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예술

<연합초대석> '염쟁이 유씨'의 유순웅씨

참된 2008. 3. 29. 19:32

                                              

 

 

                                              

 

 

 

<연합초대석> '염쟁이 유씨'의 유순웅씨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6.09.05 09:13 | 최종수정 2006.09.05 09:13


죽음 소재로 삶의 메시지 전하는 1인극
관객몰이 이어지며 거듭 초청.연장공연
"청주에서 지역연극인으로 계속 남고파"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편집위원 = 지난 20년 간 지방에서만 활동하던 한 연극인이 중앙 무대에서 완전히 떴다. '염쟁이 유씨'의 배우 유순웅(43) 씨다. 이 1인극의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 두레홀1관은 요즘 매일 밤 관객으로 가득 찬다. 관객이 넘쳐 보조석까지 내어와야 할 판이다. 이 모노드라마를 일곱 번이나 본 관객도 있다. 지난주에는 도쿄에서 인터넷을 통해 공연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는 재일교포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 무대에서의 그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 청주 '촌배우'는 그래도 고향 무대가 좋단다.

"행복하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연극을 찾아주니까요." 그렇지만 그 인기 때문에 서울에 눌러 있게 될까봐 겁난다는 것이 충청도 사투리의 유씨 얘기다. "연극도 좋아하지만 제 지역도 좋아하지요. 지역에서 뭔가 연극활동을 해 보겠다고 한 건데…. 그래서 자아도취 안하려고 공연 끝나면 거의 매일 밤 버스 타고 청주로 내려갑니다."

'염쟁이 유씨'(김인경 작.위성신 연출)는 대를 이어 평생을 사체 수습하는 일만 해온 염쟁이의 얘기다. 염쟁이는 한 주검을 앞에 놓고 생애 마지막 염을 하면서 기자를 불러들여 죽음과 삶에 대한 얘기를 한다.

"공들여 쌓은 탑도 언젠가는 무너지지만, 끝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건 그 탑을 쌓으면서 바친 정성이여.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정성을 쏟는 게지.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더 소중한 게여."

이런 대사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무거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관객이 극중 인물이 되면서 극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웃음 속에서도 관객들은 염쟁이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관객과 (연극을) 함께 한다는 것 때문에 오신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또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으니까 좋아하는 것 아니겠어요? 여담이긴 하지만 1인극이고 공력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땀이 정말 많이 나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안쓰럽게 봐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실제 무대에서 보면 얼마나 땀을 흘리는지 그의 양복 자켓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보일 정도다.

관객 중 한 사람은 기자 역을 맡는다. 그는 극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유씨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몇 사람은 또 극중 망자의 자녀와 며느리 역할을 하며 때로는 통곡도 하고 때로는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연기를 한다. 관객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 예상치 못한 열연은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요소다.

"지난 20년 간 해온 연극을 1인극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는데 연극을 함께 하던 김인경 씨가 저를 위해서 대본을 만들어왔어요. 그 친구가 써온 것을 같이 연습하면서 수정하고 또 연습하고 수정하고 해서 지금의 작품이 만들어졌어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남의 죽음을 구경꾼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한 거죠."

'염쟁이 유씨'는 2004년 5월 청주시의 '연극창고 새벽'이라는 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작품이 괜찮다는 평가 속에 지방순회공연을 하다가 올해 2월 국립극장과 모아엔터테인먼트 공동의 '2006 시선집중-배우전' 작품으로 선정되면서 공식으로 서울무대에 섰다. 그후의 대학로 마로니에극장 공연은 '대박'이었다. 이어 공연요청이 쇄도했고 7월부터는 지금의 두레홀 공연이 시작됐다.

"다음달 21일까지 연장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그게 끝나면 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같은 데서 지원을 해서 노인복지관이나 교도소 같은 데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랬다가 11월에는 두레홀에서 다시 공연을 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구두제의를 받아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에서 그렇게 한 작품을 가지고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내친 김에 서울에서 다른 작품을 갖고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연극은 지역에서 계속 하고 싶어요. 작품을 잘 만들면 어디 가서나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도 알게 될 거구요. 욕심 같으면 이 작품이 더 큰 인기를 얻으면 청주에서만 해 보고 싶어요. 지역에도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이 연극은 청주에 와야만 볼 수 있다' 뭐 그런 거죠. 그렇게 되면 지역도 희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 한 관객이 자기가 도쿄서 왔는데 연극 참 잘 봤더라고 하더란다. 처음에는 다른 일로 서울 왔다가 우연히 연극을 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연극이 1차 목적이고 온 김에 다른 일도 보고 간다고 해서 놀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요즘에 뮤지컬 매니아 중에는 오리지널 작품 본다고 해외로 가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지방의 연극 매니아들이 오리지널 연극 본다고 서울 오는 것처럼 서울 사람이 지방의 연극을 구경하러 가는 일이 많아지면 참 좋겠습니다."

그는 또 중앙의 언론이 지방문화에 더 많은 지면과 전파시간을 할애했으면 좋겠다는 강한 희망도 전한다. 지역신문도 자기지역 문화를 애지중지 키워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제 연극이 유명해지니까 청주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제게 하는 말이 '왜 이런 좋은 작품을 서울서부터 먼저 하느냐'는 거예요. 사실은 청주에서 먼저 했던 건데…. 그러니까 서울에서 떠야 지방언론에서도 다루고... 그러다 보니 능력있는 지역 연극인이 서울로 떠나게 되는 거지요."

그는 대학로 공연도 좋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연에서도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시골에서 나이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공연하는 게 참 좋아요. 그런 분들은 '평생 연극 처음 봤다' 하시면서 아주 즐거워하는 거예요. 경북 성주의 어떤 노인회관 개관식을 하는데 한번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간 적도 있어요. 줄 돈은 충분치 않고 차비하고 오이 몇 박스 주겠다고 해서 간다고 했죠."

유씨의 말을 듣다보면 굳이 그가 청주에서 연극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옷을 적실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린 채 충청도 사투리로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하는 극중 유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어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만 못하다구들 허구, 어떤 이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허는데, 사실 죽음이 있으니께 사는 게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게여. 하루를 부지런히 살면 그 날 잠자리가 편하지?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여."

☞대학로 두레홀1관에서의 '염쟁이 유씨' 공연은 10월21일까지. 공연문의 02-741-5970

kangfa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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