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돌파구? 심상정 "강한 리더십"
시사INLive 김동인 기자 입력 2015.12.17. 15:23
예산안 처리 마지막 날인 12월2일, 국회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예산안 협상이 늦춰지면서 본회의 개회 시각도 계속 미뤄졌다. 정치인과 기자들이 모두 양당 의원총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국회 한편에서는 몇몇 이들이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정의당 의원과 당원의 릴레이 단식이 11월30일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당원 2만여 명, 소속 국회의원 5명. 원내 유일 진보 정당으로 꼽히는 정의당의 ‘외형’이다. 정의당 개별 의원들의 전투력은 각 상임위에서 각광받는다. 하지만 집단으로서의 정의당은 영향력이 작은 변수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두 원내교섭단체의 협상이 법안 처리의 지렛대가 되면서 정의당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이슈 파이팅에는 능하지만, 제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정의당은 번번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총선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혼선이 가열되면서 야권 공멸이라는 위기감이 커가고 있다. 제1야당이 죽을 쑬수록 진보 정당의 입지 또한 좁아진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칙이었다. 위기 속에서 정의당은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단순 생존을 넘어 어떻게 대안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까. 12월2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고 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까지 돌입했다.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진보 정치가 압력단체를 넘어 유력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꼭 도입되어야 한다. 한국 정치의 새로운 물갈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치 불신이 아무리 커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1, 2등을 하도록 뒷받침하는 선거제도하에서는 어떤 새로운 정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의원 정수 확대도 먼저 공론화했는데….(편집자 주:심상정 대표는 국회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120석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2014년 정의당이 3:1 지역구 인구 편차에 대한 위헌 심판 청구를 했고, 헌재가 그걸 받아들였다. 현 선거제도가 표의 등가성을 훼손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지역구 인구 편차를 2:1로 줄여야 할 때, 불가피하게 지역구 의석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비례대표를 줄여서 지역구 늘리는 식으로 개악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당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 목표로 제안했다.
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하면서 제도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선관위 제안에서 ‘권역(지역별로 비례대표를 뽑아 지역 대표성을 보완하는 형태)’이 강조되었지만, 사실 연동형이 중요하다. 선관위는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려 권역별 비례를 하자고 했지만, 지금처럼 비례대표가 줄 가능성이 있을 때 권역은 의미가 사라진다. 중요한 건 유권자의 표심에 비례해 의석수를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 제도로는 1000만 가까운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농어촌 지역구 의원의 반발이 크다. 지역 대표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표의 등가성이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보다 더 우선한다. 헌법재판도 선거제도에서 1인1표의 등가성이 가장 우선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농어촌과 농어민의 대표성을 보장하려면 비례를 확대해서 농어민 비례 의석을 보장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강기갑 전 의원은 농어촌 지역구 의원보다 훨씬 더 농민을 위해 헌신해왔다. 비례를 축소해서 농어촌 지역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현역 의원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투표 가치 평등을 훼손해도 좋다는 사익 추구적인 발상이다.
내년 총선 목표가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이라고 밝혔다. 만약 목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안 되고, 비례의석이 지금처럼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나?
변함없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샤츠슈나이더(미국 정치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군소 정당과 유력 정당의 차이는 당의 크기, 의석수 차이가 아니라 종류가 다른 당이다.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서 유력 정당이 되려면 교섭단체가 되어야 한다.
야권연대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승자독식 선거제도 아래서 작은 정당에 연합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선거제도를 공정하게 바꾸지 않은 채, 현 제도에서 거대 정당이 부당하게 가져간 기득권은 정치적 해법으로라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마치 소수당의 민원 봐주기 식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국민들이 연대의 의미를 체험했느냐가 중요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문제에서 야권이 협력해 제대로 대응한다는 신뢰가 축적되어야 한다. 보수 정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야당이 연대해야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정권이 크게 일탈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야권이 공조하라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정권이 일탈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공조 대상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내홍에 정신이 없다.
분파·계파·노선 싸움은 정당이면 다 있는 갈등이다. 문제는 제1야당이 대안 권력으로 새누리당보다 더 유능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니까 상임위 유관 부처 장관뿐 아니라 국·실장도 야당 의원들에게 고개를 뻣뻣이 든다. 관료들이 잘못한 게 있어도 긴장하지 않는다.
제1야당의 리더십이 문제라고 보나?
리더십과 더불어 정치적 신념의 문제다. 정당은 정치적 신념의 결사체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뚜렷한 것 하나 있긴 하다. 민주화. 그런데 그것은 이미 검증됐다. 선거제도나 각종 현안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민주화 세력’이라는 간판도 떼야 한다.
