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한미FTA 쟁점 재부상.. '불가론'은 소멸?

참된 2008. 11. 13. 19:51

한미FTA 쟁점 재부상.. '불가론'은 소멸?

오바마 등장, 조기비준론-선대책후비준론-재협상론 힘겨루기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참세상   2008년11월10일 16시21분

 

 

오바마 당선과 함께 한미FTA 이슈가 정세 한 가운데 절묘하게 자리잡았다. 안팎의 요인이 없었다면 양국 의회는 비준을 했어도 벌써 했을 일이다. 양국의 대선, 미국산 쇠고기 협상,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미 의회의 상황, 오바마 미 대통령의 당선과 무역협정에 대한 태도 등과 맞물려 한미FTA의 운명을 점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불가론-졸속협상론’에서 ‘선대책후비준-재협상론’으로
 

한미FTA는 두말 할 것 없는 참여정부의 유산. 이를 물려받은 한나라당은 한미FTA의 조기 비준을 내걸었다. 재계의 요구와 한 맥락이다. 12일 공청회를 거쳐 17일 이전에 외통위에 상정한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 미룰 경우 미 의회를 압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고, 의회 상정 결과를 들고 미국을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는 올해 안에 FTA 관련 이행법안을 모두 처리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미FTA에 대해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중요한 협정으로 인식해온 만큼 임기 내 처리 의지를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상황이 바뀐 만큼 정부와 한나라당으로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다. 현실적으로 미국 의회의 조기 비준이 어려운 점을 감안, 오바마 행정부의 재협상 요구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하반기 쯤에야 다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가능한 압박해나간다는 입장이다.
 

이혜민 통상교섭본부 FTA교섭대표는 오늘(10일)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와 관련, 한미FTA에 부정적인 언급을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우리라도 먼저 국회비준을 받는 게 재협상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를 대비해 우선 국내 비준을 처리하고 이후 응수에 타진한다는 셈법이다.
 

한편 민주당은 ‘선대책후비준’ 입장으로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에 나설 경우 실력으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재협상’론도 고개를 들었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 9인은 오늘(10일) ‘(가칭)한미FTA 졸속비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가칭)’ 준비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1년 반 전, 한미FTA 반대 태도로 ‘졸속협상론-불가론’이 큰 갈림이었다면 지금은 ‘선대책후비준론-재협상론’이 자리를 매꾸고 있어 격세지감이다. 막바지 천정배 의원 등이 풍찬노숙을 단행하며 졸속협상 반대 목소리를 낸 걸 제외하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다수가 발 벗고 나섰던 일이었다.
 

‘선대책후비준론’은 한미FTA 추진을 기종사실화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입장 변화는 아니다. 다만 한미FTA 추진이 원조세력인 친노세력에서 한나라당으로 바뀌고, 협상 당사자인 미국의 대선 결과가 영향을 미치는 현 시점, 친노세력으로서는 꽃놀이패로 쓰기 안성맞춤인 모양세다.

 

실물경제 위기 맞는 미국과 오바마, 자동차산업부터 살리고 볼 일
 

협상이 타결된 지난 해 4월 1일 이후 1년 반. 당시 예상으로는 양국 의회가 비준 처리 절차를 밟고, 발효를 선언하면 이르면 2010년부터 한미FTA가 적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어디서 꼬였을까. 한국에서 FTA 추진의 대세의 입장에서 보면 17대 국회에서 처리했어야 할 일이다. 해태한 건 아니다. 지난 5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나 조기 비준 합의를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 탓이다. 4월 미국산 쇠고기 협상 타결은 한미FTA 추진 뿐 아니라 방송 장악과 민영화 추진 등 신 정부의 모든 일정을 마비시켰다. 공은 18대 국회로 넘어왔다.
 

