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WTO체제하의 농업활로를 개척하는 전농 강완묵(1995.4.24)

참된 2010. 7. 11. 00:59

청보리 사랑의 아스팔트 농사   실시간음악감상 이곡을 듣습니다.(출처 피엘송닷컴  http://plsong.com/home.php)

 

 

 

 

제목 [전연50]WTO체제하의 농업활로를 개척하는 전농 강완묵
번호 241 분류   조회/추천 149  /  1
글쓴이 김형준    
작성일 1995년 04월 24일 10시 23분 27초

 

 

WTO체제하의 한국농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강완묵 (전농 사무처장)

박 홍 순(전국연합 조직국)



양재동 꽃시장근처에 있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무실 이곳저곳에는 빨간색,파란색 천들이 수북히 쌓여져
있었다. 일요일날의 농민대회에 쓸 머리띠를 만드느냐고 상근일꾼들
이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는 중이었다. 강완묵사무처장은 큰 손으로
반갑게 맞아주며 최진국 기획국장과 김용순 협동사업국장을 소개해
주었다.


전농의 국장급 이상의 간부들은 모두 농사를 직접 짓는 농사꾼들
이다. 일주일에 이틀씩 돌아가며 서울사무실 당직근무를 하는데 대
회준비를 위해서 지금은 모두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매일같이
서울에 올라와 있으면 올 가을 추수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구리
빛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최진국 기획국장이 "아무래도 손이
적게가니까 다른사람들에 비해 소출이 작기야 하겠지요"라고 하며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얼마전 김준규정책실장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농민활동가들의 농사비법이 따로 있는데 예를들면 농민활동가들은 농약을 칠때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든 한밤중에 들에 나가 훤히 불을 켜고 농약을 친단다. 그렇게 하
면 새벽녘에 내린 이슬에 농약이 용해되어 약효가 오래가기 때문에
남들 2~3번 농약칠 때 한번으로 족하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루종일 사람만나랴 회의 참석하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잠 안자
가면서 농사일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 먼길을 달려와 집회참석하
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랴. 또 그사이에 축나는 몸은 어떻게
건사한단 말인가?


