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뚝에서 온 편지]조금만 더 당신들의 이불을 밀어주세요
-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입력 : 2014-12-24 21:23:46ㅣ수정 : 2014-12-24 21:39:37 경향신문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떠올리면 겨울나무가 연상된다던 어느 배우의 말이 떠올랐다. 쩍쩍 갈라지는 겨울나무를 닮았다 했다. 물기 없는 겨울나무를 떠올리게 한다고도 했다.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굴뚝에 올라오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겨우내 이파리가 썩으면서 영양분과 물기를 채우는 겨울나무의 슬픈 순환을.
오로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젖은 땅 위에서 걷고 뛰고 바닥에 배를 밀고 머리도 찧어봤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공장 동료들이 있는 이곳 굴뚝은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마른 땅이다.
이효리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에 앞서 굴뚝에 오른 첫날 트위터에 “날도 추운데 다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봤다. 그리고 닷새 뒤 “해고되었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고 그렇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이효리씨의 글을 접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랍고 고마웠다. 사회적으로 노동 문제, 특히 해고 문제만큼은 그동안 입을 떼기가 어려운 사안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가 먹고사는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이 사회 자본과 권력의 대칭점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가 유독 많은 이들의 연대와 지지를 낳은 이유는 파업 당시 진압 장면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저항의 발가락을 한시도 땅에서 떼지 않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굴뚝에 오르자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부터 노엄 촘스키 그리고 인도가 낳은 세계의 석학인 스피박까지 지지와 연대를 보내오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다. 고통에 대한 응답이며 구조 요청에 대한 회신이다. 그러나 이 신호와 연대가 굴뚝에 오른 쌍용차 해고자 둘만을 위한 것인가. 그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국내외에서 날아든 햇살은 공장 안 동료들의 어깨와 공구 든 팔에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친구이자 벗인 슬라보예 지젝이 이곳 굴뚝을 가리켜 ‘세계를 비추는 등대’라 한 것도 공장 안 동료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있었다. 바다 없는 등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너른 바다를 향한 손짓이다. 지금 쌍용차 굴뚝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굴뚝을 넘어 담장 안을 가리키고 있고, 공장 안 동료들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굴뚝은 사방이 뚫린 도넛 모양이다. 전방과 후방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굴뚝으로 비추는 모든 햇살과 연대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에 전후방 효과가 있는 것처럼. 쌍용차의 정상화는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쌍용차 해고자 가운데 정년을 3년 앞둔 늙은 노동자와 새하얗게 머리를 민 김득중 지부장이 함께 고구마를 굽는 모습을 굴뚝에서 지켜봤다. 출퇴근하는 동료들에게 따스함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아프게 바라봤다. 따스한 고구마를 품속에 넣고 고맙다며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내려다봤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자본이 갈라놓고 돈이 떼어놓은 참혹한 경계의 6년을 우리가 따뜻한 온기로 녹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곳 굴뚝에서 매일 확인한다.
사람들은 굴뚝 위의 우리에게 외롭지 않냐고, 춥지 않냐고 묻는다. 괜찮냐고 다그치듯 다시 묻곤 한다. 대답한다. 외롭지 않고 춥지 않고 고독하지 않다고. 아직도 바깥세상으로 걸어나오지 못하는 쌍용차 해고자에 비하면 이곳은 가장 따뜻한 곳이라고.
비에 젖고 눈에 굴러 몰골이 흉측한 지금의 모습으로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손을 내민다. 우리 뒤의 200명 가까운 해고자들을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지난 6년, 공장 안 동료들에게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쌍용차 작업복 입고 평택 시내를 마음 편히 활보하지 못했던 6년이라고 본다. 사람의 온기가 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냄새, 그 온기만큼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회사가 어떤 말을 하고 재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결국 삶을 책임지고 가꿔나갈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 법 위에 밥이 있고, 제도 위에 사람이 있다.
열사나흘 밤낮으로 굴뚝을 본다. 바람에 쓸려 자취를 감춰버리는 흰 연기 닮은 어떤 이들을 생각한다. 쓰러지고 태워지고 갈기갈기 찢겨 사라진 26명의 동료를 생각한다. 그 이름들, 이젠 찾아주고 싶다. 6년간 다투고 6년간 별거한 사이가 하루아침에 한 이불을 덮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부탁이다. 발등까지만 혹은 무릎까지만, 조금 더 손까지만 당신들의 이불을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떠올리면 겨울나무가 연상된다던 어느 배우의 말이 떠올랐다. 쩍쩍 갈라지는 겨울나무를 닮았다 했다. 물기 없는 겨울나무를 떠올리게 한다고도 했다.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굴뚝에 올라오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겨우내 이파리가 썩으면서 영양분과 물기를 채우는 겨울나무의 슬픈 순환을.
