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2014년판 '파업전야'다"
[인터뷰] <카트>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여정민 기자, 성현석 기자 2014.11.19 16:43:35 프레시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카트>는 명필름의 작품이다. 왜 상업영화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 냈을까. 영화를 직접 촬영한 부지영 감독(☞관련 기사 보기 : 부지영 감독 인터뷰 "싸우는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에 이어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만난 이유였다.
이랜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영화 <카트>는 시작됐다고 한다. "노동운동의 '노'자도 몰랐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해고되고, 싸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상처를 받았다.
그들의 아픈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을 애써 외면했거나 잘 몰랐거나 나의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보편 정서로 다가갔으며 하는 바람"이라고 심 대표는 설명했다.
기획자 입장에서 <카트>는 난이도로 치면 "최상위에 속하는" 소재였다. 작업이 중간에 중단됐던 시기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굳이 이 이야기를 볼까? 어떻게 보게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이 많았다."
영화가 개봉한 지금도 심 대표는 그 고민이 깊다.
"결국 많이 봐야 의미가 있다."
<카트>가 개봉한 바로 다음날인 지난 14일, 심 대표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명필름 사옥에서 만났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아직은 많이 긴장된 상태"라는 그와 나눈 영화 <카트>와 명필름, 그리고 심 대표 이야기다.
"<카트>가 그들의, 우리의 현실을 담아낸 것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
심재명 : 개봉일이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어서 도경수(디오) 팬들이 첫날 아침에 많이 온 것 같다.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중장년층이나 젊은층도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직은 많이 긴장된 상태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화두가 된 시점에 영화가 나왔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트>를 제작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무엇인가?
심재명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2008)을 만든 다음에, 우연히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를 읽었다. 이랜드 파업 당사자들을 인터뷰한 르포집이었다. 그들의 가족 이야기, 파업 과정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한 권의 책이 영화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프레시안 : 어떤 대목이 인상적이었나?
심재명 : 510일의 파업을 하면서 초반에는 ‘팔뚝질’도 어색했다, 며칠이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긴 싸움이 될 줄 몰랐다는 얘기가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여성 특유의 특징이었다. 노동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파업도 처음 해 본 분들인데 웃음을 잃지 않고 유머러스하고…. 그런 얘기들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 그 모습을 집에 돌아온 엄마가 보고 밤새 베겟닛을 눈물로 적셨다는 이야기, 또 둘째 아이 급식비를 못 냈던 아픔을 읽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 이 이야기가 어떤 특정인의 것이라는, 영화로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대중의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 했는데 엄마 선희와 아들 태영의 이야기는 초기부터 바뀐 부분이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촛불 얘기를 했었다. 인터뷰 당시 오랫동안 이어지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보며 절망했다는 얘기였다. (☞관련 기사 보기 : "광화문 촛불 보며 절망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김 위원장 등 당사자들도 많이 만났나?
심재명 : 김경욱 전 위원장은 못 만났고 감독이 다른 사람들은 만났었다. 이랜드 노동자 얘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외박>(2009)도 찾아보고 그랬다.
프레시안 : 당사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 제작 초기에는 당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 점점 바뀌었다고 한다.
심재명 :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가감 없이 만들어줘 고맙다고들 많이 하셨다. 어떤 분은 영화를 보고 이런 문자 메시지도 보내왔다. "노동운동 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어느새 회피하고 싶고 모른척하고 싶은 마음들이 자리 잡았었는데 이 영화 한 편이 내가 있는 자리와 머릿속을 다시 한 번 흔들어줍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살아야 할지, 억울하기도 한데 적어도 더 억울한 세상은 안 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현실, 아니 우리의 현실을 담아낸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계몽 영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했거나 잘 몰랐거나 나의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보편 정서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휴먼영화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결국은 많이 봐야 의미가 있다.(웃음)
프레시안 : 심 대표가 제작한 영화를 보면, 그간 잘 안 다뤄졌던 소재를 새롭게 발굴해 대중적 코드에 맞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특히나 더 금기였을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다룬 남북관계보다도 더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심 대표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심재명 : <카트>에는 사주가 나오지 않는다. 사측을 대변하는 사람도 똑같은 소시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쉽게 분노하고 선악을 쉽게 구분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부당한 현실에 처한 우리의 연대의 소중함을 담고 싶었다.
기획적으로 보면, 난이도 최상위에 속하는 소재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이것을 왜 한다고 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시나리오가 돌직구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완성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들었다. 중간에 휴지기도 있었다. 제작 기간이 꽤 오래 걸렸다.
