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나경채 "진보 통합은 국민의 뜻…10%에서 희망을 본다" |
'대중적 진보 정당'으로 4개 세력 뭉쳐…"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자" "내년 총선 20석, 실현 가능한 목표…'청년 정의당' 새로운 전통 만들 것" |
입력 : 2015-11-10 오전 11:06:33 뉴스토마토 |
진보 정당에 있어 통합은 아픔이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진보 진영의 선택은 다시 통합이었다. 지난 3일 정의당과 '진보결집+',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는 하나의 정당을 만든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의 통합은 몸집 불리기에 그치지 않는다"며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노동자·서민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이라고 했다. 진보 정치의 생명을 걸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진보 정당의 풍파를 몸소 겪은 '진보결집+' 나경채 대표(42)는 기쁘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45주기를 맞아 통합을 알릴 수 있어서였다. 그는 지난 2005년 민주노동당 서울 관악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진보 정당에 발을 들였다.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관악구의원으로 당선되며 현실 정치도 경험했다.
나 대표는 진보 정당이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노동자·서민과 함께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진보 정당 지지율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본다.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22일 창당대회를 통해 한 자리에 모인다.
진보결집+ 나경채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진보 세력이 뭉쳤다.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리될 때, 그 흐름에 함께했다. 그때는 진보 정당이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리하게 하나의 틀 안에서 아옹다옹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아옹다옹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나 평등에 천착하는 진보가 있으면, 북한과 관련된 문제를 중요시하는 진보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은 진보 정당이 나뉘면 안 된다는 건가.
진보 정당이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을 때는 2004년 총선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당 득표율이 13.03%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 득표율을 모두 합하면 9% 정도 된다. 적어도 10명 중 1명은 여전히 진보 정당에 정치적 희망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실망을 안긴 것을 고려하면 아직 적잖은 국민이 여당과 제1야당이 아닌 정치 세력에 기댄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보 정당이 3~4개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는 100%의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본다. 통합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합진보당 사건 때 경험했으면서도 통합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진보적 유권자들의 바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9%에서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본다는 건데.
그럴 수밖에 없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건 이후 진보 진영의 문제점이 부각됐다. 그 사이에 유의미한 정치 활동도 하지 못했다. 무상급식·무상보육이 성공했을 때만 해도 진보 정당의 정책이 정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1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한 것은 우리가 잘 해서가 아니다. 지지자들이 희망을 걸고 있어서다.
-노동당 대표를 지내다가 올해 탈당하고 '진보결집+'를 만들었다. 지난 총선을 1년 앞둔 2011년에도 당시 진보신당에서 심상정·노회찬·조승수 전 의원이 탈당해 '새진보통합연대'를 결성했다. 통합을 위해서였다. 그 결과물이 통합진보당이었는데.
그때의 흐름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4년 전에는 심상정·노회찬·조승수 전 의원이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당원들의 저항이 컸다. 하지만 나는 '진보 통합'을 내걸고 당내 선거를 통해 노동당 대표가 됐다. 처음부터 진보 통합을 정치적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당원 총투표로 결정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의원대회에서 당원 총투표안 자체가 부결됐다. 통합을 위해 당원들이 뽑아준 당 대표인데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당원의 총의를 확인하지 못하고 나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통합진보당 세력과의 통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세력'이 어느 선까지를 얘기하는지.
당연히 주요 세력과 함께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다. 여기에 대해선 나도 이견이 없다. 확고한 입장이다. 정당 해산은 부당한 처사라고 보지만, 그 단초가 됐던 여러 계기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특히 미국이나 북한에 대해 왜곡된,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괴리감이 있는 시각이 내부에 존재했다. 그러한 문제가 합리적으로 수정되지 않으면 당을 함께하기 어렵다. 외부에서 봤을 때 아직 변화가 감지되지 않은 느낌이다.
-옛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배제한다면 평당원은.
그것까지 안 된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통합 정당의 지도부는 어떻게 구성되나.
22일 창당대회에서 3명의 공동대표를 선출한다. 정의당 부대표에 새로운 세력의 부대표를 추가해 대표단도 함께 구성하기로 했다. 공동대표를 누구로 할지는 아직 확정이 안 됐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
-비례대표 선출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사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다. 그런데 진보 정당이 가진 전통 가운데 하나는 당원 직선을 거쳐 공직후보자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누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년 총선에서도 진성당원제의 전통에 따라 1인 1표 직선으로 비례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래서 양보하거나 배분한다는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통합진보당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누구도 독점할 수 없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심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20석을 목표로 잡았다고 했다.
20석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상징적인 숫자다. 사실 원내교섭단체라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20석을 넘지 못하면 국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빼버린다. 국회의원은 하나하나가 국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데, 교섭단체 제도가 활동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이를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것이 헌법정신에 가깝고, 보다 민주적이다. 거대 정당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자력으로 이룰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선언적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로 삼으려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 관악에 출마하나.
그러려고 한다.
-지난 4·29 재보선 관악을에서 당시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야당 텃밭이라 불리는 곳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 정동영 후보를 제치고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를 어떻게 지켜봤나.
괴로웠다. 4·29 재보선은 여러 의미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독주하는 상황에서 정권 교체에 대한 희망을 보고자 하는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제1야당은 승리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테고. 제3세력을 자임한 국민모임이나, 진보 세력을 통합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려고 했던 나로서도 그 선거로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군다나 관악을은 통합진보당 의원이 당선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진보 정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는 선거였다. 애초에 정동영 전 의원이 관악을 선거 후보로 나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대선 후보를 지냈어도 지역 정치 지형을 보면 당선이 힘들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출마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마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이 계속 분열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단일화를 시도했다.
-통합 세력 대표 가운데 젊은 축에 속한다. 지난 정의당 대표 선거에선 조성주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진보 정치의 세대 교체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진보 정당에는 30대 후반에서 40대 당원이 많다. 당직자나 중요한 직책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그렇다. 진보 정당의 주체는 젊어지고 있는데, 아직 대표 정치인들은 큰 변화가 없다. 세대 교체라는 말이 나올 만 하지만, 누가 시켜주는 게 아니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모여서 정치적 힘으로 발전할 때 가능하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청년들이 자기 문제에 대해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청년 담론이 계속 나와야 한다.
-청년 정치인들을 발탁할 생각은 없나.
당장 선거에 몇 명 내보내는 것보다는 청년 목소리를 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 통합 과정에서도 '청년 정의당'을 만들자는 얘길 하고 있다. 독립된 정당처럼 재정 지원을 하고 그 안에서 인력과 사업 계획 등을 스스로 해나가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상대적 자율성과 재정 권한을 함께 부여할 생각이다.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스웨덴 사민당처럼 집권 경험이 오래된 유럽 진보 정당의 전통이다. 대체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비례대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최우선으로 꼽는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가.
전태일 정신이다. 전태일이라는 노동자는 자기보다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나눠주며 먼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리고 노동자의 길을 발견하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다시 전태일로 돌아가서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고, 청년과 여성 문제에 몰두하며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진보정당이 돼야 한다.
이순민·박주용 기자 soonza00@etomato.com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선언 기자회견에서 대표단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모임 김세균 대표, 노동정치연대 양경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진보결집+ 나경채 대표.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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