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기 열사

[끝나지 않은 분신](하) 죽음으로 저항한 도급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참된 2015. 3. 15. 07:10

[끝나지 않은 분신](하) 죽음으로 저항한 도급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경향신문



지난달 16일 금호타이어 전남 곡성 공장에서 일하던 김재기씨(44)는 회사 도급화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했다.

동갑내기 아내와 한창 사랑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두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스스로 몸을 불살랐을까. 왜 이렇게 힘든 죽음을 선택했을까.

노동자의 죽음이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일까. 김씨의 몸을 불사른 저항에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김씨와 가족, 동료가 살던 광주로 내려간 이유다.

김재기씨 빈소가 마련된 광주 광산구 만평장례식장과 집회 현장에서 가족과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김씨의 삶을 전해 들었다. 유서와 휴대전화 메시지, 노조 활동이 담긴 여러 자료를 확인했다.

다음은 집에선 착하고 따뜻한 가장 직장에선 묵묵하고 든든한 동지였던 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시리즈 (상) : “회사가 날 죽이려 해···나 죽으러 가네”

▶시리즈 (중) : 안전, 산재···모두보다 앞에 나선 ‘진짜 노조원’

▶시리즈 (하)

지난 2월16일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에서 일하던 김재기씨(44)가 회사의 도급화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했다. 그의 차량에서는 유서와 함께 ‘고발위 중단 도급철회’라는 빨간색 문구가 씌여 있는 흰색 마스크가 발견됐다. 그가 분신 당일 노사 대표가 도급화 문제를 논의하는 ‘고용안정 노사공동발전위원회(고발위)’ 개최에 항의할 때 쓴 마스크였다. 도급화 내용이 담긴 ‘2010년 임단협 별도 합의서’와 도급화에 따른 직무 전환 배치 통보서도 있었다.

지난해 안전 문제를 제기했다가 징계를 받았을 때 사측에서 받은 ‘징계 결과 통보서’도 나왔다.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다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의 ‘사건 결과 처리 문서’도 남았다.

김씨의 징계를 철회해 달라는 10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의 결의 서명서도 황토색 파일에 담겨 있었다. 노조 일정과 회의 내용으로 빼곡한 수첩도 발견됐다.    





고 김재기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유품.


그의 유품은 고단하고 지난(至難)한 1년 반 동안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 했다.

■ 남은 자들의 이야기

김재기씨는 1971년 5월4일 전남 화순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5형제 중 넷째다.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부모와 형제, 누구도 노동 분야에 천착한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지만 모난 데 없는 성격에 대인 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고인의 빈소에서 만난 김씨의 모친은 “사춘기도 없었다”고 했다. 김씨의 쌍둥이 형이 전했다. “눈웃음 친다고 하죠. 항상 웃고 다니면서 잘해주고, 싫은 소리는 못했어요.” 형제 사이도 좋았다. 쌍둥이 형과는 초·중·고를 같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이 형을 괴롭히면 김씨가 나섰다. 의협심과 책임감이 강했다. 운동을 좋아한 김씨는 체육교사를 꿈꿨다.

결혼 뒤에도 부모 형제들과 일년에 몇 번씩 만나곤 했다. 노조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뜸해졌다. 노조 활동을 한다는 얘긴 부모, 형제들도 몰랐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죽어야 하는데 지가 죽어….” 김씨의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재기씨 사망 9일째인 지난 2월24일 오후 6시부터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 앞에서 김씨를 추모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아내 정영아씨(44)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회 현장에 나갔다. 혼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다. 다른 이의 부축을 받으며 운집한 사람들 앞에 선 정씨는 준비해 온 호소문을 읽었다.




지난 2월24일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분신 사망한 고 김재기씨의 부인 정영아씨가 “재기씨, 사랑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희완 기자


“김재기 대의원은 제 남편입니다. 고2 올라가는 아들과 중2 올라가는 딸아이의 아빠입니다. 그런데 제 남편은 열사가 되었습니다. 무슨 분노가 그리 컸는지, 제 남편은 제 딸에게 ‘엄마 말 잘 들어라’ 울먹이는 말을 끝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댕겼습니다.”

“20년을 넘게 가정보다는 회사라며 다녔던 이 사람을 회사가 죽음으로 몰아냈다는 것을 뒤늦게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생전에도 회사가 표적삼아 나를 잡으려 한다, 사장이 나를 죽이려 한다 말하면서 너무나 힘들어 하였습니다.”

“저는 모질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 남편이 남긴 유서대로, 남편이 하던 싸움을 이제부터는 제가 할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김재기의 마음으로 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의 유서대로 이루어주지 않으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저 세상에서도 잠 못들고 싸운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습니다. 노동자가 왜 그렇게 억울했는지, 왜 그렇게 분노하고 싸웠는지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눈물로 범벅된 낭독은 10분 동안 이어졌다. 배경 음악이 소리를 높이려 할 때, 정씨가 “마지막으로 우리 재기씨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라며 다시 입을 뗐다. 준비된 호소문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재기씨 사랑해. 너무나 힘들고… 편히 쉬어.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 잘 키우고 하늘이 날 데려가면 그때 우리 꼭 만나. 못했던 얘기 밤새도록 나누자. 나 칭찬해줘.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미안했다고….”

