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중사

[이라크 사태 어디로 가나]바그다드엔 이미 ‘종파 학살극’

참된 2014. 6. 18. 23:16

[이라크 사태 어디로 가나]바그다드엔 이미 ‘종파 학살극’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4-06-18 21:40:40수정 : 2014-06-18 21:40:40

 

ㆍ(3) ISIL보다 두려운 ‘보복의 악순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턱밑까지 수니파 반군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진격해왔지만, 시아파 민병대의 결집으로 바그다드 함락은 쉽지 않아 보인다.

 

비교적 평온을 유지해온 바그다드를 위협하는 적은 따로 있다. 상대가 시아파 또는 수니파라는 이유만으로 보복 살육을 저지르는 ‘종파살인’ 문제가 또 다른 위협과 공포로 떠오르고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보복 학살을 자행하는 종파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7일 바그다드 곳곳에서는 종파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날 동부 베누크 마을에서는 온몸에 총상을 입은 수니파 청년 4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곳은 시아파 민병대가 통제를 하던 곳이었다. 또 바그다드의 한 영안소에서는 그동안 실종 상태였던 수니파 성직자인 니하드 알 지부리와 사제 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들은 나흘 전 시아파와 수니파가 섞여 사는 사이디야 마을에서 시아파 민병대에게 납치당한 것으로 추정돼 왔다. 사이디야 마을은 2006~2007년 이라크 내전 당시 극심한 종파살인이 횡행했던 곳 중 하나다. 이라크 치안군 1700명을 잔인하게 공개 처형한 ISIL의 바그다드 진격이 임박하자 복수심에 불탄 시아파들이 종파살인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시장서 자폭테러 18일 이라크 바그다드 주민들이 전날 바그다드 내 사드르시티의 시장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테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수니파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번 자살 폭탄테러로 장을 보던 시아파 주민 14명이 숨졌다. 바그다드 | 로이터연합뉴스

 


▲ 복수심 불탄 시아파 민병대 남은 수니파 납치·살해
보복테러로 시아파도 희생
민간인 5만여명 학살됐던 2006년 악몽 재현될 우려


전날에는 바그다드에서 60㎞ 떨어진 바쿠바에서 경찰서에 수감된 수니파 수감자 44명이 시아파 경찰 혹은 민병대에게 무차별 총살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그다드 인구 대다수는 시아파이지만 아직도 20~25%가량의 수니파가 살고 있다.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도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7일 저녁 바그다드 내 사드르 시티의 시장에서는 수니파 테러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 테러로 시장에서 장을 보던 시아파 주민 14명이 희생됐다. 종파 간 보복 살육전은 민간인을 직접적인 타깃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라크 사태가 최악의 수순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라크 주민들은 빠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2006~2007년 이라크 종파 내전이 재연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2006년 2월 수니파 무장단체가 북부 사마라 지역의 한 시아파 사원 황금돔을 폭파하는 사건을 계기로 종파 간 보복 살인이 벌어졌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집에서 끌려나와 총살당하고 시신이 전봇대에 매달렸다. 국제단체들은 그때 5만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2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미군은 당시 종파살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바그다드 내 수니파 마을에 6m 높이의 보호 장벽을 둘러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2006~2007년에는 미군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간 역할을 해줄 존재도 없다”면서 “또다시 종파살인이 시작된다면 그때보다 더욱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인권단체 독립인권위원회의 마스루르 아스와드도 “빨리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라크는 보복이 보복을 낳는 살인사건이 일상화됐던 2006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수니파와 시아파·쿠르드족을 아우르는 통합정부 구성을 이라크 정부에 요구했지만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