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모 선생의 길을 찾아서

[길을찾아서] 맥아더사령부의 동량들…‘문 고집’과의 만남 / 정경모

참된 2009. 9. 19. 02:10

[길을찾아서] 맥아더사령부의 동량들…‘문 고집’과의 만남 / 정경모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

한겨레

 

 

 

» 1950년 10월 미국 유학 중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GHQ)로 차출된 필자는 이곳에서 평생지기 문익환 목사를 만난다. 52년 어느 날 미군 장병들을 가르치는 제2국 직속의 언어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앞줄 맨 가운데가 문 목사, 그 왼쪽이 필자다.

 

 

 

1950년 6월을 맞이한 것은 미국 에머리대 대학원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식민지 시절 경기중학을 나오고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에 있다가 해방을 맞아 잠시 서울대 의학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곧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인데(47년 8월), 에머리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화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바로 그때 6·25 전쟁이 터진 것이지요.

 

당시 주미 대사가, 4·19 학생혁명 뒤 제2공화국 국무총리가 되는 장면 박사인데, 워싱턴의 장면 대사한테서 긴급전화가 걸려 왔어요. “지금 우리 신생 대한민국이 공산군의 침략으로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있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프란체스카 부인의 특명이니만치 가타부타 잔소리 말고 도쿄로 떠나 맥아더 사령부(GHQ)로 들어가라!”

 

그때 유학생으로 학비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참으로 기적적인 연유로 이승만 대통령의 알선으로 미국의 육영자금을 받게 됐지요. 그러니까 프란체스카 부인과는 대사관 행낭(파우치)을 통해 수시로 서신을 교환하고 있던 처지였어요. 자초지종은 후에 나올 화젯거리로 밀어두고, 아무튼 학교에는 6개월 휴학 신청을 내놓은 뒤 장면 대사의 지시에 따라 도쿄로 가는 미군 수송기에 몸을 실은 것이지요.

 

그 수송기는 도중 급유를 위해 웨이크 섬에 착륙했는데 바로 1주일 전, 그 섬에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회담을 했다는 사실을 그곳 사령부가 알려주면서 회담 장소까지 안내해 주더군요. 회담 날짜는 지금 자료를 펼쳐보니 그해 10월 15일이었어요. 그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맥아더 장군은 제8군을 중심으로 하는 휘하의 미군으로 하여금 38선을 돌파하도록 해, 파죽지세로 북진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이것이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르는 게 아닐까 우려한 트루먼은 말하자면 맥아더의 만용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웨이크 섬 회담을 자청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내가 도쿄에 도착해서 맥아더 사령부 근무를 시작한 것이 10월 하순께였겠지요. 그때쯤이면 미군은 이미 원산을 점령하고(10월 17일), 평양을 손에 넣은 뒤(10월 20일), 압록강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며, “홈 바이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 전에 미국의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낙관적인 무드가 팽창하고 있더군요.

 

그때 중국 공산당 총리 저우언라이(주은래)는 여러 차례 미국에 경고했어요. 만일 38선을 넘는 것이 한국군 단독이라면 묵인할 수 있으되, 미군 주력부대가 넘어온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맥아더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미군의 북진을 명령한 것이고, 그 만용 때문에 한국인들은 1·4 후퇴의 모진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맥아더 사령부 사무실에 출두해 놀란 것은 당시 서울대 총장이던 장리욱 박사, 문교부 장관 오천석 박사, 몽양 선생의 측근이었으며 젊어서 유럽 유학을 한 덕이었겠으나 셰익스피어를 줄줄 외고 있던 어학의 천재 황진남씨 등 한국의 일류 명사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로부터 40년 뒤 나와 손을 마주잡고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남북통일에 대해 회담한 뒤 ‘4·2 공동성명’의 선구를 이루게 되는 문익환 목사도 프린스턴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미군에 차출당해 사령부로 파견돼 와 있었지요. 그때부터 문 목사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으며 원래 일본인(지금은 한국적)인 아내와 결혼식 때 주례를 서 주신 분도 바로 문 목사였지요.

 

그가 나와 더불어 평양을 방문한 죄로 법정에 섰을 때, 일본에 망명한 ‘새빨간 정경모’의 꼬임에 넘어가 그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논고가 전개돼 나가더군요. 멀리서 그 꼴을 지켜보면서 그저 웃을 수밖에요. 문 목사의 별호가 ‘문 고집’입니다. 누가 꼬였다고 평양엘 갈 사람입니까?

 

 

»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맥아더 사령부가 한국의 일류 인물들을 자기 산하에 모아 놓았을까 오랫동안 의문이었는데 최근 그 의문이 풀렸어요. 미군이 한반도에서 밀려났을 때에 대비해 미국한테 한반도 재상륙을 요청할 수 있는 ‘괴뢰 정부’가 필요했다는 것이에요. 그 정부의 소재지는 동사모아섬이라는 것까지 이미 결정이 돼 있었다는 것이에요.

 

이 사실을 내게 알려준 사람은 친구인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인데, ‘만일 그런 사태가 정말로 벌어졌더라면 정경모 당신도 대한민국 외무부 차관쯤의 출세는 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하며 가가대소한 일도 있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기사등록 : 2009-05-05 오후 06:00:01 기사수정 : 2009-05-05 오후 08:4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