꼬일 대로 꼬인 쌍용차 문제를 풀겠다고 쌍용차 평택공장 70m 굴뚝에 올라 앉은 지 열흘에서 사흘이 더 지났다. 바람과 친구가 됐고 눈과 한 차례 인사를 나눴지만 비만큼은 가까워지기 싫은 이곳이다.
오로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젖은 땅 위에서 걷고 뛰고 바닥에 배를 밀고 머리도 찧어봤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공장 동료들이 있는 이곳 굴뚝은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마른 땅이다.
이효리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에 앞서 굴뚝에 오른 첫날 트위터에 “날도 추운데 다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봤다. 그리고 닷새 뒤 “해고되었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고 그렇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이효리씨의 글을 접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랍고 고마웠다. 사회적으로 노동 문제, 특히 해고 문제만큼은 그동안 입을 떼기가 어려운 사안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노동의 문제가 먹고사는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이 사회 자본과 권력의 대칭점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가 유독 많은 이들의 연대와 지지를 낳은 이유는 파업 당시 진압 장면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저항의 발가락을 한시도 땅에서 떼지 않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굴뚝에 오르자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부터 노엄 촘스키 그리고 인도가 낳은 세계의 석학인 스피박까지 지지와 연대를 보내오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다. 고통에 대한 응답이며 구조 요청에 대한 회신이다. 그러나 이 신호와 연대가 굴뚝에 오른 쌍용차 해고자 둘만을 위한 것인가. 그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국내외에서 날아든 햇살은 공장 안 동료들의 어깨와 공구 든 팔에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친구이자 벗인 슬라보예 지젝이 이곳 굴뚝을 가리켜 ‘세계를 비추는 등대’라 한 것도 공장 안 동료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있었다. 바다 없는 등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너른 바다를 향한 손짓이다. 지금 쌍용차 굴뚝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굴뚝을 넘어 담장 안을 가리키고 있고, 공장 안 동료들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굴뚝은 사방이 뚫린 도넛 모양이다. 전방과 후방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굴뚝으로 비추는 모든 햇살과 연대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에 전후방 효과가 있는 것처럼. 쌍용차의 정상화는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쌍용차 해고자 가운데 정년을 3년 앞둔 늙은 노동자와 새하얗게 머리를 민 김득중 지부장이 함께 고구마를 굽는 모습을 굴뚝에서 지켜봤다. 출퇴근하는 동료들에게 따스함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아프게 바라봤다. 따스한 고구마를 품속에 넣고 고맙다며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내려다봤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자본이 갈라놓고 돈이 떼어놓은 참혹한 경계의 6년을 우리가 따뜻한 온기로 녹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곳 굴뚝에서 매일 확인한다.
사람들은 굴뚝 위의 우리에게 외롭지 않냐고, 춥지 않냐고 묻는다. 괜찮냐고 다그치듯 다시 묻곤 한다. 대답한다. 외롭지 않고 춥지 않고 고독하지 않다고. 아직도 바깥세상으로 걸어나오지 못하는 쌍용차 해고자에 비하면 이곳은 가장 따뜻한 곳이라고.
비에 젖고 눈에 굴러 몰골이 흉측한 지금의 모습으로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손을 내민다. 우리 뒤의 200명 가까운 해고자들을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지난 6년, 공장 안 동료들에게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쌍용차 작업복 입고 평택 시내를 마음 편히 활보하지 못했던 6년이라고 본다. 사람의 온기가 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냄새, 그 온기만큼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회사가 어떤 말을 하고 재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결국 삶을 책임지고 가꿔나갈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 법 위에 밥이 있고, 제도 위에 사람이 있다.
열사나흘 밤낮으로 굴뚝을 본다. 바람에 쓸려 자취를 감춰버리는 흰 연기 닮은 어떤 이들을 생각한다. 쓰러지고 태워지고 갈기갈기 찢겨 사라진 26명의 동료를 생각한다. 그 이름들, 이젠 찾아주고 싶다. 6년간 다투고 6년간 별거한 사이가 하루아침에 한 이불을 덮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부탁이다. 발등까지만 혹은 무릎까지만, 조금 더 손까지만 당신들의 이불을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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