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교수

“민족 이산이 빚어낸 미술까지 온전히 담고 싶었다”

참된 2014. 12. 5. 00:55

“민족 이산이 빚어낸 미술까지 온전히 담고 싶었다”

등록 : 2014.12.03 19:07 수정 : 2014.12.03 21:47     한겨레



신간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는 서경식씨.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 미의식의 특장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재일동포 소수자인 나의 미술과 미의식은 대체 어떤 것이냐는 의문을 품게 됐다”며 “그런 의문이 미술 순례의 근원적 동기가 됐다”고 했다. 사진 제공 반비

‘나의 조선미술 순례’ 펴낸 서경식 교수

민족 이산과 소수자 문제에 천착해온 재일동포 학자 서경식(63·도쿄경제대학 교수)씨의 미술기행서들을 읽는 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불편한 체험일 수 있다. 93년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펴낸 이래 <청춘의 사신> <고뇌의 원근법> 등을 잇따라 낸 저명한 미술논객이지만, 그의 책들은 즐거움이나 정보를 주는 길라잡이가 아니다. 교토에서 민족적 차별을 느끼며 자랐고, 조국에 유학간 두 형이 간첩 누명을 쓰고 수감되자 뒷바라지했던 소수자 체험이 동서고금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항상 날카롭게 투영돼왔다.
사진 제공 반비
60줄 넘긴 서씨가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최재혁 옮김)를 펴냈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가 8명을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작품을 관찰하고 조명한 내면의 기록이다. 지난주 독자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2일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중학동 근처의 호텔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제목부터 부끄럽고 불편한 책이 됐다”고 운을 떼고는 “‘나는, 우리는, 민족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이 이땅의 작가와 미술품을 보는 시선 이면에 녹아든 책”이라고 했다. “한국미술은 근현대 우리 민족이 중국과 일본 각지로 이산하면서 빚어낸 미술을 온전히 담지 못합니다. 조선미술은 학대받았던 말입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뜻하거나, 조선왕조의 미술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분단상황에서 조선미술이 제 미술기행의 성격에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10여년간 그가 한국을 드나들면서 만난 근세, 근대, 현대의 작가 8명과의 만남과 작품 관찰의 기록을 담는다. ‘현실과 발언’ 동인이었던 작가 신경호씨와 국제무대의 스타작가로 약진한 정연두씨,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 윤석남씨, 벨기에 입양아 출신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작업해온 작가 미희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과 작품을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리얼리즘 대작들을 남긴 이쾌대는 일제 전쟁화 맥락에서 고찰한 논문으로, ‘미인도’, 풍속화첩의 18세기 화가 혜원 신윤복은 혜원을 여장남자로 그린 소설을 쓴 이정명씨와의 대화로 만났다. 홍성담, 송현숙 작가는 수년 전 대화 내용을 부록에 실었다. 분단상황에선 조선미술이란 말이
내 미술기행 성격에 가장 타당
나는 소수자·경계인·주변부 사람
책 속 작가들도 조선미술 주변부
이들 통해 미술 본질 알고 싶었다 나는, 우리는, 민족은 어떤존재인가
물음이 시선 이면에 녹아들었다
“체계적인 선정기준은 아니지만, 책 속 작가들 대부분은 ‘조선미술’의 주변부에 있습니다. 저또한 일본에서 자라면서 한국 미술을 알지못한 채 일본 미술의 우월성 교육만 받았습니다. ‘한국미술’ ‘우리미술’은 근대 국가주의가 깔린 개념입니다. 주변부 작가들을 통해 이땅 미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보려했던 거지요.” 책에서 작가들을 바라보는 잣대는 시대와 더불어 변화하는 문맥이란 요소다. 한살 위인 신경호 작가는 거의 동년배인데도, “근대 이전의 사람처럼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과 성향을 지녔다는 데서 기묘한 감상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가장 젊은축에 속하는 정연두 작가에게서는 리얼리즘도 판타지도 아닌,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객관성이 공존하는 ‘한국적’ 특징을 찾아낸다. 다양한 서민들의 삶을 포착한 정 작가의 사진들에서 읽어낸 ‘어떤 종류의 외로움’은 가족과 민족을 객관적 문맥으로 파악하려 할 때 피해갈 수 없는 감각이라고 풀이했다. 태어난 직후 이산의 아픔을 겪은 작가 미희와 교유하면서 그를 우리 미술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고도 했다. ‘미인도’ 같은 혜원 그림이 남성적 기호를 그다지 발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를 성적 소수자로 볼 수 있다고 한 해석은 파격적이다. “경계인 입장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미술과 미의 개념에 대해 의미있는 개입을 하고 싶었습니다. 책 속 작가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란이 많이 생길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술도 인간도 모두 고유의 문맥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죠.” 서씨는 책 발간을 기점으로 20여년 계속해온 미술순례 저작을 일단 접는다. 대신 내년부터 대학에서 인권론과 예술론을 강의하게 됐다고 한다. 한 머리로 여러 생각들을 해야하므로 더 큰 부담이 생겼다고 웃으며 그가 말한다. “미술은 언어적인 로고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담습니다. 저 같은 주변부, 소수자들의 존재와 바로 맞닿는 영역이죠. 어디로 갈 지 모르지만, 그런 친화성이 앞으로도 미술순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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