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요구이다. - “여보 나 여기 있어. 꼭 정규직 되어 정문 앞에서 만나!”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는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무리한 요구도 아니고, 중장기적으로 시간을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사안도 아니다. 동성기업의 고용 승계로 축소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유사한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과정에 신자유주의는 어쩔 수 없는 대세이며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입장들이 강하게 있었고, 총파업 투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함으로써 파견제, 변형시간 근로제를 막아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는 96~97년 총파업의 유일한 성과인 정리해고제 2년 유예 조항을 지우는 데 98년 초 민주노총 지도부가 합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노동자 운동의 한계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문을 스스로 열어준 꼴이 된 것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전면화되면서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 철폐’라는 주장 아래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노동자 운동 내에 존재해 왔다. 이 논쟁은 대중적 구호 수준에서는 이미 정리되었다. 누구나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외친다. 비정규직을 그냥 둔 상태에서 단지 차별을 철폐하자는 비정규직 보호법으로는 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8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저임금과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게 된 데에는 지난 시기 노동자 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에 잘못 대처한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국의 모든 사업장, 학교, 병원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넘쳐나고 있고, 각종 탈법, 편법 고용이 횡행해 그 문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자식들, 조카들, 형제자매들, 제자들 등 주변을 돌아보면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7월22일 대법원 판결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이 해결책이라는 일반 상식을 벗어나고 있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은 지난 십여 년 간 진행된 과정에 대한 결산이며, 노동자 운동이 보여 왔던 한계를 돌파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연대 투쟁에 대한 요청이다. -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 연대하고 있고, 금속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하는 등 민주노조 진영의 연대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현대차지부는 과거 정규직의 고용만을 우선해 식당 아줌마들의 해고를 묵인했고, 류기혁 열사의 열사 규정 문제로 불거져 나왔듯이 비정규직 투쟁을 자기 문제로 안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지부는 교섭 의제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여져 있던 균열은 아직 완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 관계의 차이는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이 취했던 전략을 가지고는 해소될 수 없다. 소위 사회연대 전략의 이름 아래 정규직이 모범을 보여 비정규직에게 양보를 함으로써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고, 자본의 양보를 끌어내자는 것이 주된 흐름이었다. 이 전략은 얼핏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둔 채 정규직의 양보를 통해 약간의 처지를 개선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설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잘 되어 보아야 정규직에게는 비정규직이 자신의 몫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동정심, 아량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현실에서는 실효성이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만이 커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규직이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자본은 양보를 하지 않는다. 정규직을 끌어내려 하향평준화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지배 전략을 구사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자본의 의도에 딱 들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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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행히도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 자본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이윤을 지적하고 있다. 작년도에 8조원의 순이익을 냈고, 지금 사내 보유금이 10조원이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데 드는 수천억원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상향평준화하는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압박해서 노동자 전체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거대한 이윤은 현대차만 쌓아논 것이 아니다. 작년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삼성, 현대, SK, LG 할 것 없이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남겼다. 전국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고,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가능했던 이윤을 되찾는 것이 과제이지, 정규직이 양보를 하고 비정규직은 온정주의적 관점에서 ‘보호’되어야 할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올해 들어와 기륭전자, 동의오토에서 볼 수 있듯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뉴코아 이랜드 사측에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사측이 패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일반 여론도 투쟁하는 노동자 편에 우호적이다. 현대차 사측은 대화를 거부하고 공권력과 용역을 동원해 연행, 납치, 구타 등을 자행하고 있어 남은 수가 폭력 밖에 없는 듯하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이번에는 투쟁을 잠재우고 양보 교섭이나 이끌어 냈던 과거의 관행을 불식하고, ‘뻥파업’, 양치기 소년의 불명예를 벗어나야 한다.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이 노동자 총단결과 연대투쟁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