미국은 자국 산업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상하원 선거 승리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한미FTA 협상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 보호를 내세워 한미FTA의 자동차 분과 협상 내용을 거론한 데다, 당선 이후 오바마 측이 경기부양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7일부터 시작되는 부시 행정부의 레임덕 회기 중 한미FTA의 처리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한 분위기다.
 

현재까지 오바마 당선인과 민주당이 한미FTA 재협상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한미FTA 자체를 부정적으로 거론한 바도 없다. 오바마 측의 무역통상정책에 대한 기본은 ‘외국의 시장개방 확대와 국제적인 노동 및 환경기준을 준수한 자유무역협정 지지’이며, 한미FTA 협상 내용 중에는 단지 자동차 분과와 관련한 공정무역 자체를 문제삼았을 뿐이다.
 

노동.환경 조항은 눈에 띄는 결격 사유가 없다. 오바마는 10월 15일 열린 3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한국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4000~5000대도 안 된다”며 공정무역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지난 해 한국의 대미 흑자가 420억 달러에 이른다.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산업은 미국 제조업의 척추이자 해외 원유 의존을 낮추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 점도 자유무역협정에 있어 공정무역 의지의 표명이자 자동차산업 살리기, 즉 실물경제 위기 대처가 우선임을 강조한 대목으로 분석된다.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은 9일 “자동차 산업은 미국 경제의 핵심”이라며 “고연비.고효율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 재설비 등에 250억 달러의 연방정부 자금을 신속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위기에 처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구제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의 필요를 주장했다.
 

오바마가 어떤 방식으로든 한미FTA의 재협상을 거론한다면, 이는 정치적 요인에서가 아니라 특히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미국의 실물경제 위기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된다. 현재로서는 그밖에 한미FTA 체결 내용의 재협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없다.
 
 

한미FTA 쟁점, 시민사회 재논의 가능성은? 
 

이처럼 미국 대선 결과와 맞물려 국내에서 한미FTA 비준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룰 것으로 보이지만, 한미FTA의 실익 문제와 누구를 위한 협상인지의 문제가 다시 제기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으로 하듯, 한국 역시 한국 자본의 활로 개척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자본단체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당시 환영 논평을 내고 한미FTA의 조기비준 등 양국 통상현안에 대해 속도를 내줄 것을 기대했다.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와 자유시장 경제에 기반한 한미FTA 등 양국간 현안이 발전적으로 풀리길 기원했다.
 

달러체제의 위기와 한국에서의 사회양극화와 성장잠재력의 약화, 실물경제의 심각한 위기 조짐은 한미FTA 협상 개시 당시, 4대 선결조건 논란 때부터 지적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 투자시장의 개방으로 미국 자본과의 융합이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미국 자본과의 전략적 동맹 내지 제휴의 강화는 신자유주의의 위기의 해소 방향이 아니라 더많은 신자유주의를 통한 돌파 방안으로 평가됐다.
 
한국 자본이 한미FTA를 추진한 배경이 주력산업의 재편을 포함한 차세대 성장동력 투자와 맞물렸고, 참여정부와 자본은 장차 위기 극복의 모멘텀을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노동유연화를 통해 찾는다는 구상을 펼쳐보였다. 한미FTA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유무형의 제도와 가치를 미국식 표준화, 단일화로 재편함을 의미했고, 양국 협상단의 전광석화 같은 협상 추진에 따라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거부하는 대안의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시간은 꽤 흘렀고, 다시 한미FTA가 초미의 이슈로 등장한 지금. 오바마 당선인 측의 눈치를 보며 재협상 없이 한미FTA 의회 비준을 바라는 재계와 보수세력, ‘선대책후비준론’을 거론하며 정쟁 수단으로 관심을 경주하는 한미FTA 원조세력, 아쉬운 대로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하며 재협상을 제기하는 일부 의원들이 물고물리는 대결 국면에 들어갔다.
 

2006년 2월 공청회를 기점으로 약 14개월간 ‘불가론’을 펼쳤던 주체들의 목소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