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나지 않은 분신](중) 안전, 산재···모두보다 앞에 나선 ‘진짜 노조원’
-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5-03-10 19:14:22ㅣ수정 : 2015-03-11 19:26:06
- ▶시리즈 : [끝나지 않은 분신](상) “회사가 날 죽이려 해···나 죽으러 가네”
지난달 16일 금호타이어 전남 곡성 공장에서 일하던 김재기씨(44)는 회사 도급화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했다.
김씨는 동갑내기 아내와 한창 사랑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두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스스로 몸을 불살랐을까. 왜 이렇게 힘든 죽음을 선택했을까.
노동자의 죽음이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일까. 김씨의 몸을 불사른 저항에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김씨와 가족, 동료가 살던 광주로 내려간 이유다.
김재기씨 빈소가 마련된 광주 용산구 만평장례식장과 집회 현장에서 가족과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김씨의 삶과 고통을 들었다. 유서와 휴대전화 메시지, 노조 활동이 담긴 여러 자료를 확인했다.
다음은 집에선 착하고 따뜻한 가장 직장에선 묵묵하고 든든한 동지였던 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 남편 이야기
1995년 4월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에 입사한 김재기씨는 스프레이를 운반하는 2부5과에서 일했다. 4조 3교대. 각조는 1년마다 바뀐다. 조마다 직원들은 상조회 형식으로 모임을 만들어 운영했다. 김씨는 매번 조의 총무를 맡았다. 동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리고 행사를 준비했다.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두가 총무 역할을 기피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런 일(총무) 하면 힘들면 짜증날 때도, 서운할 때도 있는데 내색을 한 적이 없어요. 항상 웃어.”
![](http://img.khan.co.kr/news/2015/03/10/l_2015031001001874300144153.jpg)
지난 2월24일 금호타이어 광주 공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동료들이 고(故) 김재기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일이나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동료들도 챙겼다. 2003년 늦은 나이 뒤늦게 입사한 동료 신모씨(45)는 업무에 적응하는 데 김씨의 도움이 컸다. 동료애도 컸다. 지난해 정신 질환을 앓던 조합원 한명이 휴직계를 냈다. 김씨는 그 조합원의 집을 찾아가 위로했다. 소외되고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동료들을 챙기는 데도 앞장섰다.
“제가 성격이 내성적이예요. 업무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재기씨에요. 말 수는 적어도 항상 미소로 답하는 것 같았어요.”(동료 신모씨)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김씨는 직장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운동할 때 별 말은 없어도 동료들을 리드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마라톤 동호회에서도 활동했다.
“운동할 때도 말은 없는데 진취적인 모습이 있어요.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할까요. 끈기, 인내가 몸에 배어 있던 사람입니다.”(동료 이모씨)
김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노조 일에 적극 참여했다. 파업이나 집회 같은 쟁의 활동을 할 때만 모집, 가동되는 비상시 조직 ‘선봉대’에서도 활동했다. 2013년 10월 대의원이 되고 나선 더 적극 나섰다.
2014년 4월 조합원들이 “작업 환경이 너무 위험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타이어를 쪄내 제품을 완성하는 공정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었다. 고온의 작업 환경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일했다. 조합원들은 타이어를 가열하는 둥그런 틀 안에 얼굴을 넣고 불안정한 기마 자세로 타이어에 미세한 구멍을 뚫었다. 틀 안 쪽은 180도가 넘었다. 틀이 추락해 다치거나 고온의 기름이 떨어져 화상을 입곤 했다. 산업재해가 빈번했지만 방열복, 보호복, 방열 장갑 등 제대로 된 안정장비는 없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의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은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의 집중관리대상 사업장이었다.
![](http://img.khan.co.kr/news/2015/03/10/l_2015031001001874300144152.jpg)
고(故) 김재기씨의 인터뷰 모습을 촬영한 사진. | 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김씨는 해당 공정의 가동을 8시간가량 중지시켰다. 회사는 중지 조치를 문제 삼았다. 같은해 8월 김씨에게 ‘업무방해 및 분쟁 야기’를 이유로 1주일 정직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조합원들의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주노총 광주본부 박영수 수석부위원장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다. 김씨는 박 부위원장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밤이고 새벽이고 노조 일로 ‘형님’을 만나러 가는 일이 잦아졌다. 노조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사람 좋고 내성적이던 김씨는 노조 일에, 조합원들을 위한 일엔 단호했다. 불의를 참지 못했다. 1주일 동안 회사 앞에서 징계에 항의하는 노숙 단식 농성을 벌였다. 침낭을 덮고 잤다. 농성장에 오려는 아내도 막았다. 징계가 부당하다는 서명도 받았다. 당시 10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김씨를 응원했다. 단식 5일째 김씨는 장이 뒤틀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주변 동료들은 단식을 중단하라고 만류했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 김씨는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와 단식을 이어갔다.
