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 철폐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새로운 노동 세대를 보다(2010.11.22)

참된 2010. 12. 17. 10:43

현대차 비정규직, 새로운 노동 세대를 보다

2010 노동세대의 등장과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합동취재팀    김용욱 기자    참세상    2010.11.22 01:32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의 끝이 안 보인다. 비정규직 노조(지회)나 회사가 당장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의 파업에는 그동안 관행화된 노-사간 협상 모습도 찾기 힘들고, 기존 노동자 투쟁과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혈연과 지연으로 꼬여있는 지역적 특성과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세대적 특성이 얽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면서 대립의 치열함이 존재한다.

 


 

현대차가 이번에 담판을 지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른바 87년세대의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새롭게 진화한 세대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

 


 

산업화와 경제적 발전의 후과 속에서 노조 민주화 투쟁으로 분출된 것이 87년 노동세대의 특질이라고 한다면, 대다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조직화된 노동자이면서도 인터넷과 디지털에 익숙하고 민주화 된 시대에 5~8년 동안 비정규직의 차별과 설움을 당한 세대적 특질은 점거농성 투쟁 과정에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사회에 나오나마자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맞았고,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위기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면서 그 피해를 감내해 왔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절박함과 역동성이 존재하고 있다.

 

 


 

▲  아침 맞은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중인 1공장 내부

 

 

일단 1차전은 비정규직 노조(지회)가 한판승을 거뒀다. 15일 새벽 시트사업부 하청업체인 동성기업 폐업에 반발해 시트사업부 라인점거에 돌입한 비정규직들을 회사가 동원한 용역과 관리자가 폭력적으로 끌어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폭력 탄압에 분노한 비정규직들은 1공장 3층의 CTS공정을 전면 점거했다. 그리고 1주일이 흘렀다.

 


 

비정규직 지회는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직접 노사 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퇴거통보와 조업시간단축 등의 조치로 맞서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사쪽은 당장 23일부터 정규직 주야간 10시간 근무에서 8시간 근무로 잔업을 주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공장 정규직들은 회사 쪽의 귀책사유로 공장이 멈췄기 때문에 일단 공장에 출근해 일을 하지는 않지만 10시간 일한 임금을 모두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사쪽이 1공장에 잔업을 주지 않을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약 월 15만원 정도가 준다. 회사는 비정규직의 공장 점거로 정규직의 임금이 줄어든다는 효과를 노려 노노갈등 전술을 구사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사쪽이 전혀 교섭에 응할 기미가 안보이지만 1공장 농성장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신기할 정도로 차분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고 있는 정규직 대의원들은 이번 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 되고 마무리 될지가 가늠이 안 된다고 밝힐 정도다.

 


 

협상의 심리적 마지노선 가늠이 안 되는 비정규직 세대

 


 

기존 정규직 노조는 노조 상층 지도부가 타협이 가능한 지점을 보며 요구안을 낸다. 요구안은 교섭을 통해 밀고 당기기로 조율을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합의 가능한 마지노선 수준이 눈에 보이고 시기도 가늠할 수 있지만 이번 비정규직 농성투쟁은 그런 관측을 전혀 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불법파견 문제 자체가 정규직화가 아니고선 적당한 타협지점을 찾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더 복잡한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파업에 돌입한 비정규직 조합원 대다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나이로 민주화 이후 개인적 욕망에 충실한 비정규직 세대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DMB 폰 등으로 인터넷과 디지털이 생활화 돼, 공장 안에서도 바깥 상황을 접하면서도 스스로 진화하며 의견을 내고 입장정리를 해가고 있다. 전형적인 88만원 세대의 특질을 보여주면서도 지도부에 대한 강한 신뢰감과 지침 사수 등 조직화 된 노동자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또 조합원들이 협상 안에 대해 합의 가능한 심리적 마지노선 자체가 ‘이번에 끝장을 안 보면 정규직화는 물건너 갈 수도 있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 정규직화 외엔 다른 안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 안엔 “우리는 정규직이다. 정몽구가 나와라”라는 구호가 가장 많이 울려 퍼진다. 대법 판결이후 심리적으로 이미 정규직이라는 규정을 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1공장 정규직 대의원 A씨는 “05년 불법 파견 투쟁 당시도 교섭이 열렸지만 1, 2차례 교섭을 하다 정지되고 안됐다”며 “교섭에서 실질적인 게 나와야 하는데 회사가 쉽게 해줄 수가 없는 것들이다. 이번 투쟁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적당한 타협안이 전혀 없다”고 봤다. 그는 “이번 농성을 중단하기 위해선 KEC처럼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답이 안 나온다. 이미 비정규직의 사기가 충천에 있어 원청과 직접교섭에서 구체적인 게 나와야 비정규직 노조도 명분이 선다. 반면 원청은 직접교섭에 나서면 자신이 진짜 사용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돼서 정규직 노조를 끼고 하는 교섭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비정규직 조합원 300명의 아버지는 정규직 반장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다 보면 회사나 비정규직 지회 중 한 쪽이 양보하거나 깨지는 수밖에 없다. 현재 승기를 비정규직들이 잡은 상황에서 회사는 2주차인 22일부터 반전의 기회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도 쉽지 않다.

