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모 선생의 길을 찾아서

뒤틀린 현대사 바로잡는 ‘40년 망명객’의 증언(2009.5.3)

참된 2009. 9. 18. 10:29

                                    

                                      정경모(85·일본 요코하마 거주)씨

 

 

 

뒤틀린 현대사 바로잡는 ‘40년 망명객’의 증언

길을 찾아서 새 연재 시작하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한겨레 한승동 기자 김경애 기자

 

 

자서전 같은 것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길을 찾아서’를 위해 회고록을 쓰다 보니 이젠 그냥 (저 세상으로) 갔으면 어찌될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써 달라고 해서 참 고맙다.”

 

“한국 못간다…안간다” 민족주의 외길
해방공간 내부서 순도높은 체험담 전개
망명·방북…‘시대지성’의 인생역정 펼쳐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40년 ‘망명객’ 정경모(85·사진·일본 요코하마 거주)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쟁쟁했고, “이제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나이”라곤 했지만 기억 또한 펄펄 살아 있었다.

 

2002년에 첫 한글판이 나온 그의 저서 <찢겨진 산하>(한겨레출판부)의 발문에서 원로 언론인 임재경씨는 그 책을 읽고 받은 충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렸을 적 전등 소켓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갑자기 온몸에 전류가 관통할 때의 느낌이었다. 인간이 가장 큰 감명을 받는 순간은 지나쳐버린 진실과 다시 마주칠 때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그 글을 쓸 때 임씨는 1945년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결정한 5년동안의 이른바 ‘해방공간’의 좌우대립을 이데올로기 대결로만 파악하는 우리의 ‘상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것을 그 책을 통해 깨달았다면서, 싸움의 핵심은 친일행위와 농지 소유관계 모순 즉 친일파와 토지개혁 문제 처리를 둘러싼 현실적 갈등이었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찢겨진 산하>와 <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이제 미국이 대답할 차례다> 등 한국에서 출간된 정씨의 책 3권은 우리가 우리 현대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실들이 실은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그리고 그 잘못된 인식이 지금 우리 현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비틀어놓고 있는지를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81년께부터 일본어 잡지 <씨알(아래 아)의 힘>과 강연들을 통해 한국현대사에 대한 연구와 발언을 계속해온 그는 오랜 지기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제1권을 일본어로 번역했고 황석영의 <장길산> 전 10권 역시 일본어로 번역(오는 9월 후지와라출판사 출간 예정)했다.

 

간간이 외부활동도 하지만 “요즘엔 주로 ‘길을 찾아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그의 글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운명은 경기중학 졸업 뒤 일본 게이오대 의학부에 들어갔을 때 일본 하숙집 주인 모녀(그 집 딸이 지금 그의 아내다)와의 조우를 통해 한 번 물줄기를 틀었고, 광복 뒤 귀국해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가 47년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가 화학공부를 하고 있던 그를 맥아더의 일본점령군(미군) 사령부(GHQ)에 밀어넣은 당시 주미 한국대사 장면(제2공화국 국무총리)씨의 긴급전화 한 통화로 다시한번 방향을 틀게 된다. 그 뒤 한국전쟁 휴전회담 통역자로 판문점에서 목격한, 어떤 역사책도 알려준 바 없는 놀라운 사실들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은 소름마저 돋게 한다.

 

한때 그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골수 친일파들을 기용해 단독정부 수립을 꾀하며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조봉암 등 정적들을 배제해간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의 ‘뉴라이트’적 민족사 인식의 허구성을 깨뜨리는 역사적 증언일 수 있다. 이승만의 정치적 후계자라할 박정희 군사정부를 겪으면서 느낀 환멸과 자각은 결국 70년 망명으로 이어졌다. 그길로 40여년, 어떤 면에선 가장 순수하고 철저한 민족주의자이기를 그만둔 적 없는 정씨는 여지껏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여러 차례 전화해 귀국을 종용했으나 89년 문익환 목사 평양방문에 동행한 그의 전력을 문제삼은 ‘공안의 벽’ 앞에 좌절해야 했던 그의 얘기는 서글프고 아프다. 6살 위인 문 목사와는 방북 당시 이미 40년 지기였던 그의 평양행에 얽힌 얘기들, 일본우익들에 관한 섬뜩한 진실들, 그를 망명으로 내몬 부패한 한국 지배세력의 생얼굴들, 그리고 김대중씨 개인과 민주화 이후 정권에 대한 복잡한 심경 등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수많은 사실들이 <한겨레> 연재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엮는 또 다른 씨줄과 날줄로 당당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단재 신채호와 백범, 몽양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그는 장준하, 문익환도 그 계열선상에 올렸다. 그리고 “나는 거기(한국)에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야. 여기서 이대로 꺼지는거야”라며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선각들이 그 제단에 몸을 바쳐야 했던 불운한 민족사의 과제는 아직 완수되지 못했으며, 이미 자신도 동참해온 그 대열에 여생까지 바치겠다는 얘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요코하마/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기사등록 : 2009-05-03 오후 06:28:45 기사수정 : 2009-05-03 오후 06:3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