“그 전에 대의원이나 노조에서 넘어갔던 부분을 이 친구가 해결하려 드니까 회사로서는 가만히 놔두면 안되잖아요. 걸림돌이 된 거죠.”(동료 나모씨)
같은 해 9월 김씨는 공장 안전 문제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작업환경 개선 요구를 회사가 묵살해왔기 때문이다. 광주고용노동청은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조사는 불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점검 때엔 사측 인사가 문제된 공정 작업을 시연했다. 정작 문제를 제기한 김씨는 안전점검에서 배제됐다.
김씨는 이를 언론에 폭로했다. 2013년 10월25일 광주 KBS 1TV <시사기획 맥>은 ‘노피아(노동부관료 + 마피아)’ 문제를 다루면서 김씨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광주고용노동청은 지난 1월이 되서야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직원들에게 안전 장비를 지급하도록 시정 명령도 내렸다.
“처음 대의원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이전 대의원들은 그 문제가 쉽게 해결 되겠냐 했는데, 김재기 대의원은 끝까지 한 거죠. 2부5과의 역사라고 얘기해도 될 겁니다.”(동료 안모씨)
![](http://img.khan.co.kr/news/2015/03/10/l_2015031001001874300144151.jpg)
회사의 징계에 항의하며 1주일 동안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고 김재기씨. | 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어떤 문제가 생기면 원인부터 파고들어 해결하고 마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대의원이 되기 전부터 불의를 보면 지나가지 않았죠.”
지난해 12월 말 도급화 문제가 다시금 불거졌다. 금호타이어는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뒤 597개 직무를 도급화키로 했다. 이 중 521개가 도급으로 전환했다. 87%에 이르는 비율이다.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맡기는 것이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12월23일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상황에서 더 이상 도급화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회사는 나머지 75개 직무 중 48개를 도급화할 계획이었다. 김씨의 업무도 도급화 대상이 됐다. 12월23일 워크아웃 졸업 당일, 김씨는 회사로부터 직무 전환 배치 통보를 받았다.
도급화로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아니다. 무척 고통스러운 공장 생활에 빠지게 된다. 도급화가 되면 기존 정규직은 다른 직무로 전환 배치된다.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업무에 적응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공정을 계속 옮겨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주변 시선에 시달린다. 임금도 줄어든다.
“10~20년 한 공정에서 일하다 다른 공정으로 이동하면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연필을 만들다가 휴대전화를 만드는 것과 같아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면 노무대기를 시켜요. 부적격자가 되는 겁니다.”
전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면 ‘노무대기’를 해야 한다. 주변 동료들의 눈길은 점점 싸늘해진다. ‘저 사람은 뭔가 부족한 게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금전 문제도 생긴다. 야간·휴일 근무를 하면 수당이 붙는다. 공정을 옮기면 처음에는 주간 근무만 하게 된다. 야간·휴일 근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임금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을 옮긴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휴일 근무를 못하는 동료도 있다고 한다.
“속도를 못 따라 가니까 눈치가 보이죠. 그러면 아예 휴일 근무를 할 생각을 안하게 돼요. 자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동료 간 눈치를 봐야한다니까요.”
![](http://img.khan.co.kr/news/2015/03/10/l_2015031001001874300144154.jpg)
금호타이어의 직무 전환 통보서.
박씨 사망 뒤 김씨는 동료들끼리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상실감이 적지 않았을 터였다. 숨진 박씨는 김씨가 회사 징계에 항의하며 단식 농성을 할 때 옆에서 줄곧 함께한 절친한 동지였다.
김씨는 지난 2월4일 도급화 중단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2월13일에는 “가처분 신청을 넣어놨으니 도급화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하자”는 내용의 통보서를 사측에 보냈다. 회사에선 별다른 응답이 없었다. 도급화를 강행할 기세였다.
힘겨운 싸움으로 심신이 지친 탓이었을까. 답답한 마음을 그저 달래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을까. 하루는 아내 정영아씨(44)에게 “나 광주 공장으로 갈까?”라고 했다. 도급화에 따른 직무 전환 배치가 이뤄지면 곡성에서 광주 공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몰랐다. 앞서 도급화로 전환 배치된 다른 동료 중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아내는 “그래. 집에서도 가깝고 기름 값도 덜 들고”라고 답했다. 김씨의 고민은 깊어졌다.
지난 2월16일 오전 10시쯤 노사 대표가 도급화 문제를 논의하는 ‘고용안정 노사공동발전위원회(고발위)가 열렸다. 노사 양측이 도급화 문제를 논하는 자리였다. 이날 김씨는 오후 조였다. 출근하려면 집 근처에서 오후 1시20분쯤 버스를 타면 됐다. 그러나 고발위 개최 소식을 듣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동료 7명과 함께 고발위 회의장으로 향했다.
‘고발위 중단 도급철회’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회의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고발위가 열릴 예정이던 사무실에는 노조 측 인사 3명이 참석해 있었다. 노조는 도급화 이행을 중단을 사측에 요구하려 했다. 사측 인사들은 자리를 비웠다. 고발위는 취소됐다.
