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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산시 진동면 신기마을에 살고 있는 김하경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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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마창노련>은 연대별 소주제에 따른 객관적 서술과 당시 관계자 발언기록이 중간중간 결합된다. 이런 식이다.
「"사실 그 전에야 어디 작업복 입고 다녔습니꺼. 근데 인자는 아예 작업복 입고 출퇴근하는 게 예사가 됐어예. 아가씨 만나러 다방 갈 때도 일부러 작업복 입고 안 갑니꺼."
'작업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 1987년 7·8월 대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남긴 가장 큰 상징적 변화이며, 의의였다.-상권 41쪽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
르포는 엄연히 진실에 뼈대 둬…당시 기사, 자료로서 가치없어
그렇다고 완전히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문장 중간중간 수사와 글쓴이의 주관이 개입된 단어가 혼용된다.
'1987년 숨가빴던 한 해가 저물어가던 12월 14일이었다. 굳은 악수를 나누는 발기인들의 눈빛엔 감격과 흥분, 불안과 초조감이 교차하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19개 노조대표자 및 간부 약 5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47-19개 발기 노조는 마산수출자유지역 8개-타코마, 중천, 시티즌, 수미다, 동경전파, 산본, 소요, 스타-와 창원공단 11개-세신실업, 대원강업, 삼미금속, 한국중공업, (주)통일, 기아기공, 현대정공, 부산산기, 부영공업, 창원공업, (주)산다-등이다.)
이로써 마창지역 노동자들은 해방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동자의 지역연대조직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맹'의 깃발을 이 땅에 당당하게 휘날리게 되었다. -상권 63쪽 '마침내 마창노련의 깃발 오르다'
내용의 핵심이었던 '라면 100박스' 분량의 참고자료. 그 자료들은 각 노동조합과 마창노련 보관 자료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창원군지 1995.1.1, 경남노동자협의회 <7·8월 마산창원지역 노동자투쟁일지>, 창원대 1987년 <봉림문화> 8집, 김용기·임영일 <80년대 지역노동운동사연구-80~87 마창지역을 중심으로>, 경남대 1991년 <노동복지연구> 10집, 김하경 <그 해 여름> 도서출판 세계. 1991, 1993년 11월 <전진하는 노동자> 19호 '김하경이 만난 노동자-한국중공업 최병석 취재기' 등. 이를 비롯해 상권 1장 '어깨 걸고 나가자 1988'까지의 참고문헌만 30건을 넘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이 책은 조합원의 입장에서 썼어요. 앞으로 조합원의 입장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로 쓸 수 있다고 봐요. 특히, 정파운동의 측면에서도 서술됐으면 해요. 또, 민주노총이 있듯이 한국노총도 있지 않아요. 이 모두를 다룬다면 명실공히 '마창 노동운동사'가 되지 않겠어요. 그제야 전체적 윤곽이 드러나는 거죠."
"아까, 이 책은 조합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고 했죠. 나의 입장에서 쓴 것이 아니라는 의미예요. 내가 숨은 거지. 결국, 적나라하게 못 썼다는 거예요. 물론 글을 상대적으로 적나라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을 내놓지만, 대개 뒤에 것이 채택됐죠. 처음엔 이 기록을 바탕으로 내 입장을 담은 소설을 쓰려 했죠. 아직 그 계획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르포에서는 사실, 혹은 진실이 가장 중요하죠. 엄연히 그 점에 뼈대를 두고 있고, 사실이 아닐 때는 설득력이 없어지니까. 왜, 어떤 이해관계를 다루는 르포에서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고, 얼마나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충분히 사실이 조작될 수도 있겠죠."
작가에게 신문이나 방송의 기사와 르포의 차이를 묻자, 그는 경험을 들려줬다. "제가 '내사랑 마창노련'을 쓸 때, 저는 신문기사에서 '날짜'만 확인하는 정도였어요. 그만큼 당시의 기사라는 게 노동현장에 근거하지 않았고, 자료로서 가치가 없었다는 거죠."
※ 이 기획취재는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라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면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