비결은 따로 없다. 남들이 안 하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 명필름의 가치관이다. 대신 무모하거나 치기어리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얘기를 굳이 할 바에는,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보기 좋아야 한다. 나아가 사람들의 편견, 선입견을 깨트리는 데까지 가야만 의도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프레시안 : 카트 제작 기간 중에 휴지기는 왜 있었던 것인가?
심재명 :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 여성 중에서도 감정 노동자는 제일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과연 돈을 내고 굳이 볼까? 어떻게 보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기획 단계에서 많았다. 시나리오를 쓸 작가나 연출할 감독을 찾는 문제도 쉽지 않았다.
"<카트>는 2014년판 <파업전야>다"
프레시안 : 명필름에서 만든 영화 가운데 <우생순>도 '마이너'한 소재였다. 그런데도 성공했다. <카트>도 노동 문제 중에서도 가장 '마이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작자 입장에서 <우생순>과 <카트>를 비교해 본다면?
심재명 : <우생순>의 성공 때문에 <카트>를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영화는 앞의 영화가 다음 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비인기 종목 여성 선수들의 이야기가 실패했다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우생순>도 만약 남자 핸드볼 선수였다면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127분 동안 거듭됐던 연장전 끝에 금메달을 땄다면 안 만들었을 것 같다. 은메달을 따고도 선수들이 시상대 위에서 졌다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극적이었다. 또 핸드볼은 실제 경기는 인기가 없지만, 몸과 몸이 부딪히는 스포츠여서 영상적인 효과도 있다.
<카트>도 그렇다. 노동운동의 '노'자도 몰랐던 여자들이 파업하는 얘기가 다른 결로 접근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 여자들의 힘은 무엇일까.
프레시안 : 명필름 공동대표이자 남편이기도 한 이은 감독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파업전야>로 유명한 감독이다. 두 사람이 서로 상호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다는 얘기가 많다. <파업전야>와 <카트>는 양 시대의 특징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심재명 : <파업전야>는 14년 전 작품이다. 공장 노동자를 배경으로 한 얘기다. 마지막에 몽키스패너를 들고 앞으로 전진 하면서 안치환의 '철의 노동자'가 울려 퍼진 기념비적인 노동영화였다. 물론 그 영화를 만든 사람과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웃음)
<카트>를 만들면서 <파업전야>를 많이 떠올렸었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감정 노동자,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민감한 부분이라고 여겨졌다. 감정 노동자의 처지나 스트레스가 비정규직의 여러 직종 가운데서도 가장 영화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들었다. 사실 <카트>는 2014년판 <파업전야>라고 불릴 수 있다. 그만큼 현실은 나아진 것이 없다. 어찌 보면 더 나빠졌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파업전야>의 엔딩을 떠올리기도 했다. 두 영화가 닮은 듯, 다른 듯,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를 보여줬을 것이다.
프레시안 : <카트>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면?
심재명 : 선희가 혜미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꼭 예전처럼 즐겁게 일하자고,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 좋았다. 또 아들과 엄마가 촛불을 켜 놓고 서로 이해하게 되는 장면도 좋았다. 영상으로 구현한 장면 가운데 선희가 조합원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순간이 있다. 집집이 돌아다니다가 어느 옥상 같은 곳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 장면이 어둑어둑한 골목길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프레시안 : <카트>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대목이 크라우드 펀딩이다.
심재명 : 이 영화는 무모한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 20억 이상을 들이면 어리석다 싶었다. 그런데 실제 준비를 하다 보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매번 등장하고, 대형마트도 구현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가 돼 버렸다. 결국 30억이 들었다.
애초부터 소셜 펀딩으로 제작비 리스크도 좀 낮추고, 예산 절감의 효과도 보고, 이런 영화를 기다리고 응원하는 힘의 도움을 받자고 생각했었다. <또 하나의 약속>이나 <26년>은 소셜 펀딩의 힘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카트>는 원래 목표보다 적게 돈이 모였다. 1차 모금액의 80~90%는 '엑소'의 디오(도경수) 팬들이었다. 나중에는 노동계에서 많이 응원해줬다.
프레시안 : 왜 두 영화보다 적게 모였을까?
심재명 : 두 영화는 <카트>보다 더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카트>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덜했겠지.
프레시안 : 난이도 최상의 기획 작업이었다고 했는데, 그 어려움을 딛고 영화가 개봉했다. 소회가 있다면?