광주와 곡성 공장별로 ‘인력 실무위원회’를 열 것 같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인력 실무위는 도급화에 따라 기존 정규직의 직무 전환을 결정하는 자리다. 김씨는 이를 막아야 했다. 오후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김씨는 함께 고발위를 막은 동료 7명은 출근토록 하고 혼자 남았다. 설 연휴가 지나면 전환 배치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금호타이어는 이미 도급업체를 선정, 48개 직무를 대신할 비정규직 직원들을 채용한 상태였다.
![](http://img.khan.co.kr/news/2015/03/10/l_2015031001001874300144155.jpg)
지난 2월16일 회사의 도급화 추진에 항의하며 김재기씨가 분신 사망한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본관 앞. | 민주노총 광주본부 제공
오 후 6시 무렵. 김씨는 다시 집에 들어왔다. 아내에게는 연차를 냈다고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잠시 앉아 있던 김씨는 집을 나섰다.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 한통을 샀다. 곡성 공장으로 향했다. 오후 7시20분쯤 도착한 김씨는 아내에게 전화해 딸을 바꿔 달라고 했다. 그는 딸에게 “엄마 말 잘 들어”라고 말했다. 딸은 “응, 응”이라고 답했다. 아들의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아들은 집에 없었다. “알았어. 끊을게.” 김씨가 아내에게 남겨준 마지막 육성이었다.
▶ 금호타이어 반론 및 입장
- [끝나지 않은 분신] 금호타이어의 반론 및 입장
-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입력 : 2015-03-11 15:57:22ㅣ수정 : 2015-03-11 16:12:41
- 지난 3월10일 보도된 경향신문 <[끝나지 않은 분신](중) 안전, 산재…모두보다 앞에 나선 ‘진짜 노조원’> 제목의 기사에 대해 금호타이어가 반론과 입장을 내놨다.
금호타이어 측은 곡성 공장에서 일하다 분신 사망한 김재기씨(44)가 타이어를 쪄내 제품을 완성하는 공정의 가동을 중지시켜 정직 1주일 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고인이 설비 가동을 중지시키기 전 이틀 동안 노사간의 대책회의 및 현장점검을 통해 안전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며 “노사 간의 협의 진행과 및 내부적인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고 고인이 임의적으로 가동을 중지시킨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노사가 함께 참석하는 상벌위원회를 거쳐 징계를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해당 공정은 다른 공정에 비해 산업재해가 빈번한 공정도 아니다”며 “곡성 공장은 최근 노동청의 ‘산재다발 사업장’에서 2년간 제외됐다”고 덧붙였다.
도급화에 따른 직무 전환 배치에 대해선 “도급화로 인한 전환배치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노측과 일정 부분 협의를 거치고 당사자인 직원들의 의견도 수렴해서 결정하고 있으며 회사는 해당 직원이 변경된 직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며 “또한 직무간 전환배치는 법원의 판례에서도 노사간 합의에 따라 실시되고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며 해당 인원들의 생활상 불이익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아래는 회사의 입장.
■ 금호타이어의 입장
도급화는 2010년 워크아웃 당시 구조조정을 피하고 생산과 인력의 효율화를 이루기 위해 노사간 합의에 의해 매년 단계적으로 진행해 온 것으로 진행과정에 있어서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진행했던 것은 아니며 매년 사간 협의를 통해 진행해 왔다.
회사는 노사간 합의한 도급화 계획 중 남은 72개 직무에 대해서도 48개 직무(운반직종 1개)만 도급화를 진행하기로 하고 노사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임단협의 지연으로 2015년까지 넘어온 것이며 도급화에 대한 노사합의시 워크아웃 종료나 2014년까지로 기한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또한 도급화는 노사간 합의에 의해 해당 직무를 도급업체에 맡기는 것으로 당사의 정규직원이 도급직원으로 바뀌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환배치를 통해 수행하던 업무가 바뀌는 것이며 회사는 전환 배치의 경우에도 노사간 협의 절차를 거치고 있으며 해당 직원에게도 변경된 직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
이처럼 도급화는 워크아웃 당시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합의를 통해 약속한 사항이며 이번 도급화도 노사간 협의를 통해 진행해 왔던 만큼 이번 사고가 회사측의 일방적인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회사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유가족과 노측의 핵심 요구사항인 도급화 철회에 대해 심사숙고 끝에 지난 26일 전격적인 철회를 결정했다. 이는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애도하고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고려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제안한 것으로 이를 통해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고 유가족이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김재기 열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고 김재기 열사 추모영상 (0) | 2015.03.29 |
---|---|
[끝나지 않은 분신](하) 죽음으로 저항한 도급화, 그리고 남은 사람들 (0) | 2015.03.15 |
[끝나지 않은 분신](상) “나 죽으러 가네”···분신 김재기씨의 마지막 말 (0) | 2015.03.11 |
“노동자들 고통으로 워크아웃 넘은 금호타이어, 사회적 책무 다해야” 광주 시민사회, 사측에 故 김재기씨 유족에 대한 사죄·비정규직 철폐 등 촉 (0) | 2015.03.08 |
“노동자 분신 부른 금호타이어 도급화 철회” (0) | 2015.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