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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꿀잠을!

참된 2018. 1. 7. 18:32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꿀잠을!

[작은책]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기 위한 쉼터,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
2017.10.08 10:46:42    프레시안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의 오래된 주택가 틈에 알록달록 이쁜 마음들이 모인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이 문을 열었습니다. 거리가 집이고 현장이고 투쟁 장소인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2년여의 준비 기간을 통해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퇴진 촛불 정국만 아니었어도 조금 빨리 당겨질 수 있었는데 많이 늦어졌네요. 광화문에서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겨울을 보냈던 비정규, 투쟁 사업장 동지들이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두 팔 걷어붙이고 리모델링 작업의 주축이 되었답니다.  

꿀잠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2년 만에 2000명의 후원자가 7억6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아 주셨고, 공사 기간 100일(5월 11일~8월 19일)동안 건축두레로 함께해 주신 분들이 연인원 1000명이 넘었어요. 다음 '스토리펀딩'과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이 힘 모아 주신 <두 어른 전>,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 만든 잡지 <꿀잠>을 판매해 목돈을 마련하고,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건물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도 건축두레 방식으로 철거, 설계, 용접, 조경, 도색 등 리모델링 작업을 재능 기부와 꿀잠꾸러기들의 손으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페이스북 사진.


주인이 수십 명인 집이라 건축가나 현장소장도 많이 힘들어했어요. A 공간 작업 시작하면 이 공간은 이렇게 사용될 거라는 서너 명의 주인들이 문제 제기하고 토론하고, 다시 원점에서 공사 시작하고, 매번 이런 과정 속에서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었어요. 전문가들이면 2, 3일이면 끝나는 작업을 건축두레로 온 비숙련자들(꿀잠꾸러기)이 공사비 아껴 보겠다고 시작했다가 2주일이나 끌어서 식대가 더 들었던 건 부지기수고, 공사 기간이 늘어지면서 작업 순서가 뒤죽박죽돼서 재작업과 추가 보수 공사 진행까지 참 일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지하 공연장 공간은 휴가 기간 학생 봉사단이 작업해 놨던 걸 다시 뜯어내서 300만 원어치의 원목을 버릴 뻔한 적도 있었어요(제가 문제 제기의 원흉이었죠). 그 원목 살려 보자고 며칠 동안 철거하고 못 빼내고 해서 결국 70퍼센트 정도는 살려냈어요. 그런 과정에서 꿀잠은 더욱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소연 마님'과 '흥희 아씨'로 통하는 기륭전자분회 두 동지들은 꿀 잠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분들이죠. 꿀잠꾸러기들에게는 조물주 보다 높은 건물주님이라며 놀림을 받고서도 항상 호통과 웃음으로 제압(?)하는 동지가 있어요. 동네에서는 '팔 다친 주인아줌마'로 통하는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동지는 꿀잠의 상임운영위원장으로 건물을 사고, 짓고, 운영하는 모든 일을 맡고 있습니다. 겨울에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서 석 달이면 뼈가 붙을 거라고 했는데, 반년이 넘도록 깁스를 풀지 못하고 있네요.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겠지만 주변 동네 사람들의 텃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사 소음부터 먼지, 외부 공간 조금 바꾸는 데도 동네 사람들에 게 허락받아야 하는 상황, 위험한 사람들(?)이 온다는 주변 건물주들의 견제 등등. 온갖 민원들 속에서도 팔 다친 주인아줌마이자 우리의 건물주님은 열심히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뛰어다녔죠. 간식이 부실하다고, 일이 힘들다고, 익숙하지 않은 공사 일 하다 다쳤다고 투덜거리는 꿀잠꾸러기들에게 사랑의 꾸짖음과 애정 어린 무시로 많은 원망도 받았지만 가장 맘 고생 몸 고생 했던 주인마님이시죠.

광화문 캠핑촌 엄마이자 청소반장으로 통했던 유흥희 동지는 꿀잠 공사 기간에도 청소와 작업 뒷바라지 다 하느라 몇 년은 늙어 버린 것 같아요. 꿀잠 공사 기간 동안 와 보신 분들은 분홍색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모든 공사 현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흥희 아씨를 보셨을 거예요. 공사 막 바지에 우리 집도 이렇게 청소 안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을 때도 이 집을 사 용할 노동자들 생각하라는 야단을 맞으면서 걸레질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무리하면 100명까지 소화할 수 있는 음향과 영상 시스템을 갖춘 지하 공연장 '판'과 전시 공간 '땀', 1층은 카페 겸 식당 '꿀잠'과 장애인 쉼터, 빨래방이 준비되어 있고요, 4층은 방 3개 쉼터와 거실, 대형 샤워장이, 5층은 영등포 최고의 야경을 자랑하는 꽃밭과 여성 쉼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직 계약 기간과 재정적 문제 때문에 2층과 3층은 세입자들이 계세요. 내년에는 이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소식 전에 비정규 투쟁 사업장 동지들을 모시고 꿀잠 활용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한 적 있어요. 쉼터 기능과 교육, 회의 공간의 활용, 영화 상영, 언론 교실,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의견들을 주셨어요.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기 위한 쉼터, 그거 하나만으로도 너무 소중한 공간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죠.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지만, 벌써부터 손님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투쟁 사업장 동지들이 서울에 일 보러 와서 묵어가기도 하고 상경 투쟁 중인 사업장 동지들이 조를 나눠서 쉬어 가고 있습니다. 투쟁 사업장에 연대해 왔던 시민단체들도 아껴 뒀던 총회를 진행하면서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공간도 만들었고 문도 열었지만 아직도 소소한 공사가 남아 있고 운영에 대한 준비들도 고민 중 입니다. 아직 빚도 많고요. 작년 <두 어른 전>으로 큰 도움 주신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이 또 한 번 책을 팔아 빚 갚아 주시겠다고 하시네요.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꿀잠 건물 입구에는 꿀잠에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진 연대의 벽이 있습니다. 아직 미완성이지요.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서 꿀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꿀잠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관심 가져 주시고 연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조금씩 더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정규·해고 노동자들의 꿀잠을 돕는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6-701-442424(사단법인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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