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전규석, 금속노조)은 21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회사의 고의적인 선고연기에 손을 들어줬다고 비판했다.
앞서 재판부는 21일과 22일에 걸쳐 현대차 비정규직 1,596명에 대한 불법파견 여부를 판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선고를 15시간도 채 앞두지 않은 20일 밤 9시 경, 돌연 선고 기일을 다음달 18일과 19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원고들 중 일부가 선고에 임박해 소취하서를 제출했으며, 이에 대한 피고의 동의여부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문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재판부는 현대차의 기만적인 선고 연기 술수에 동참해 선고를 연기했다. 이는 정규직 전환 판결을 지연시켜 신규채용이라는 기만적인 꼼수를 이용해 비정규직지회를 교란, 분열하기 위한 술책”이라며 “이번 소송은 1,596명의 개별소송이다. 그럼에도 일부 소취하에 대한 피고 동의서를 받지 않았다며 선고를 연기한 것은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에서 제시한 사유에 따라 선고가 연기된다면, 9월로 미뤄진 선고기일 역시 연기될 가능성도 높다. 노조는 “회사가 어제 연기신청서를 제출하며 올 9월 말 400명 특별채용이 예정돼 있고 그때 또 취하서를 추가로 제출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9월 말에도 동의서를 첨부안하고 선고 직전에 제출해 선고를 또 연기시킬 것이 명백하다”며 “이럴 경우 재판부는 또 형식적인 이유로 재판을 연기할 것인가에 대해 강력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도 법원이 3번에 걸쳐 선고를 연기하며 불이익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박탈하는 등 직무유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19일과 20일에 걸쳐 70여 명이 소취하서를 제출한 것은 현대차가 대리인을 동원해 선고를 연기하는 하나의 수법이다. 재판부가 자본의 장난에 맞장구를 쳐야 하는지 의문스럽다”며 “70여 명의 소취하서에 대한 피고 동의서는 재판부가 즉시 확인을 요구해 하루 만에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절차상 애로가 있다면 70여 명을 제외하고 선고를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사법부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즉시 소취하동의서를 확인해 일주일 뒤라도 선고를 하고 권리구제가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재판부는 현대차의 재판 지연 술수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행태에 대해 사법부가 협력하는 태도는 규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고자인 전홍주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는 “11년간 해고와 구속을 겪으며 불법파견 해결을 위해 싸워왔고 오늘 선고가 첫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선고가 연기됐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며 “현대차는 벌써 울산에 있는 비조합원들에게 신규채용원서를 돌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고연기에 좌절하지 않고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대차나 어제 낸 선고연기신청서를 보면 누가봐도 소취하에 동의할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데, 굳이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재판부의 결정은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라며 “선고기일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46개월을 기다린 재판이 460개월이 되어도 우리는 아무런 판결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오늘 우리는 이 비정상적인 선고연기를 강력히 규탄하며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는 19일부터 신규채용으로 재입사한 사람들 중 소송을 진행중인 사람들을 개별 면담해 소취하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일부터는 현장에서 비조합원들을 상대로 신규채용원서를 배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