"그래서 저희들은 항상 국장님들 안색을 유심히 살펴보지요. 그러
다가 낌새가 안 좋다 싶으면 처장님께 보고해서 보약을 구해다 드리
거나 휴식을 권유하거나 하여튼 집단적으로 대책을 강구합니다" 한
상근일꾼이 귀뜸해준 말이다. 또 주말이면 본부 상근일꾼들이 가까운
지역의 간부일꾼집에 가서 직접 농사일을 거드는 것도 일상화된 일
이란다. 그야말로 한가족과 같이 일하고 함께 싸우는 깊은 동지애와
운동에 대한 헌신성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농번기에 웬 농민대회?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쓰면서 대회준비에 여념이 없는 전농일꾼들
에게 더이상 누가 되지 않도록 한구석에 붙어있는 여농사무실로 들
어가 강원묵사무처장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 : "농민대회가 열리는 4월 23일은 농촌에서는 못자리가 시작되는
바쁜 농번기로 알고 있습니다.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농민대회를 꼭
개최해야만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강 : "벼농사에서 못자리를 다하면 절반농사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
다. 지금은 일년농사 중 매우 중요한 시기라 농민들이 농사현장을 뜨
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쁜 농사철에 우리가 아
스팔트농사를 함께 지어야 하는 데는 그만한 절박함이 있습니다. 우
리는 지난해까지의 투쟁을 통해 농축산물 수입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WTO이행특별법을 쟁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
법을 실현하기 위한 시행령을 만들지 않고 어물쩡하는 사이에 벌써
미국산 오렌지 수입이 들이닥쳤습니다. 또 올 첫번째 임시국회가 열
리면 다루기로 여야가 합의했던 농정개혁7대과제문제도 이번 3월국
회에서는 지자제문제에 밀려 한마디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올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정부와 국회에 WTO특별법의 시행과
농정개혁의 즉각적 실현을 촉구하고 국민적 여론을 불러일으켜야만
올해 농사가 제대로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지자제국면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번 농민대회는 필요합
니다. 그간 각종 선거시기의 대응들은 농민운동에 일정한 부담을 주
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후보전술에 매몰될 때 조직내부가 갈등을 겪
고 심지어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조차 있었습니다. 지자제선거가 본격
화되기 이전에 농민운동의 정치적 잇슈를 내걸고 대중투쟁을 조직함
으로써 지자제선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의 기조를 잡아가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박 : "예년의 경우를 보면 특별한 현안문제가 발생하여 농민들의 직
접적인 이해관계가 현실적으로 맞물릴 때 이에 대응하는 투쟁형태로
전국집중의 농민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
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목적의식성이라고 할까요 뭔가 이전의 대회
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강 : "예 바로보셨습니다. 이번 대회의 특색은 농민운동주체의 목적
의식적 사업배치 속에서 대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전
농의 중앙지도력구성은 예년에 비해 아주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중앙집행구조도 변화가 있었는데 WTO체제하에서 변화하는 농업현
실에 대한 설득력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정책실 기능을 확
대하였고, 사무처는 소수정예로 사업능력을 집중시켰습니다. 분야별
상설위원회도 책임있는 간부들을 중심으로 짜서 명목상으로가 아니
라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었고, 간부들의 현장지
도사업을 대폭 강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중앙집행체제의 정비를 기
반으로 우리는 이번 대회의 준비사업을 통해 현장조직의 정비에 나
서고 있습니다. 도단위 토론회 ,활동가 교육 등을 통해 이번 대회의
의의와 필요성에 대해 공유하고 농민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결
의들을 모아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가두시위가 없이 옥내집회로
하고 문화행사와 함께, 그동안의 투쟁성과에 대한 공유와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한 결의의 장으로 기획하고 있는 것도 교육과 실천을 통한
조직의 정비라는 우리의 목적의식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3년 동안 전농은 정말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였다. 군단위
회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1년에 평균 14차례의 집회시위투쟁에 참여
해야 했다고 하니, 활동가들이 많이 지치고 조직정비와 교육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에서 지난 UR투쟁
이 활동가 중심의 투쟁이 아니었냐 하고 푸념하는 것도 이해가 갈만
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농업과 국민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기에
투쟁의 당위성이야 누가 시비를 걸 수 없는 것이었고, WTO이행특
별법을 쟁취하고 농정개혁 7대과제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등
싸움의 성과도 적잖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전면화될 수입개방현실 속에서 민족농업을 사수하고 농민운동을 발
전시킬 비책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WTO체제하의 한국농업의 활로

이 중요한 시기에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최고의 농민운동조직인 전
농의 집행책임을 맡은 강사무처장의 구상을 들어보고 싶었다.


박 : "WTO체제하에서 한국농업의 활로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
니까?


강 :" 원하든 원치 않던 이제 선진국들의 농축산물들이 무더기로 쏟
아져들어오고 농축산물가격은 폭락할 것입니다. 이에따라 농민들의
생활처지는 어려워지고 농업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통적 소농경영체계로 만은 농업의 장
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전업적 가족농에 기반한 협동경영체의 육
성과 생산과 연계된 가공,유통사업의 개발을 위한 연구가 필요합니
다. 보다 발전된 농업기술의 개발과 특히 소비자가 함께하는 농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역특성에 맞는 품목을 개발하여 변화된 농업조
건에 적응할 수 있는 지역별 농업경영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
다. 정현찬 부의장님이 계시는 경남 진양에서는 230호의 농가가 하
우스 피망을 집단적으로 재배하여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농민들도 작목에 따라 분화되고 다양화,전문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품목별 조합에 관해서도 적극적 관심을 갖고 조직할 것입니
다.


관에 대한 태도에도 일정한 변화가 요구됩니다. 관을 활용한다고
할까요 견인한다고 할까요 이전과는 다른 적극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조직화된 농민의 힘으로 농정체제를 개혁하고 농업행정의 집행을 농
민의 입장에 맞게 강제해 들어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지방의회나
자치단체장도 장악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박 : "변화된 현실 속에서 농민운동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전농의 대책을 듣고 싶습니다."


