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운동

[기획| 통합진보당, 이대로 괜찮나] 기획을 시작하며 - 침묵의 통합진보당

참된 2014. 9. 18. 11:49

[기획| 통합진보당, 이대로 괜찮나] 기획을 시작하며 - 침묵의 통합진보당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발행시간 2014-08-28 22:09:44 최종수정 2014-08-29 08:42:41    민중의 소리

 

 

통합진보당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위기의 근거는 당 자체가 해산될 수 있는 헌법재판소에서의 정당해산심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짧게는 2012년 3당합당(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일부) 이후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과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 등을 거치며 전국민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과정 전체가 위기를 형성해왔다. 길게 보면 2000년 민주노동당 출범 이후의 진보정당운동과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통합진보당의 향후 전망과 관련해선 당외와 당내 사이뿐 아니라, 당 내부에서도 지역 및 의견그룹 사이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 '회생 불가능하다'는 단언에서부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 사이의 거리는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이 '심각한 위기'라는 인식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당내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재판 갖는 헌법재판소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주심 이정미 재판관 등이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12차 변론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침묵'이 자리 잡은 통합진보당

이상한 점은, 통합진보당의 존망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당 내부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진보당은 6.4지방선거 이후인 지난 6월 19일 당 위기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을 토론하기 위해 '진보정치 발전을 위한 평가와 전망위원회'(이후 평가전망위)를 구성키로 했다. 평가전망위는 7월말 당 홈페이지의 당원게시판을 '평가전망위 토론방'으로 바꿔 당원들의 의견수렴에 나섰다.

하지만 8월말까지 한 달여 동안 홈페이지에 올라온 관련 글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몇몇 당원들의 의견이 제출되었으나 반론 성격의 글이 이어지지 않는 등 활발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당 전체적으로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자체로 평가위를 구성해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당사자 외에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누가 봐도 심각한 위기상황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진보당은 조용한 상태. 당 외부에서 볼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같은 상황은 대중들이 진보당과 당원들 전체를 균질한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대중의 일반정서와 유리된 '외골수 집단'으로 생각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기도 하다.

현 위기상황의 원인과 전망 및 대책과 관련해서 진보당 내 여러 의견그룹 및 대부분 당원들의 생각이 거의 동일하다면, 이런 '조용한' 상황은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평가위에서 진행한 당원FGI(Focus Group Interview)와 지역 간부들과의 순회간담회 내용을 살펴보면, 당내 인사들 사이에 퍼져있는 큰 위기감을 확인할 수 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한 평가와 향후 방향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드러난다. 수적으로는 다수이며 특정 의견그룹에 속해있다고 보기 힘든 일반당원들도 마찬가지다.

'분당 트라우마'에 '혁신'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지난 23일 평가전망위가 주최한 '진보정치 발전을 위한 집중토론회' 자리에서 있었던 수도권의 한 지역위원장의 발언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2012년 이후 혁신을 주장하면 '누가 또 당을 깨려는 게 아닌가' 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나 또한 '혁신을 얘기하면 분열주의가 되나 패배주의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 발언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2012년 있었던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 속에서 참여계와 진보신당계, 인천연합계는 탈당해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종북' '부정경선' '경기동부' '패권주의' '애국가' 등을 키워드로 한 논란은 한국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이른바 '당권파'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했고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적 성향의 언론들까지 비난대열에 동참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이후에 진실이 밝혀졌지만 사실관계에도 어긋나는 것이었고, 보도라기보다는 '마타도어(흑색선전)'에 가까웠다. 사실관계에 근거했던 보도를 진행한 곳은 사실상 <민중의소리>가 유일했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은 '당권파'가 아닌 '탈당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라고 했다.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은 '당권파'가 아닌 '탈당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라고 했다.ⓒ이승빈 기자

'51:49'는 커녕 '99:1'인 언론지형에서, 탈당한 이들은 '이대로는 안된다, 바꿔야한다'(혁신)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남은 이들은 '우리가 뭐가 문제냐, 정당하다, 당을 지켜야한다'(수구)는 주장을 고수하는 이들로 비춰졌다. 자연스레 '혁신'이라는 말은 탈당파의 단어로 인식됐고, 당 사수파에게는 '수구좌파' '꼴통진보'라는 형용모순적인 딱지가 붙었다. 그러면서 당 사수파는 전사회적인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런 과정속에 이뤄진 분당을 거쳐 통합진보당은 급격한 당세 위축과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다. '혁신하자'는 주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안생길래야 안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과 지도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분열주의'와 '패배주의'가 되는 분위기, 특히 중앙당의 핵심간부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혁신'의 목소리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말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기획조정' 기능의 상실
침묵이 자리 잡은 곳에 혁신은 존재할 수 없다

중견급 이상의 간부들이 아닌 일반 당원들과 (잠재적) 지지자들 또한 '조용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영남지역의 한 간부는 "당원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아픈 이야기는 이러나저러나 당의 모습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푸념의 말"이라며 "당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그냥 체념하는 당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반당원들의 침묵은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당원들이 이처럼 '중앙당과 당 지도부는 말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사실 확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재의 진보당 지도부에 대해 '외골수' 이미지가 형성돼있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2012년 분당 이후에도 당내에서 '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통합진보당의 혁신이 구체적인 정치행위로 드러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양지웅 기자

통합진보당의 '혁신'이 그간 없었던 것은 단순히 하나의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외부적으로는 분당사태 이후 연이어진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과 정당해산심판 등으로 인해 '당 사수'에 당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하지만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혁신의 부재를 상황적 요인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중앙당 핵심 간부들의 '혁신'에 대한 상이한 인식과 기획조정 능력의 미비 또는 부재라는 내부적 요인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 당원들의 '침묵'과 관련해서는 중앙당의 기획조정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는 데 큰 원인이 있다. 평가전망위가 진행한 '당원FGI' 결과를 보면, 당원들 사이에서는 당 지도부에 대한 여러 층위의 다양한 쓴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당원들이 아무런 유인도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공개적 토론에 나서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토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앙당의 역할이지만, 지금의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을 양지로 끌어내고 이를 토론, 수용하는 과정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전체 과정 자체가 정치의 핵심 영역이다. 또한 그 과정을 얼마나 잘 기획하며 실제 성과물을 만들어내느냐가 정당의 핵심 능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에서는 이런 기획조정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돼 있는 상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가전망위'의 모습이 오히려 이런 기획조정 기능의 상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하고 전망을 세우자'는 목적으로 만든 '평가전망위'가 어떻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중들은 물론 당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의건 타의건 '침묵'이 자리잡아 생동감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창조성이 발 디딜 곳이 없다. 혁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통합진보당이 그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