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울산저널] |
그날 이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예정되었던 것이 연기되었고, 할 수 있던 것을 못하게 됐으며, 동지가 더 이상은 동지가 아니게 됐다. 무엇보다 수년을 이어온 ‘교섭’이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아닐 비(非)자는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4년 기다린 판결 코 앞에 잠정합의
8월 11일 오후, 박현제(43)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있었다. 열흘 후(21일)면 4년을 기다려온 재판 결과가 나온다. 그는 2003년부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의장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열흘 후 재판은 그의 ‘진짜 사장’이 현대자동차라는 것을 밝히는 재판이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에 거는 기대는 컸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기대면 소송을 제기한 1,569명 중 의장부에서 일하는 1,182명은 승소할 가능성이 컸다. 2013년 한국GM 창원공장 불법파견 판결에 따르면 다른 공정에서도 승소할 수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 지지부진 진행되고 있는 불법파견 특별교섭도 전환기를 맞을 거였다.
그는 11일 법원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몇 번째 노숙인지도 셀 수 없다. 번번이 기대를 저버린 법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 이다. 법원 앞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법에 따른’ 선고를 요청하는 피켓을 들고 서있는 것 말이다.
애초 그는 16일까지 노숙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울산지방법원에서 18일에 또 다른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재판 일정에 맞춰 17일에 내려가도 늦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예정보다 하루 일찍 울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생각보다 울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18일에 특별교섭 잠정합의안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지속된 특별교섭은 말 그대로 지지부진했다. 현대자동차는 줄곧 대법원 판결이 개인에 국한된 것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똑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이 있지만, 회사의 입장은 굳건했다. 회사는 교섭에서도 노조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외면했다.
주장을 굽힌 건 노조였다. 노조는 현대자동차 내의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가 점점 요구 수준을 낮췄다. 직접생산 공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물러섰고, 모든 조합원의 정규직 전환으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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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교섭 초반부터 비정규직을 우대하는 특별채용안을 내놓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3,500명 채용안을 제시하곤 꾸준히 채용인원을 채워갔다. 8월까지 약 2,000명을 채용했다. 결국 지난 7월 현대자동차비정규직 3지회(전주, 아산, 울산) 중 울산지회는 교섭을 거부했다.
현제는 교섭을 거부한 울산지회 소속이다. 얼마 전까지는 노조 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노조 활동을 시작한 건 2005년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것이 2003년이다. 초기 2년을 제외하고 그는 노조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두 차례 노조 대표직을 맡았고, 여러 차례 해고와 복직을 반복했다. 2011년 해고통보 이후 지금까지는 해고자 신분으로 남아있다.
누군가는 ‘8.18 합의’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8.18 사태’라고 하는 그날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된 이 이야기는 그래서 오래된 이야기다. 최소 2003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이야기.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부리기 시작한 그 언젠가부터 매순간 있어왔던 싸움이고, 이야기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이야기, 최초의 승자는
그날 이후 다시 아스팔트 위에
오래된 이야기에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한 명 더 있다. 그는 최고 사법기관에서 최고 재벌을 이겼다. 법은 여러 차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5일 그는 여전히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었다. 뒤늦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쬈다.
8월 18일 이후 최병승(38)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출입이 막혔다. 출입증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원래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었던 그는 이제 정규직 노조 조합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출입증은 없다.
18일 이전까지는 회사는 그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최병승이라는 이름과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확인이 필요 없는 그의 ‘출입증’이다. 수차례 구속과 고공농성 끝에 만들어진 단단한 ‘출입증’이다. 하지만 18일 이후 회사는 그의 ‘출입증’을 모른 채한다. 정규직이 아니(비非)라는 이름표가 떨어졌지만 회사는 그를 반쪽짜리 정규직으로 취급한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규직이었다. 대법원 판결 취지는 2002년부터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업체에 고용된 그의 진짜 사장이 원래부터 현대자동차라는 것이다. 따라서 병승은 원래 일하던 곳에, 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약을 적용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회사는 신규 채용한 사람처럼 채용절차를 밟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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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교섭에서 ‘특별채용’안을 고수한 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요구다. 어떻게든 정규직만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는 투다. 회사가 줄곧 특별채용을 주장한데는 정규직 전환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 차이를 애써 외면한다.
용납할 수 없는 차이는 적게는 3년 많게는 10년 넘는 세월이 마치 없었던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특별’하게 채용하겠다고 하지만, 회사는 수년간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는 병승만 예외로 인정할 생각이 없다.