강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농민들의 조직화전망은 밝다고 봅
니다. 89년 제가 전북임실에서 농사를 지을 때 고추값 폭락에 대응하
여 싸움을 조직한 적이 있는데, 작은 군단위에서 3천명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40여일간을 싸운 적이 있습니다. 고추 하나만 갖고도 한
군단위에서 3천명이 들고 일어나 싸우는데 이제 소,돼지,채소,과일 심
지어 한국농민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쌀마저 값이 폭락되어 버리면
그 이후에 일어날 사태는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농민들이
보수적이다라고 말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농민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일종의 삶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동안 짓
밟혀 살아오면서 인내하는 것이 몸에 배였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좀
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업의 파탄이 현실로 닥치고 농민
스스로 나서는 계기가 오면 그 폭발력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
다.


그래서 올바른 지도를 준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전농의 모든 회
원들이 농민투쟁의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단련되어
야 합니다. 전농은 자기혁신을 통하여 거듭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
다. 교육을 사업의 중점에 놓고 조직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군단위
농민활동가교육과 수련회 등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지도자로
서 가져야 할 품성과 자질, 원론과 실천방도에 관해 다양하게 능력을
갖추어 갈 것입니다. 협동조합을 민주화하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단
위농협의 직선제를 쟁취해낸 것은 농민운동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아
직은 조직역량의 한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전농은
농민단체들간의 연대에도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농은 농민
단체협의회에 가입하기로 하였습니다. 후계자조직도 함께 참여시켜
전체농민진영의 폭넓은 단결을 이룩하려고 합니다."

우리집에는 머슴이 한명 있습니다

올해 나이가 서른아홉살인 강사무처장은 운이 좋아 출세가도를 달
려온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농삼아 얘기한다. 81년 고향마을 선배의
소개로 기독교농민회가 주최한 교육을 받고 부락의 청년들을 묶어
기농 부락지회를 조직한 것이 농민운동의 시작이었다. 군대에서 제대
한 86년 면농민회를 조직하고 그후 면농민회 총무 1년, 군농민회사무
국장 3년, 도연맹사무국장 3년을 거쳐 중앙의 사무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농민운동에 모든 삶을 다 바치기로 결심한 계기가 언제였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한동안 추억을 더듬듯이 생각에 잠겨있던 강사무처장
은 "그것은 아마도 89년 초 고추싸움을 하다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였던 것 같다"고 대답한다. 전북 임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강사무처장은 군대갈 때까지만 해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농민을 위
해 일하는 법률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의
피는 속일 수 없었던 지라 88년 전북을 휩쓴 수세투쟁과 89년의 고
추전량수매투쟁을 직접 조직하면서 신념에 찬 농민운동가로 자리잡
게 된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돕니다. 두달간 밤잠도 안자면
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던지 임실읍내로 들어오는 3개의 도로를 모두
메운 경운기시위대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
습니다. 시내를 장악한 우리의 기세에 혼비백산한 경찰들과 행정관청
사람들은 자취를 감춰버렸고, 임실읍내는 말그대로 농민해방구가 되
었습니다. 비록 제가 구속되었지만 우리는 결국 승리하였고, 그 싸움
은 영원한 감동으로 제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전북도연맹은 전국의 여러 지역농민회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농
민회로 정평이 나있다. 현 이수금 전농의장도 전북도연맹소속이다.
과거 기독교농민회,가톨릭농민회,농민협회 등으로 분열되어 있던 전
북의 농민운동이 오늘날 도연맹 집행부를 중심으로 굳게 단결하여
큰 힘을 낼 수 있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강사무처장의 역할이 크지
않았겠느냐고 넌지시 묻자 "그것은 모두 선배활동가들과 지역의 중
심활동가들이 일관된 자기혁신으로 잘못된 점은 자신의 책임으로 돌
려 반성하고, 실수가 있는 동지들은 폭넓게 감싸안으면서 조직을 중
심에 놓고 사업한 덕택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한다.


