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 철폐투쟁

재벌 뒤 봐주는 사법부? 현대차 불법파견 1심만 4년째(2014.9.16)

참된 2014. 9. 20. 18:43

재벌 뒤 봐주는 사법부? 현대차 불법파견 1심만 4년째

선고 이미 두 차례 연기, 18·19일 선고도 연기?...비정규직들은 선고 촉구 무기한 단식 돌입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발행시간 2014-09-16 16:25:00 최종수정 2014-09-16 17:37:03      민중의 소리

 

 

"아유~ 이 심정 알지. 아유 징그러워."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나오던 60대 여성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장소 앞을 지나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16일 정오 점심 시간에 맞춰 법원 구내에서 직원들과 민원들이 삼삼오오 나오면서 일부는 무심하게 지나갔고, 일부는 단식장에 눈길을 줬다.

법원 정문 앞 인도 보도블럭 바닥에 돗자리 하나 깐 단식장에서 4명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단식에 돌입한 이진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박현제, 김응효 해고노동자 등 3명은 오늘로 6일째고, 15일 단식에 결합한 송성훈 전 현대차 아산 비정규지회장은 오늘로 2일째다.

이들이 법원 앞에서 단식을 시작한 배경은 재판부에 "4년째 미루고 있는 선고를 제발 해달라"는 웃지 못할 사연 때문이다. 법원이야 소송이 제기되고 접수되면 절차에 따라 변론을 거쳐 선고를 하는 게 정상일텐데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면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중인 박현제 전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장. 16일로 6일째 단식중이다.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면서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중인 박현제 전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장. 16일로 6일째 단식중이다.ⓒ민중의소리

무려 4년째 진행중인 1심 소송...선고도 두 차례나 연기
"재판부, 현대차 사정 봐주는 선고연기"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이다. 그러나 '불법파견'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자동차를 생산한다. 1만여명에 가까운 비정규직들은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2004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합법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의 지휘가 아닌 현대자동차의 지휘 아래 정규직노동자들과 같은 라인에 섞여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자동차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파견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노동부 판정 후, 법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 최병승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최 씨의 고용주는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후 최 씨와 동일한 근로조건에서 일했던 사내하청 노동자 1600여명이 자신들의 고용주는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임을 확인해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정상적이었다면 벌써 내려졌어야 할 이 소송의 선고는 아직까지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 1심 소송이 무려 4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지난 2월 13일과 18일에 하려던 선고는 재판부가 원고(사내하청노동자)와 피고(현대차) 쌍방에 추가적 자료를 제출하라는 이유로 연기했고, 지난달 21일, 22일 하려던 선고는 원고 중 일부가 정규직으로 신규채용 돼 소송을 취하하자, 재판부가 피고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연기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등 노동법률가단체들은 재판부의 선고 연기를 비판했다. "4년여의 변론 기간 동안 요구하지 않았던 추가 자료를 변론이 종결된 후 선고 기일 직전에 요구하면서 이를 근거로 선고기일을 연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두 번째 선고 연기 사유인 '일부 원고의 소 취하에 대한 피고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이미 피고가 원고들의 소 취하에 대해 동의함을 서면으로 명백히 밝힌 상황이므로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의 선고 연기는 재벌인 '현대차 봐주기'라는 지적이다.

최병승 씨 1인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이 아닌 수천명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은, 대법원 판결에도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현대차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차는 지난달 21일 선고 직전인 8월 18일 사내하청 노동자의 신규채용에 관한 합의를 정규직노조, 아산·전주 비정규직지회와 했다. 이 합의에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빠졌다.

이 합의에 따라 현대차는 곧 사내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400명의 신규채용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채용된 노동자 일부가 소를 취하하면 이를 근거로 또 선고가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가 2004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2010년 7월에는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현대자동차를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 매일 법원 정문 앞에서 이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노동부가 2004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2010년 7월에는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현대자동차를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 매일 법원 정문 앞에서 이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사법부, 약자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데 그런 역할 하고 있냐"
"노동자가 권리구제 받는데 10년 넘게 걸린다는 게 말이 되냐"

16일 단식장 앞에서 만난 박현제 전 현대차 울산비정규지회장은 "법원이 현대차 편을 들면서 선고를 연기하고 있고, 현대차는 그(선고) 전에 우리(비정규직노동자) 내부를 정리하자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라며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단식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지회장은 "법원은 약자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데 지금 사법부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며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이 났고, 거슬러 올라가면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한 게 2004년이다. 10년 넘게 불법파견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이번에 1심 판결이 나더라도 현대차가 항소하면 대법까지 또 수년을 끌어야 한다. 노동자가 권리구제를 받는데 10년 넘게 걸린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지적했다.

법원에 조속한 판결을 촉구한 박 전 지회장은 현대차 사측에도 한 마디 했다.

"현대차 순수익의 3~4% 정도면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남는다. 3~4%면 현대차 입장에서 그리 큰 비중도 아니다. 현대차가 임금 착취 등으로 회사를 키우는 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기업 운영을 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을 없애는데 앞장서서 이후에 많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없애는데 나설 수 있도록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

16일 오전 서초동 법원 정문 앞에서 민변 등 노동법률단체 법률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4년여에 걸쳐 진행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판결 선고를 더 이상 늦추지 말라"고 촉구했다.
16일 오전 서초동 법원 정문 앞에서 민변 등 노동법률단체 법률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4년여에 걸쳐 진행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판결 선고를 더 이상 늦추지 말라"고 촉구했다.ⓒ민중의소리

이날 오전 법원 앞에서는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민주노총 법률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소속 법률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4년여에 걸쳐 진행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판결 선고를 더 이상 늦추지 말라"고 촉구했다.

"재판부는 9월 18일, 반드시 4년여간 힘들게 소송을 진행해 온 원고들에게 법과 정의가 실현되는 판결을 선고하여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에 선 법률가들이 법원을 향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