회사와 달리 법은 계속 병승을 ‘예외’적이라고 판결했다. 2012년 대법원 뿐 아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2005년 2월부터 병승이 해고되어 받지 못한 임금을 회사가 정규직 노조의 단협 기준에 따라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지만, 회사는 취업규칙에 따라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해요” 뙤약볕 아래서 병승이 말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그날
“3일만 버텼으면 했어요”
비가 많이 내리던 18일, 병승과 현제는 울산지방법원에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재판이 있었다. 당연히 노조활동에 따른 재판이었다. 앞서 오전 8시부터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출장자숙소를 지켰다. 특별교섭장에 들어갈 아산.전주 지회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루 앞선 17일 저녁 이뤄진 조합원 간담회에서 울산지회는 교섭을 거부하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들은 미리 아산.전주 지회장을 만나서 울산지회가 교섭에 빠지는 것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최소한 합의안에 울산지회가 적용되지 않는 다는 문구를 명시하도록 요구했다.
“1%의 기대를 걸었어요. 지회까지 적용되는 합의안에는 동의를 안 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그런데 사고를 친거죠” 현제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교섭은 난항을 겪었다. 난항은 교섭장 안이 아니라 밖에서 벌어졌다. 울산지회 조합원들은 정규직 노조 사무실에서 연좌농성을 하며 노조측 교섭위원들이 교섭에 참석하지 못하게 막았다. 오후 3시부터 이뤄질 본교섭 이전에 확인된 합의안은 울산지회를 제외하는 문구가 없었다.
김성욱 울산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다시 아산.전주 지회장을 비롯한 교섭위원들에게 울산지회를 제외하도록 요청했다. 재판을 받고 있는 현제와 병승의 휴대폰에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이 전달됐다.
“3일만 버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지회가 어떻게든 3일만 막고 있으면 21일에 판결이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현제의 바람과는 달리 오후 5시 무렵 농성을 해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섭위원들이 지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소식도 함께였다. “오늘 하루는 막겠구나 생각했는데 안타까웠죠. 교섭위원들이 교섭장에 들어가면 끝나는 상황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너무 순진하게 문을 열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교섭위원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울산지회가 요구한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반대로 울산지회도 포함되는 문구만 버젓이 적혔다. 합의안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도 못하고 비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누군가는 질 수 있다는 두려움
그래도 기댈 수밖에 없는 그것
다음날 회사는 그동안 교섭상대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조에 합의안에 대한 총회를 유급으로 열 수 있도록 했다. 아산과 전주 지회는 ‘비공개’였던 합의안을 이날 공개하고 단 몇 시간의 토론 시간을 갖고 투표를 진행했다.
“아산이나 전주에서 합의안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을 줬다면 판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지부나 지회가 작전을 짰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10년을 싸운 합의안을 단 몇 시간 만에 설명하고 토론해서 결정할 수 있어요” 현제는 두 지회의 총회 결과가 아쉽다.
지회별로 조금씩 상황이 달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주지회는 의장부 조합원 보다 비의장부 조합원이 많다. 21일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명확한 조합원이 많다. 아쉬운 점은 아산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010년 11월에 아산공장의 의장, 차체, 엔진 같은 주요 공정 뿐 아니라 보조 공정에 대해서 불법파견이 이뤄지고 있다는 판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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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은 양날의 칼이에요.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기니까 둘 모두에게 위협이 되죠. 재판 결과는 단지 그 위험한 칼자루를 누가 쥐느냐를 결정하는 거에요. 결국 소송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스스로를 무너지게 한 거에요” (최병승)
“소송에서 이겨도 다시 10년을 내다봐야 했어요. 고등법원까지는 판결이 빨리 나더라도 대법원 판결이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합원이 흔들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에요” (박현제)
이들의 표현대로 소송은 조합원들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하지만 매순간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있는 이들에게 소송은 동시에 실낱같은 희망이다. 회사가 어떻게든 판결 전에 합의를 하려고 했던 것도 그 희망을 꺾어버리기 위한 의도가 컸다.
회사는 합의안이 나오자마자 법원에 재판 연기를 요청했다. 법원은 흔쾌히 재판을 연기했다. 9월 18일과 19일로 연기된 판결이 이날 예정대로 나올지도 미지수다.
양날의 칼이든, 10년의 싸움을 더 준비해야 하든, 법은 이들이 비빌 마지막 언덕이다. 박현제는 11일 다시 법원 앞에 섰다. 이번에는 곡기를 끊기로 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다. “법원은 현대차 봐주기가 아닌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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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