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사실의 힘 르포문학-(2)르포문학의 유래

참된 2009. 9. 5. 22:02

사실의 힘 르포문학-(2)르포문학의 유래

 

1920·30년대 저널 폭발 시기에 등장
창시자 체코 에곤 에르빈 키슈…대중매체 빈 자리 채우는 역할

 

 

2008년 09월 25일 (목)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경남도민일보

 

 

 

 

   
 
  마산시 신포동 철공소거리의 양정동 씨. 그는 나사에 구멍을 뚫는 일을 반복했다. /이일균 기자  
 

"그 참 찍지 마이소 고마."

그래도 그는 인상을 찡그리지는 않았다. 계속 추근댔더니 포기한 듯 다시 기계 앞에 앉았다.

"일도 없는데 뭘 찍을라카노. 이 일이야 오데 일 겉습니꺼. 전에는 아줌마들한테 시●던 일인데…"

그는 다시 기계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마산시 신포동 대우백화점 앞쪽 철공소거리의 광성정밀 양정동 대표가 그렇게 앉은 자리에는 빨간 플라스틱 박스에 구멍 뚫린 나사가 수북했다. 30년 숙련공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단순 반복작업은 2008년 9월 이 나라 경제의 단면이었다.

1981년 그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철공·정밀·인쇄 등의 업종에서 중소규모 공장과 점포가 200개를 넘었다. 한때 '신포공단'으로도 불렸던 곳이 지금은 20~30개의 점포만 남아 그 명칭마저 잃었다.

서울의 '삶이보이는 창' 공동르포팀 10여명은 지난 2004년 1년간 이런 식으로 곧 없어질 청계천 주변의 상가와 공단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삶의 기록 <마지막 공간>의 '여는 글'에 실린 '르포에 대한 정의'가 매섭다.

"현대인들은 '이미지로 보여주는 삶'에는 열광하고 탐욕적으로 소비하지만 '현실적인 삶'은 외면하고 배제한다. 그리고는 이내 이미지조차 낡은 것으로 만들어서 버려 버린다. 끊임없이 새것만을 갈구하는 네오마니아들이 돼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현실로 남고 그것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르포는 열광하는 이미지와 삶 사이를 뒤집어주고, 연결시켜 주며, 회복시켜주는 매개체이다."

◇르포문학의 유래 = 당시 이 글을 썼던 르포작가 김순천은 설명을 덧붙였다.

"대중은 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정보에 의해 요동합니다. 그들은 매체가 가상으로 재현한 것을 또 가상으로 체험하죠. 피상적인 이미지와 정보는 위험합니다. 그것은 세계를 깊게 이해할 수 없게 하며, 미래를 예견하는 힘을 빼앗습니다. 이렇게 대중매체가 실패한 자리에 르포문학, 넓게는 르포예술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다큐멘터리 영상, 르포문학과 미술, 다큐사진 같은 거죠."

다음에 적는 르포문학의 유래는 김순천 작가가 지난 4월 <한겨레21>에 썼던 '르포기획' 관련 기고에 바탕을 두었다.

르포문학은 신문·잡지같은 대중매체가 폭증했던 1920~30년대 유럽에서 출발했다. 당시 수없이 발간됐던 신문과 잡지는 '저널리즘'을 탄생시켰고, '저널리즘'은 근대이후 '사적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됐던 문학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논쟁에 불이 붙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저널리즘을 '언어를 오염시키는 잉크노예'라고 몰아붙였고, 독일의 벤야민은 저서 <주유소>에서 "바로 지금 삶을 구성하는 힘은 신념이 아니라 사실이다"고 했다.

이처럼 저널리즘의 등장과 언론의 상업주의 성찰을 통해 탄생한 것이 '르포르타주 문학'이었다. "르포르타주는 시사적 사건에 대한 보고로, 사실성과 객관성을 요구하며, 일상에 대한 유용한 사실 서술을 넘어서는 예술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할러와 미첼의 정의가 등장했다. 당시 독일에서 활동했던 체코의 에곤 에르빈 키슈는 르포집 <쏘다니는 리포터>로 '르포문학의 창시자' 칭호를 얻었다.

 

 

※ 이 기획취재는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라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면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