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예술

[드림이만난사람] 놀이패 신명 박강의 대표

참된 2008. 3. 20. 17:44

 

[드림이만난사람]놀이패 신명 박강의 대표

황해윤 nab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07-11-28

 

위 사진과 아랫글은 광주드림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2007년 광주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중심에 놀이패 `신명’이 있다. 82년 창단 당시부터 오월 정신을 알려온 신명이 시청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공연을 하기로 돼 있던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거부당했다. 굳게 닫힌 공연장을 뒤로 하고 공연장 `밖’에서 진짜 마당판을 벌였다. 질문들은 쏟아지고 있다. 우리에게 80년 오월은 무엇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았는가. 또 우리가 추구하는 문화도시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놀이패 신명 박강의 대표를 만난 이유다.


 많은 이들에게 놀이패 신명은 5월과 동의어다. 5·18을 겪지 못했던 K는 “내게 있어 광주의 5월을 알게 해준 것은 신명의 오월굿 <일어서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5월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어려웠던 서슬퍼렇던 83년 YMCA 다락원 마당에서 대사없이 올려진 <넋풀이>는 5월을 겪었던 많은 이들을 울렸다. 이후 88년 본격적으로 5월을 이야기한 오월굿 <일어서는 사람들>이 초연됐다. 이후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는 <일어서는 사람들>은 광주 사람들의 가슴에 한을 풀어줬고, 5월의 비극을 알려냈다.

 신명의 역사가 그렇기도 했다. 전신인 극회 `광대’가 농촌의 문제를 다룬 <돼지풀이>를 성공리에 공연하고 이산가족과 남북분단의 아픔을 다룬 <한씨년대기>를 연습하던 중 80년 5월 항쟁이 일어났다. `광대’의 단원들은 전원 오월 항쟁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싸웠다. 수배되고 죽고 잡혀가고 `광대’는 와해됐다. 82년 몇몇이 다시 모여 추스리고 의기투합해서 꾸려진 신명. 그 이후 가장 낮은 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오월 정신을 치열하게 이야기해왔던 놀이패 신명. 그런데 그 신명이 5·18민중항쟁이 국가 기념일이 된 지도 10년이 지난 2007년, 광주에서 탄압을 받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80년초 전투경찰과 사복형사들에 둘러싸인 채 공연을 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겪은 적은 처음이다. 힘들게 공연을 했지만 공연장이 원천봉쇄 당한 적은 없었다. 젊은 배우들은 아마 처음 겪는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원천봉쇄 당한 공연 경험 처음”

 86년 입단한 신명 박강의 대표. 80년대 군부독재의 눈을 피해 공연을 한 적이 많았지만 지난 23일, 24일 공연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연장 밖에서 이뤄진 공연. 공연을 하는 동안 주위엔 전투경찰과 사복경찰, 그리고 공무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서성였다. 감시받으며 공연을 해야 했던 배우들과 관객들. 시대는 훌쩍 뛰어 80년대로 돌아갔다. 민주화가 됐다고 해서 국가 폭력은 감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권력기구들의 폭력적 관성은 언제든 되살아난다고 했다.

 “단원들과 많은 논의를 했다. 여기서 문제제기를 하면 앞으로 광주시로부터 많은 불이익이 있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싸우는 것으로 정리했다. 만약 신명이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월정신 계승을 내걸고 있는 단체다. 죽은 오월정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현재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공연을 하지 못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권력의 폭력적 관성은 사라지지 않아

 문제(?)의 공연 <도깨비 난장-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은 시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 폭력을 이야기 한다. 신명은 이번 일로 제대로 된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한 셈이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민중들의 현실은 70·8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당시 불렀던 노래들이 오늘날 정서에도 맞아 떨어지더라.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원들간의 결속과 결의도 더욱 단단해졌다. 지배계급의 위선을 조롱하고, 뒤틀린 사회를 비꼬는 비판정신. 하루 하루 살아가는 민중들의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는 `마당극’에 대한 신념들은 더욱 커졌다.

 “시청 비정규직 어머니들의 싸움은 굉장히 상징성있는 싸움이다. 단순한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다.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자본과 권력의 폭력적인 실체를 보여주는 싸움이다. 어머니들은 사회를 대신해 굿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련의 시기지만 `희망’도 봤다.

 “이번 일로 많은 문화예술단체들의 연대와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적도 분명하지 않고 위기의식도 별로 없는 정말 싸우기 힘든 상황이지만 시청비정규직 어머니들을 보면서 힘도 났다. 어머니들은 예전의 힘없는 해고자가 아니다. 그들은 싸우면서 강해졌다. 쫓겨난 해고자가 아닌 각성된 노동자의 모습을 봤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먹밥을 만들어 먹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5월의 많은 주역들은 관료들이 아닌 시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같은 민중들이었을 것이다. 신명 공연 날 추위에 떨던 관객들에게 주전자며 휴대용 가스를 바리바리 들고와 뜨거운 차를 끓여 먹이던 해고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오월 정신 계승을 위한 작품들을 올릴 것이고 오늘을 살고 있는 민중들,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올릴 것이다. 신명만의 방식을 찾아내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신명만의 방식으로 `오월’ 이야기할 것”

 담양 폐교에 자리잡은 놀이패 `신명’. 신명이 그간 올렸던 작품들을 쭉 나열해 보면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잡히는 것들이 있다. <안담살이 이야기> <넋풀이> <일어서는 사람들> <학교야 학교야> <어머니 당신의 아들>에서 부터 <도깨비 난장>까지. 농민의 삶과 농촌의 현실, 노동자들의 삶을 풀어내고 교육·청소년·여성 등 사회 현실과 역사에 대한 치열한 개입이다. 또 있다. 신명은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를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1년 365일 중 120일을 공연으로 보내는 신명은 마당에서 문화와 예술로 사람들과 만난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진다. 오월 정신이 광주의 자산이라고 `말’하는 광주시가 있고 놀이패 신명이 있고, 민중들이 있다. 오월정신계승과 문화도시를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한번 맞춰보시라.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박강의 놀이패 `신명’ 대표= 전남대 탈반 활동을 하다 86년 자연스레 `신명’에 들어왔다. <풀잎 이야기> <쪽빛노트> 97년 각색된 <일어서는 사람들> <오늘이 오늘이소서> <호남선> <꽃등들어 님 오시면> 등을 연출했다. 2006년과 2007년 도청앞에서 열린 5·18 행사 전야제 기획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