 


 

A 대의원은 “사측 전술은 휴업으로 정규직들을 휴가 보내 비정규직을 고립시키고 공권력 투입을 하는 수가 있겠지만 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공권력이나 용역이 투입되면 정규직 지부가 난리가 날 것이다. 노조에서 그냥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지회가 점거하고 있는 1공장은 처음 만들어진 공장이라 87년 이후 투쟁 경험이 쌓여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대응 전술도 많아 투쟁에 돌입하면 만만한 공장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1공장은 현대차 제 현장조직의 의장도 가장 많이 배출할 정도로 정규직 활동가 층이 두텁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잘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정규직 휴가 문제도 휴가 기간 임금 등을 대의원과 협의해야 가능하다. 사쪽이 휴가를 협의 없이 추진하면 정규직의 반발이 더 커질 수 있다. 각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을 자신의 일터라고 생각해 공장안의 모든 사안을 협의하지 않고 진행하면 강한 반발을 보여준다. 내 공장에서 너희들 맘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울산 현대차라는 복잡한 지역내 가계구도와 한국사회 임금노동자 고용현황도 현대차가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회와 정규직 대의원 등 다양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주중엔 조반장 협의회에서 농성을 해제하라는 회사 쪽 입장의 공식 성명을 준비했지만 불발로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정규직 반장을 아버지로 둔 비정규지회 조합원들만 300명이고 그 외에도 정규직 과장, 업체 사장 아들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파업 투쟁에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공채가 없고 각 하청업체 사장이 알음알음 고용하기 때문에 혈연 지연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반장들 전체가 구사대로 직접 나서 혈연과 지연으로 얽힌 비정규직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긴 한계가 있다.

 


 

현대차, 대법 판결 쥐고 개인적 욕망을 안 감추는 세대와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가장 큰 변수다. 그들은 대법 판결이라는 칼을 쥐고 있어 명분과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또 88만원 세대가 겪은 현실의 좌절이 이번 투쟁에 녹아 있다. 현재까지 공장 안과 밖에서 파업에 결합하는 조합원들은 “끝을 봐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춘 듯 답했다.

 


 

비정규직 8년차인 A조합원은 노조에 가입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06년 불법파견 투쟁을 두고 “06년엔 일단 조합원이 적었다. 진짜 파업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고 솔직히 불법파견이 맞는 지도 자신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비정규직 노조 숫자가 너무 적었다. 그때는 그래서 분위기만 봤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가 다르다”며 “어차피 양쪽 다 칼을 빼들어서 끝을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업체든 원청이든 우리가 나가면 징계를 하려고 협박할 것이다. 승리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지만 한 가지 길만 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친한 정규직 형님이 적당히 살살하라고 문자가 왔는데 ‘죽고 싶은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답문자를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8년간 사내하청으로 일했던 B조합원은 단결보다 개인의 정규직화 열망을 더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연대보다 개인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 여기 나섰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며 “우리 모두의 내심은 이제 비정규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8년간 비정규직이었다. 이젠 벗어나고 싶다는 그 의지를 확고히 하면 단결도 필요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무기력한 비정규직이었던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농성이 장기화 돼도 상관없다. 힘들어도 결국 내 문제다. 부딪혀 보자는 거다. 내가 더 쎈지 현대차 더 쎈지”라며 그 세대가 가진 특유의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분위기를 두고 “조합원들이 이번엔 너무 적극적이다. 이전엔 집행부가 지시해야 움직였다. 지금은 조합원들이 먼저 의견을 내서 집행부를 만나러 간다.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정규직화 열망이 우리를 바꾼 거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87년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상적인 임단협-교섭-파업선언-주고받기식 타결의 관성화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면서도 새로운 특질의, 조직화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대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양쪽 다 빼든 진검을 부딪혀 보기 전엔 어떤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대차 비정규직들의 설움이 만든 그 열망을 채워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금 적당히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 큰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