심상정 대표는 분열에 대해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진보 정당의 분열과 통합 과정에서 늘 최전선에 있었다. 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정계에 진출했지만, 이후 진보신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까지 당적을 여러 차례 바꿔야 했다. 정의당 초창기에는 스타 정치인 효과에 기댈 뿐 전국적인 대중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없으리라는 비관론에 직면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비관론이 지목하는 ‘스타 정치인’의 대표주자가 바로 심 대표다. 분열의 역사를 몸으로 겪은 심 대표는 이날 오히려 ‘강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문제는 당에 있고, 해법도 당에 있다'라고 말하며, 지난 진보 정당의 분열 속에서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아프게 반성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앞으로 정의당의 외연이 확장된다면 어떻게 될까. 계파 갈등으로부터 정의당은 자유로울 수 있나? 민주노동당 때부터 정파 갈등이 있었는데.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독한 소리 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리더를 말하는 게 아니다. 리더의 권한과 책임이 제도화된 정당이 되어야 한다. 과거 진보 정당은 공동대표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방식이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보다 정파 담합 구조를 키우고 진보 정치를 약화시킨다는 내부적 성찰이 있었다. 정의당이 완전 단일지도체제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4자 통합(국민모임·노동정치연대·진보결집더하기와의 통합) 이후에도 상임대표를 맡게 됐다.
4자 통합 과정에서 일부가 공동대표제를 요구했지만, 진보 정치의 뼈아픈 성찰을 수용해 단일지도성 협력체제로 결정했다. 집단지도체제는 권력은 나누지만 책임은 나누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심 대표가 문재인 대표의 처지라면, 혁신 전당대회를 열자는 안철수 의원의 제안에 어떻게 대응하겠나?
전당대회라는 제도에서 선출된 리더라도 능력이 안 되면 사퇴하라는 공세는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사퇴하라면 모를까, 사퇴하고 다시 전당대회를 열어 붙어보자는 문법이 정당 민주주의에서 통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리더십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정의당 내부에서는 공유되어 있다고 보나?
그렇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진보 정치의 실패 과정에서 내가 가장 크게 성찰한 대목이 바로 리더십 문제다. 그동안 진보 정치는 옳고 그름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해왔다. 이견을 서로 인정하는 게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점을 당내에서 많이 공유했다. 일정한 정치적 신념 체계를 갖추기 위해, 정당은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당원교육을 제도화하고, 생활당원들의 정당으로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당이 위기에 몰렸다고 해서 오픈 프라이머리같이 당원의 권한을 공중분해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문제도 당에 있지만, 결국 답도 당에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공천제도 개혁은 정치개혁이 아닌가?
지금껏 대한민국에서는 정치개혁을 한다며 정당을 약화시켜왔다. 지구당을 없앨 때에도, 마치 정당은 부패 집단이고 탐욕스러운 집단처럼 몰아세웠다. 당원 손을 벗어나서 완전국민경선제로 가자는 것도 결국 정치를 축소하고 정당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정당이 약해지면 정치가 견제해야 할 관료·시장·각종 권력기구의 힘이 더 강해진다.
정의당이 대안 세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동안 정의당은 국민에게 ‘미생 정당’으로 인식되었다. 노동·복지 쪽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외교나 안보 쪽으로는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대안 정당이라기보다는 민생 문제에 이슈 파이팅하는 정당으로 인식돼왔다.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미리 구축하고 그동안 취약했던 분야에 여러 인사를 영입하고 있다. 김종대 국방개혁단장(군사 전문가)이나 추혜선 언론개혁단장(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 첫 공식 일정으로 백령도를 방문하거나, KF-X(한국형 전투기 사업)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에 놀라는 이들이 적잖았다.
정치권에서 안보 이슈가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야권이 적극적인 비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국방 문제가 비판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천문학적인 방산 비리, 군 인권 문제, 군 장비 낙후 문제 등에서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지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안보를 구축하기 위해 활동할 것이다.
당 대표 선거에서 조성주 후보(현재 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미래정치센터 소장)가 화제였다.
정의당 당원의 약 80%가 40대 이하다. 당원이 자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다른 당은 청년의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우리 당은 주체가 청년이다. 중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젊은 정치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세우고 있다. 양성에는 출마도 포함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나?
새누리당에 대한 견제구는 되겠지만, 야당을 선택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국정화 문제를 '획일주의냐 다양성 함양이냐, 과거로 가느냐 미래로 가느냐'의 문제로 본다. 여야의 문제나 이념 대결로 보고 있지 않다. 지나치게 정략적인 관점에서 다루면 오히려 국정화 반대 여론을 모으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야권이 최선을 다해야 할 현안 중 하나로 노동 관련 법안의 개정이 꼽힌다. 정부와 여당은 기간제와 파견근로자를 확대하려 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다. 원래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하면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이걸 4년으로 연장한다는 발상은 기간제법 취지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 파견법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축소해야 한다는 게 법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이 대상을 확대해서 대기업의 불법 파견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은 전경련의 민원을 충실하게 뒷받침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노동개혁이라고 부르며 강행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자만 희생시키겠다는 악의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박 대통령은 나름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본다. 재벌을 쪼아대는 한편으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선물 보따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바마나 메르켈, 하다못해 아베까지도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내수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으려면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하잖나. 그래서 그들은 월급 올리기에 골몰한다. 우리 박 대통령만 정반대로 가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노동문제가 중요할 것 같은데….
지금보다 내년 총선이 정말 중요하다. 환노위(심상정 의원은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는 여당 의원들에게 비인기 상임위라 여야 의원 배분이 8:8이다. 그런데 총선에서 야권이 질 경우, 이 구성이 바뀔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악을 전략적인 우선순위에 두면서 다음 국회에서 환노위를 전략 상임위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정녕 노동자의 삶을 지키려면 죽기 살기로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김동인 기자 /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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