논농사 3천평,밭농사1천평을 짓는 강사무처장은 주 5일은 전농사업
을 위하여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우리집에는 머
슴이 한명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사연을 알고 보니 전북도연맹에
서 강사무처장을 중앙으로 올려보내면서 활동가 한명을 조직의 결의
에 의해 강사무처장집 농사를 짓도록 파견하였다고 한다. 흔쾌히 머
슴살이를 자청한 그 활동가도 대단하지만 동지의 생활문제까지 집단
적으로 책임져주려하는 따뜻한 조직의 배려,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전
농이 있게한 원동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은 넓게 열어놓되, 심사는 철저히 하자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날도 어두워지고 시장기도
돌고 하여 남겨진 질문들을 서둘러 꺼내 놓았다.


박 : "6월에는 지자제선거가 실시됩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농민
후보는 얼마나 됩니까?"


강 : "전농의 후보방침은 한마디로 '문은 넓게 열어놓되, 심사는 철저
히 하자'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전농이 추천하는
조직후보들은 서약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선여부를 떠나 조
직에 충실하게 복무하겠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의정활동에 있어서도
조직에 보고하고 조직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 등이 있
습니다. 물론 후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는것은 아닙니다.
조직이 배출한 후보인 만큼 철저히 조직이 책임져야 합니다. 군농민
회가 후보를 추천한다면 적어도 주요활동가 한둘씩은 보좌관으로 붙
여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실제 조직후보는 당초 거론되던 100여명
수준의 절반이하로 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조직결정은 원칙적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농민운동을 하던 사람들
을 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선거에 나갔던 사람들이 선거
가 끝나고 나면 조직에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농민회의 품은 넉넉합니다. 일시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였을 수도
있지만 농민을 위하여 진정으로 복무할 자세와 각오가 되어있는 사
람이라면, 개별적으로라도 처지에 맞게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
적 틀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전국연합의 정치위원회도 비슷한 취
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 :"농민운동은 활동기반이 지역사회에 뿌리박고 있어서 그런지 몰
라도 다른 계급계층운동에 비해 지역운동에 대한 친화력이 높은 것
같습니다. 지방화 시대의 개막과 함께 농민회의 역활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강 : "그동안 중앙중심의 농정에 대한 쵠일적 투쟁만을 해 온것은 아
닌가하는 자성이 있습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군농민회가 나서 자
기지역의 농정에 대한 책임주체로 나서야 합니다. 지방의회에 참여하
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구요. 저는 요즘 개인적으로 구상을 해
보고 있는데, 각 지역마다 군농민회가 중심이 되어서 지역의 발전전
략을 책임질 수 있는 '지역발전연구소' 같은 것을 하나씩 만들면 어
떨까 합니다. 농민회가 배출해낸 훌륭한 지역일꾼들이 많이 있습니
다. 이러한 분들을 묶어세우고 지역사회에 관심이 있고 뜻이 있는 분
들을 모아 지역현안과 장기적 발전전략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하
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최근에 시군통합이 진행되면서 연합운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
니다. 농민운동의 조직역량이 아직은 미치지 못해 연합운동을 충분히
뒷받침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민
족민주운동세력이 대안있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도 농민들
과 노동자, 청년, 시민, 상인 들이 포괄적으로 연대하고 정치적인 힘
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국연합 일꾼들은 참 소중한 분들입니다

박 : "끝으로 전국연합에 바라는 말씀있으면 해 주십시오."


강 : "저는 전북도연맹에서 전북연합하고만 사업해봐서 아직은 경험
도 적고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앙에 올라와서 보니
각도별로 농민회와 연합과의 결합력이 편차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
니다. 중앙의 결합도 중요하지만 현장단위에서 부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북에 있을 때 국민회의가 결성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의 역량이
분산되고 연합상근일꾼들이 어렵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
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합이 너무 부문의 실정을 모른다, 무리한
것만 요구한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부문이 사람도 내놓고 연합을 강화해갈 때 연합도 보다 부문의 실정
에 대해 잘 알게되고, 상호 애정을 갖고 상승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선약이 있어 식사를 같이 못하고 떠나는 필자를 못내 아쉬워하며
문밖까지 따라나온 강사무처장은 필자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체
온을 타고 굳은 결의의 말이 전해옴을 필자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
다.


"전국연합의 일꾼들은 참 소중한 분들입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
여 우리 한번 힘껏 일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