한 증언일 수 있다.
이런 내용이 딱딱한 증언집이나 역사 에세이로 끝나지 않은 것은 풍성한 일화들이 지은이의 일인칭 체험들과 얽혀 있고 또 특유의 구수한 구어체로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타협을 거부한 그의 “완강한 고독이 불의와 굴종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불명예를 씻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한 백낙청 교수의 평이 의미심장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