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에는 투사가 없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원들의 삶과 애환
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를 길동무 삼아 찾아간 서울 금천구 디지털산업단지 기륭전자 앞 농성장. 3일 오전 <매일노동뉴스>가 찾은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분회장 김소연) 농성장에는 1천일이 넘는 장기투쟁의 긴 시간을 말해주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기륭분회 동지들의 투쟁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망입니다."
금속노조 산하 각 분회 조합원들이 매단 현수막들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농성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농성장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 벽면에는 학생들의 지지글이 빼곡했다.
하지만 기륭전자로의 복직을 요구하며 집단단식에 들어간 조합원들의 모습은 이들의 농성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20여일째 단식에 들어가니 분회원들의 얼굴이 안 좋아요. 지금 보세요. 뼈만 앙상하잖아요." 경비실 옥상에서 분회원들을 바라보던 김소연(39) 분회장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단식으로 인한 배고픔과 건강악화만이 아니다. 5분 이상 걸리는 화장실까지의 거리,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 심지어는 가족과의 관계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싸워야 할 '대상'이고 참아야 할 '조건'이다.
“화장실 가기가 두렵다”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 박행란(47)씨는 단식 중인 조합원 가운데 최고령자다. 장기간의 단식농성으로 설사병을 앓고 있지만, 화장실에 가기가 두렵다.
“화장실까지 걸어가면 5분이 걸리는데 혹시 거기까지 가다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겁나요.” 기륭전자 주변에 있는 화장실은 농성장 앞에 있는 이동식화장실과 옆 상가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분회원들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 몸으로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토로하는 박씨의 말은 씁쓸했다. 이동식화장실이야 단식 중이기 때문에 역한 냄새가 어지러워 못 간다고 하지만, 상가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일부 지역민들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요.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그래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김 분회장의 말에 따르면 2년 전에는 주변 상가에서 분회원들에게 밥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는 김 분회장 역시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경비실 옥상에 설치된 천막 뒤쪽에 마련된 화장실은 유아용 변기였다.
“동지들이 이틀에 한 번씩 비워주는데 많이 미안하죠. 어디 조선시대 왕도 아닌데. 반드시 승리로 보답해야죠.” 김 분회장은 비협조적인 일부 지역민에 대해서는 “최근에는 지나가면서 음료수도 사다주는 등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웃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화장실까지 왕복 10분 거리를 힘겹게 오가고 있었다.
“엄마가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초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인 두 딸을 두고 있는 윤종희(39)씨는 중학생인 딸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지난 2일이 큰딸 생일이었는데 아침밥도 챙겨주지 못했다. 윤씨는 오랜 농성으로 많은 빚을 졌다고 했다. 미용업을 하는 남편이 있지만, 매월 월세 내고 아이들 교육비·대출이자 등을 내다보니 어느새 빚이 8천만원으로 불어났다. 매월 150만원에 가까운 수익은 두 딸아이를 공부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큰딸을 학원에 계속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윤씨는 “무엇보다 엄마가 필요할 때 챙겨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행란씨에게는 대학에 입학한 작은딸과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큰딸이 있다. 그는 예전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가끔 정규직 시절과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를 비교하곤 한다. 박씨는 “한 달 30만원에 달하는 학원을 정규직 때는 보낼 수 있었는데 비정규직 임금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새 신발을 받고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까워 신지도 못하는 큰딸 얘기를 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한참 꾸미고 싶은 나이에, 신발 하나 마음껏 신지 못하게 하는 부모 입장이 어떤 건지 아세요?”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잖아요”
취미가 십자수와 비즈공예라는 이현주(28)씨는 3년 전부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20대의 황금기'라는 25세에서 28세까지의 시간을 농성으로 보낸 것이다.
"솔직히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전에 친구에게 말했는데 '미쳤다' 라는 소리만 들었거든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이씨는 곧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손수 만든 머릿방울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씨는 1천일이 넘는 농성기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나이만 먹어가고 주변 친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며 "29세가 되기 전에는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이씨는 요리책을 읽고 있다. '요리를 잘하게 되면 남자친구에게 먼저 선보일 생각이냐'는 질문에 수줍어하면서도 이씨는 당당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남자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배울 건 배워야죠. 앞으로 목도리도 뜨고 싶어요. 아직 나에게는 기회가 있잖아요.”
- 장기투쟁사업장의 대명사 '기륭전자'
서울 금천구 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기륭전자는 '불법파견'과 '문자메시지 해고'로 잘 알려진 곳이다. 기륭전자에 노조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05년 7월. 생산직 3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10여명 남짓이었고, 대다수가 파견직(250여명)과 계약직(40여명)이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은 곧 노조결성으로 이어졌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분회장 김소연)다.노동부는 같은해 8월 기륭전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회사측은 분회에 가입한 100여명의 생산직에게 문자메시지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분회의 파업과 회사측의 직장폐쇄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장기화의 길로 들어섰다.하지만 분회가 희망을 걸었던 불법파견 판정은 2006년 11월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판정을 내리면서 뒤집어졌다.
분회는 이후 회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고공농성과 단식을 통해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100여명의 조합원은 30명으로 줄었다.
분회는 지난 5월 말부터 회사측과 교섭을 진행하면서 복직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했다. 교섭은 5월11일 조합원들의 서울시청 앞 조명탑 고공농성을 계기로 시작됐다. 회사측은 교섭 과정에서 신제품 개발을 위한 국내 생산라인으로의 복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결국 지난달 10일 "중간관리자들이 복직을 반대한다"며 결렬을 선언했다.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들은 교섭이 결렬된 다음날인 지난달 11일 집단단식 농성에 들어갔다./정청천 기자
최종편집 : 2008-07-05 14: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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