심재명 :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을 낸다 한들, 그 액수가 클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가지 작업을 한다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너무 지난하고 무모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려도 많이 받고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하시니, 절반의 성취는 해 냈다고 본다. 사실 출연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덜 받은 개런티를 더 받기로 했는데, 헌신한 이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관객 1000만 영화 나와도 창작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영화 현실"
프레시안 :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판이야말로 노동조건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관능의 법칙>(2013) 촬영 당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처음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심재명 : 표준근로계약서가 법제화된 강제 사항이 아니다. 권고사항일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30~40%만 지키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4대 보험 보장이나 정확한 시간제 적용과 관련해 기술적으로 더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영화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영화계의 노동환경 변화는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재명 : 우리나라에서 예술가 복지는 특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때로 열정을 착취하기도 한다. 영화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 즉 창작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은 영화 창작자보다는 자본의 논리, 유통과 배급 환경이 더 우선시된다. 관객 1000만 명이 넘는 영화가 나오고, 영화 관객이 1년에 2억 명을 돌파하지만,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것은 아이러니다. 영화를 만드는 주체의 처우 개선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민간에게만 맡겨 둘 문제가 아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공공기관에서부터 구체적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프레시안 :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면 제작비가 많이 늘어나나?
심재명 : 많지는 않다. <관능의 법칙> 때는 1억2000만 원이 늘었다. 그런데 전체 제작비는 오히려 6000만 원 줄였다. 정확하게 시간을 적용하니 오히려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사실 근무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영화 현장을 운영할지에 대한 프로덕션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노동의 방식이 굉장히 세분화 되어야 하고, 철저하게 계산하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올라가야 한다.
"영화 자체의 힘과 매력으로 관객 사로잡기보다 자본의 힘이 흥행 좌지우지"
프레시안 : 명필름의 영화가 과거에 비해 더 사회성이 강해진다는 인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 사회의 모순, 약자의 문제에 다가가는 것인가?
심재명 : 젊었을 때 영화는 주로 장윤형, 박찬욱 등 재능 있는 신인 감독과 많이 작업했다. 그때는 영화적인 작업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이도 들었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감각이나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도 이동하고, 작업도 나이든 감독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작품 역시 삶과 죽음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명필름 영화들이 이은 대표나 저의 개인적인 능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한 사람들의 공동의 노력이었다.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 명필름영화학교라는 무상기숙학교도 만들었고, 2월 개교를 앞두고 있다. 선배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역할이라 본다.
프레시안 :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지금은 오히려 영화계의 인적 재생산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심재명 : 자신 있게 영화를 꿈 꿔도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꼰대가 되어가는 건지, 요즘 영화가 과거에 비해 질적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찌 보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영화 콘텐츠의 힘 외에 외부 환경, 즉 자본이나 배급의 힘에 의해 영화 흥행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하더라도 아직은 영화 자체의 힘과 개성,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던 시대였다. 지금은 다르다. 저예산 독립영화와 주류 상업영화의 경계도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독립영화 환경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낭만적으로 꿈을 가지라고 얘기하기는 좀 어렵다.
프레시안 : 영화 산업은 성장했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더 열악해졌다고 보는 것인가?
심재명 : 물론이다. 스크린이 2000개가 넘지만, 저예산 예술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1~2% 내외다. 프랑스는 10%가 넘고 일본도 5%가 넘는다. 우리는 정체 상태다. 예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2000개의 극장 가운데 예술영화 전용관은 100곳도 되지 않는다. 상영할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예술 영화 상영관은 수익이 많이 남지 않으니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에도 객석 점유율은 낮아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예술 영화 상영관은 지원을 오히려 취소하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영관을 오히려 지원해준다. 문제가 많다.
프레시안 : 여성 제작자 입장에서 <카트>에 대해 또 다른 측면의 소회도 있을 것 같다. 극장에서 일을 시작해 명필름의 대표까지 오는 과정을 되짚어 보면,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에 대한 고민도 삶에서 나온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심재명 :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영화적 구상을 했다기보다는, 나나 내 주변의 삶을 다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난하게 자랐고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자로 이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감독도 아니고 직접 창작한 사람은 아니지만 체화돼 나오는 얘기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여성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상업적으로 잘 안 된다. 정말 쉽지 않다.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쉬운 건 아니구나, 흥행의 벽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카트>가 명필름의 35번째 영화인데, 참여한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제작사를 믿고 뛰어들어준 것이 고맙다. 누군가 절대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면 그만큼의 책임감이 생긴다. 1년 전에 개봉할 수 있었는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남다른 작품이다. 개봉일도 수능일이기도 하고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기도 했다. 삶에서 서로 끌어들이는 자장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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