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포투쟁으로 울산구치소에 구속 수감돼 있는 이영도 민주노총울산본부 전 수석부본부장이 최후진술을 위해 써놓은 글을 보내왔다. 이영도 전 수석부본부장에 대한 재판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몇 차례 나눠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비참한 노동현실과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없는 이유
저는 작년 추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던 즈음에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족장공으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집단 상담한 바 있었습니다. 진정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사용자(피진정인)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들의 급여명세서와 임금이 입금되었던 통장을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니 소속업체명과 통장에 적혀 있는 임금 송금인이 수시로 변경되어 있어 이들의 진정한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매년 퇴직금을 정산해 지급받았는데, 사용자는 40% 내지는 60%의 삭감지급에 동의하지 않으면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여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삭감지급 동의서에 도장을 찍고서야 퇴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사용자의 횡포에 항의하는 일부 노동자에게는 매월 지급되어야 하는 임금마저도 제때 지급하지 않는 수법으로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노동자는 자신을 소개해 준 용역업체에 매월 알선료를 지급해야만 한다며 임금에서 하루 일당을 매월 공제당했다고 했습니다.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처리를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다친 몸으로 출근하여 일해야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무법천지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수년간을 사용자들이 행한 각종 악행을 감내하며 일해야만 했습니다. 감히 누구도 그것의 시정을 요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더 이상 근무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자 저(민주노총울산본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기 어렵다 하실지 모르겠으나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로부터 배운 바 없지만 아니 거꾸로 노동조합운동은 불온한 것이라고 배워 왔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조 필요성을 묻는 조사를 진행하면 자신들에게도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답변하는 노동자들이 무려 90%에 육박하는 통계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전체 노동자 중 노조 가입율은 고작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노조로 뭉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선 노동조합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수단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노동기본권 행사가 그나마 있던 자신의 일자리마저 빼앗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수도 없이 듣고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자신과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알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운동이 넘어야 할 산이고 기필코 극복해야 할 절실한 과제입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밥입니다
노동조합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장에서는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은 막가파식 노무관리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개선하려고 그 위험을 각오하고 노조를 만들어 다년간 투쟁해 온 결과입니다. 저는 노조야말로 대부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게을리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입(口)입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많은 사업장에서 사용자는 곧 하늘이고, 그의 말은 곧 법이 됩니다. 사용자들이 행하는 갖가지 불법과 악행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터무니 없는 말로 합리화됩니다. 특별히 가진 밑천이 없는데다가 아이들 공부시키며 내일도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온갖 모욕을 견디며 입안에 맴도는 하고픈 말을 삭혀야만 합니다.
무노조 체계나 어용노조 체계에서는 그런 체계에 굴복한 비굴함의 댓가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입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입은 복종을 표시하고 밥을 먹기 위한 입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들이 건설하는 자주적 민주노조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억울하고 부당한 것은 시정하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학교입니다
2000년 12월이었습니다. 울산지역 정화조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악랄한 노무관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겨 자녀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았다고 가족이 어찌 그것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서로에게 누가 될까봐 자녀들은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그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 활동을 펼치면서 비로소 직업에 귀천이 있어 자신의 직업이 부끄럽다는 인식을 털어버릴 수 있었답니다. 누구도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노조활동이 자신들에게 안겨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단결하지 못한 개개인의 노동자들은 조건상 사용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할 말을 하기보다는 종종 침묵하는 비굴함을 선택합니다. 정의를 선택하기보다는 쉬이 포기해서는 안될 자존심을 버리곤 합니다. 이 같은 노사관계는 결국 자기 자신을 무시하게 하는 결과에 이르게 만듭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하는 일도 타인의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노동조합(운동)은 자신의 존엄함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학교와도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