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사실의 힘 르포문학](1)기사와 르포, 소설

참된 2009. 9. 5. 21:41

[사실의 힘 르포문학](1)기사와 르포, 소설

현장의 기록, 문학의 새 동력으로

 

2008년 09월 22일 (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경남도민일보

 

 

 

'전남에서 40대 축산 농민이 신병을 비관해 자신의 축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일 전남 영광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께 영광군 영광읍 덕호리 서모(48) 씨의 축사에서 서 씨가 축사 기둥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 영광한우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서 씨는 지난 8년간 소를 키워왔으며 최근 3년 동안 심한 우울증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영섭이 아저씨도 떨고 있었다. 그도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 보일러 기름 값이 너무 비싸 겨울에는 집에서 지낼 수 없어 산에서 나무를 해 와 난로에 불을 때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지냈다. 오랜 시간 태양을 먹어 오디처럼 검어진 그의 얼굴에는 밭고랑처럼 주름이 깊게 놓여 있었다. 그가 만졌을 흙의 양을 생각했다. 그가 발 딛고 있는 넓은 들판만큼은 될까.' (르포)

'지방신문을 들여다보던 두 사내가 수군거렸다. 일산중공업이 땅을 사서 공업단지인지 일산왕국인지를 조성한다는 기사를 보고 한 사내가 말했다. 그건 말뿐이고 내막은 땅장사가 목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처음 듣는 소문이라 상기의 귀가 솔깃했다. 일산중공업은 요즘 라인별로 뚝뚝 떼서 소사장제로 독립시키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만 독립체 행세하는 거고 실상은 자본이고 기계고 영업이고 완전 일산에서 틀어쥐고 움직이는 한 회사나 마찬가지였다.' (소설)

위의 세 가지 글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사실에 근거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글의 장르는 각각 다르다.

우선, 맨 위 글은 지난 5월 10일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 다음은 지난 2005년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 모임'이 만들었던 공동르포 <부서진 미래>의 일부다. 마지막은 김하경 작가의 소설 '젊은 날의 선택' 중에서 뽑았다.

기사와 르포, 소설의 구분에 대해 팔레스타인 현장르포 <아부 알리, 죽지 마>를 썼던 오수연 작가는 관대하다.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취재형식을 취하잖아요.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이 다를 뿐이죠. 그중에서 르포는 내가 만난 사람이나 상황이 이야기의 중심이에요. 그 대신 소설은 내 이야기를 중심에 둬요. 제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거죠."

◇르포문학 취재를 시작하며 = 여기서 기사와 르포, 소설이 그 맥락에서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매주 월·목요일자에 20여 회 연재될 기획을 시작하면서 르포, 혹은 르포문학을 자연스럽게 이해해보자는 차원.

   
 
  사실이 발생하는 삶의 현장은 르포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사진은 창원시 동읍 고추 비닐하우스 현장의 한 농민. /이일균 기자  
 

소설가 김하경은 경남의 대표적 르포작가이기도 하다. 르포문학의 보고로 꼽히는 <내 사랑 마창노련>을 3년6개월간의 기록분류와 현장탐사 끝에 1999년 완성했다.

"르포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개념이 필요하다. 또 그런 유의 르포 소개가 자주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극단적이었다.

"결국 소설이 죽어가기 때문이에요. 왜, 예전엔 '전지적 작가'라고 해서 이야기 전반을 관할하던 작가의 '신'적 위치가 보장됐었는데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또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글이 교류되는 세상이니까."

 

김하경 소설가 "르포에 대한 개념 정립 필요…"팩트의 힘 바탕해 픽션을 결합한 '팩션' 주목

김 작가는 이어 나름의 어법으로 르포문학을 정의했다.

"문학적 상상력이 영상과 인터넷에 의해 점령돼가는 현대사회에서 100% 사실의 기록이 오히려 진정한 문학의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사실, 르포가 문학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거의 저널리즘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일본에서는 뒤에 문학을 붙이지 않고 그냥 '르포'라 한다.

그렇지만 르포의 광범위한 영역은 '르포가 문학임'을 증명한다. 기사와 소설, 시(詩)를 비롯해 르포의 영역은 사실과 현장취재에 근거하는 한 모든 글쓰기 형식을 망라한다.

이즈음 김하경 작가가 자신의 서재에서 황급히 책을 하나 들고 나온다.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다.

"처음엔 작가가 일가족 살인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적 변화과정을 신문에 연재할 계획이었죠. 그때 가진 르포였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범인이 체포됐어요. 그러면서 작가가 갑자기 범인에 관심을 두게 되고, 범인과 그의 친구, 마을사람들의 변화를 추적해 소설로 내죠. 그래서 이 책은 팩트와 픽션의 합성어인 '팩션'으로 불렸어요."

※이 기획취재는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라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면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