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 철폐투쟁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황인화씨 “현대차가 항소·상고로 방해해도 굴복 않겠다”

참된 2014. 9. 21. 17:27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황인화씨 “현대차가 항소·상고로 방해해도 굴복 않겠다”

울산 |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입력 : 2014-09-19 21:56:52수정 : 2014-09-19 22:02:25     경향신문
 

 

19일 새벽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으로 출근한 비정규직 황인화씨(38·사진)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황씨는 이날 주간연속 2교대 중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 1조 근무조였다. 그는 평소 일하던 울산4공장에서 승용차의 오른쪽 바퀴를 달았다. 밝아진 표정이 역력했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찾아와 “정말 고생 많았다”면서 악수를 하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건넸다. 다른 900여명의 비정규직들과 함께 황씨도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판결에서 정규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황씨는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12년이나 감수해야 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집안의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2002년 1월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형의 권유로 현대차 비정규직이 됐다. 처음에는 승용차 내부장치를 설치하는 생산라인에 있었지만, 지금은 8년째 타이어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왼쪽과 오른쪽 바퀴를 다는데 각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눠 일하지만, 처우와 임금은 너무나 다른 불법파견의 현장 한가운데에 황씨가 있었다. 그의 억울함은 한때 분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황씨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10년 11월 울산1공장 점거파업을 벌일 당시 현대차 정문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영남권 노동자결의대회에서 분신을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 화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황씨는 “연월차를 내고 서울로 상경해 법원 판결을 지켜봤는데, 울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설레었다”면서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화장실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분신까지 하면서 투쟁한 보람이 있지만, 너무나 당연한 정규직 판정을 이제야 인정받는 현실에 허무함도 동시에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지고 10여년 동안 정규직 전환을 외쳤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가슴이 아팠다”면서 “다행히 이번 판결은 사측의 온갖 억압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정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러나 회사 측이 이번 판결을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사측은)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면서 비정규직들이 제 풀에 지쳐 항복할 때까지 시간끌기의 꼼수를 둘 것 같지만, (우리는) 결국에는 정규직 전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비정규직의 투쟁이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휴게실 이용하는 것조차 정규직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서글픈 현실과 인간적 차별대우를 없애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다시 힘을 내 싸울 것”이라며 “사복 차림이 아닌 현대차 정규직의 작업복을 입고 당당히 출퇴근하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