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비록 중단되었지만 예상보다 짧았던 것은 의외였으며 안타까웠다. 그것은 이번 투쟁이 예전의 투쟁과는 남달랐으며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뉴코아-이랜드 투쟁이후 다시 찾아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분노와 대중투쟁을 가능케 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는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이다.
또한 지난 7월 22일의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판결과 1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이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명의 현대자동차 근로자 지위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확고히 함으로써 도덕적·법적 정당성이 우위에 있는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의식과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양되었고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즉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가 투쟁의 주체로 굳건히 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투쟁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파업투쟁을 하기 전에 노동운동진영은 타임오프 투쟁에서 커다란 패배를 맞보았고, 정부는 직업안정법 개정 등을 통해서 파견제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더욱 확산시킬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파업투쟁 중단 후 고용노동부가 현재 2년으로 제한돼 있는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노동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는 것을 보면 이번 파업투쟁이 더욱 아쉽기만 하다. 벌써 자본은 객관적인 사회형태에 의한 지배를 강고히 하는 전략들을 끊임없이 개발하지 않는가?
역시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 진보진영과의 연대는 태생적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수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망과 연대의 끈을 뿌리치고 울산 1공장 농성해제와 야 4당 중재에만 앞장선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등의 지도부와 야당들은 무책임했던 것이다.
이번 파업투쟁은 파업해 본 노조와 그렇지 않은 노조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케 했다. 파업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에 파업 노동자들의 눈빛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제까지 정규직 노동자계급과 비정규직 노동자계급 사이에 행동의 연대는 없었지만, 항상 실패의 연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연대가 전술적 연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투쟁이었다.
이번 파업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투쟁의 향배는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 여부 자체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노동자투쟁의 전망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비정규직 사업장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프랑스 사상가 소렐은 “총파업 신화로 대중 단결”을 강조했다. 그는 총파업을 자본주의 체제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고 전면적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결별하기 위해서 조직되어야 하며 따라서 특정 공장이나 특정 산업에서 국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량적 파업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서의 총파업이 적극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투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던 투쟁의 열기는 탄력을 상실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 노조가 파업의 주체에서 교섭의 객체로 바뀌면 비정규 투쟁은 그 전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성과도 없고 투쟁의지와 동력을 상실하고 난 후에 초심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 이상 군말이 필요없다.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