김재기씨는 죽어서 ‘열사’가 됐다. 정씨는 그 열사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정씨가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 어린이집을 차리는 것.

“어린이집 차려서 남편이 운전을 좋아해서 나이 먹어서 자기가 운전하고 그렇게 늙어서…”




지난 2월24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고 김재기씨의 부인 정영아씨의 호소문을 듣고 있다. | 정희완 기자


■ ‘불법 파견’ 문제 제기도

김창규 금호타이어 사장은 2월19일과 23일 두차례 걸쳐 김재기씨의 빈소를 찾았다. 회사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유족에게 김 사장은 “상황파악을 하고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24일부터 사흘간 사측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였다.

이틀 뒤인 26일 금호타이어는 예정됐던 운반직 48개 직무의 도급화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호타이어는 2010년 워크아웃에 따라 도급화를 추진하면서 노사 합의에 따라 정규직을 다른 업무로 전환 배치한 뒤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그 사이 597개 직무 중 521개(87%)를 도급으로 전환했다.

2013년 12월23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이후에도 나머지 76개 직무 중 운반직 48개를 마지막으로 도급화할 예정이었다. 김재기씨는 워크아웃 졸업 당일 직무 전환 배치 통보를 받았다. 사측은 도급화 종료 시한을 워크아웃 졸업이나 2014년으로 못 박지 않았다고 했다.

금호타이어는 유감을 표명하며 심리치료 같은 유가족의 안정 지원도 약속했다. 김씨 사망의 직접적인 책임 인정과 이에 따른 사과는 없었다. 사측은 도급화는 워크아웃 당시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고 48개 직무의 도급화도 노사 협의로 진행했기 때문에 김씨의 죽음이 회사 측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족 측은 “불법도급으로 당연히 철회돼야 할 48개 직무의 도급화가 철회되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이제는 우리 유족들에게 보상 문제만 남은 것처럼 호도되는 것에 너무 비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12일 현재까지도 유족들은 금호타이어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조가 집회를 열고 김재기씨를 분신에 이르게 한 사측의 사과와 도급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 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문제 제기에 나섰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조는 3월2일 성명을 내고 “어제까지 정규직이 하던 일을 업무 공간 및 기계 설비에 대한 아무런 변화 없이 오늘은 비정규직이 대신하는 행태의 연속이었다”며 “회사 내 모든 도급 노동자들을 즉각 정규직화 하라”고 말했다.

이들은 “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인 금호타이어와 종속적 지휘 관계에 있다”며 금호타이어의 ‘위장 도급’ 의혹을 제기한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하청업체가 아닌 금호타이어의 근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급업체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금호타이어가 지급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금호타이어 도급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300만원 지급키로 했으나 지급이 미뤄졌다. 그러자 금호타이어 도급사 대표자협의회는 지난해 10월29일 낸 입장문에서 “격려금을 조속히 지급하려고 원청(금호타이어)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도급사가 지급해야 할 임금을 원청업체인 금호타이어가 지급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소지가 있는 문구다. 이 같은 이유로 노조는 사내 모든 도급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 격려금 미지급에 대한 금호타이어 도급사의 입장문. | 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앞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박모씨 등 132명은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2년 7월 패소했다. 재판부는 당시 “박씨 등이 소속된 하도급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근태를 관리하고 임금을 지급했다”며 “다른 금호타이어 근로자들과 업무가 분리된 점 등을 고려하면 박씨 등이 금호타이어의 파견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씨 등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2009년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에서 타이어 포장 업무를 한 도급업체 직원 강모씨 등 2명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직접 고용할 것을 금호타이어에 지시했다. 그러나 금호타이어는 노동청의 시정지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1년 7월 노동청의 조치가 적법하다며 금호타이어의 불법 파견을 인정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고 김재기 열사가 사전에 이러한 금호 자본의 불법적인 도급화을 알고 법원의 도급 진행 가처분 결정 때까지 보류하자고 수없이 요구했으나 금호 자본은 사전에 계획적으로 도급사원을 이미 채용해 놓은 상태였다”며 “고귀한 목숨을 버려가며 사측의 도급화를 막으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김재기씨는 지난 2월4일 도급화 중단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김씨는 법원이 가처분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도급화 추진을 중단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금호타이어는 이미 도급업체를 선정해 48개 직무를 대신할 비정규직 채용을 추진 중이었다. 법원은 지난 3일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금호타이어가 김씨 사망 후 이미 도급화를 철회했기 때문에 가처분을 내릴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이유다.

금호타이어는 “도급사 사장단에서 원청과 협의를 하겠다고 한 부분은 도급사 자체적인 임단협을 통해 결정된 격려금을 지급하는데 있어 자금 조달의 차원에서 원청인 금호타이어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며 “금호타이어가 도급사의 격려금 지급에 관여한 것은 아니며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입력 : 2015-03-12 22:19:58ㅣ수정 : 2015-03-13 1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