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4.02.01 17:10:18 프레시안
한때 진보 진영의 최대 화두였던 ‘노동자 정치 세력화’. 그러나 요즘은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노동 정치의 구심적 역할을 기대받았던 민주노동당은 그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무너져 이합집산했다.
배타적 지지 상대를 잃어버린 민주노총. 노동 배제와 탄압으로 점철되어가는 박근혜 정부.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계는 실종된 노동 정치를 복원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노동자들의 공통된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전략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정리)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전 의장인 이도흠 한양대 교수와 기륭전자 조합원인 김소연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이를 주제로 대담했다. 사회는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이 맡았다. <편집자>
사회자 :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배타적 지지를 하며 만들어진 1차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노동 정치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도흠 :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신자유주의가 가진 모순과 욕망, 공포가 내면화하였다. 중산층이 하층으로 전락하며 계급 구성이 모래시계형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정리해고와 계급 전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파시즘에 동조하게 되었다. 노동자들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화폐 증식의 욕망, 신자유주의적 탐욕과 경쟁을 내면화하게 됐다.
그 결과는 연대 정신의 상실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파로 갈라져 민주노총조차도 잘 연대하지 못하는 조직이 됐다. 이명박 정권 내내 비정규직 투쟁이 없었으면 민주노총도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였다. 지독한 노동 배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노동조합인데, 연대를 잃으면서 권력의 카르텔을 극복하지 못하게 됐다. 다른 사업장의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한 사업장의 투쟁이 다른 사업장의 투쟁으로 일반화하거나 다른 이들을 조직화하지 못하면서 각 사업장 투쟁이 고립된 것이다. 많은 노동자가 경찰 폭력에 맞서 목숨을 걸거나 투옥을 각오하고, 많은 곳은 수천일 동안 파업을 했지만 각각의 싸움은 고립되었다.
제도적인 문제로는 정치적 재현의 위기다. 진보나 노동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무리 적어도 20~30%는 된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재현, 즉 의석 비율은 10%도 안 되는 괴리가 빚어진다. 이와 함께 상당히 많은 노동자와 진보 세력이 이데올로기 조작과 권력에 대한 의지, 사표 방지 등을 이유로 보수 정권인 민주당, 신자유주의 세력과 야합한 정의당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적 이념과 실천이 민주당이나 정의당에 대한 지지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 특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선 분단 모순이 계급 모순을 차단하고, 진보적 의제가 ‘종북’, 빨갱이로 매도당한다. 이에 따라 대중들도 우클릭하고 있다. 전라도는 민주당, 경상도는 새누리당 식으로 지역 갈등에 기반을 둔 지역 프레임 또한 진보적 의제를 녹여 버리고 있다.
대중 스스로 이른바 ‘캐피탈리스트 워커(capitalist worker‧자본가적 노동자)’가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노동자나 진보 인사가 술자리에서는 진보적인 언사를 쏟아내면서도 부동산 투자를 하고 집에 가서는 증권 시장을 확인하며 자신도 모르게 성장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렇듯, 현실은 노동자인데 실천은 자본가로 행동하는 이중화 경향을 드러낸다. 이른바 ‘386’이 우경화하는 데도 이것이 많은 작용을 하였다. 이런 경향들이 서로 맞물리며, 노동자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폭력이 갈수록 야만적이 되고, 노동 배제가 극단화하고 있는데도, 노동의 정치 세력화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김소연 : 정치 세력화를 주제로 논하며, 당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우리는 정보가 없어서 야당 국회의원에게 많은 것들을 부탁해야 했다. 우리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6~1997년 ‘정리해고법’ 국회 날치기 통과에 맞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고, 그 이후 민주노동당 만들며 10명의 국회의원이 생겼다. 당시 키대가 컸다. 민주노동당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뚝심 있게 주장했고, 지금은 무상급식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국회의원을 바랐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유지하고, 더 많은 국회의원을 만드는 데에 주력했다. 유권자와 소통해야 한다며 날 세워서 싸우기보다는 후퇴해 갔다. 민주노동당에 노동자들이 개입하지 못했고, ‘민주노총이 만든 당이니 잘하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과정에서 ‘분당’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노동자당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기성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실망이 생겨났다. 상층의 분열이 현장까지 분열시키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엔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한다는 방침이 작동했다. 그래서 현장에선 민주당을 지지하더라도 밖으로 말을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얘기도 있다.
![▲ 2004년 민주노총에서 제작한 포스터.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민주노총](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40105/art_1391094065.jpg)
급기야는 노동자를 탄압했던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합집산을 지켜본 노동자들은, ‘더는 노동자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구나’ 또는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며 정치에 무관심하게 됐다. 과거에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다고 하면 출세하려 저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돈 모아주며 발로 뛰어줬다면, 이제는 출마한단 얘길 들으면 출세하려 그런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모순의 내면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노동운동과 민주노동당 내부가 무너지면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점도 있다고 본다.
이도흠 : 노동자 투쟁과 의회 정치가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의회를 활용하면서도 의회에 매몰되어 변혁 운동을 약화해서는 안 되며, 운동의 이상과 의제를 의회를 통하여 제도화하고 의회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진보적 이상과 의제를 의회 밖에서 운동으로 구현해야 하는데, 외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 국회의원이 노동자들의 이념과 소망을 정책화, 현실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권화되고, 국회의원이 권력화되고, 정치인으로 변질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지면서 오히려 노동자 출신이 들어가서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지평을 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실망하게 하고, ‘노동자 출신일 뿐이지 정치인이구나’ 하는 좌절을 떠안겼다. 그런 원인에 개인적인 품성, 알력, 역학 관계가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 권력, 학계, 언론, 대형교회로 이루어진 굉장히 공고한 카르텔이 노동자가 지도자로 나서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을 철저히 봉쇄한 결과다.
김소연 : 조직된 노동자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어떻게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대기업이 우리 사주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심각해졌다고 본다. 주식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자본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왔는데 노동자들은 이에 대비하지 못했고, 급기야 무쟁의를 대가로 주식을 받기로 합의해 연대 파업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희망버스를 보면서는 우리 사회의 연대 정신이 아주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는 있었는데 이것을 연결하지 못한 것이었다. 희망버스로 모인 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 계급정치를 중심에 두고, 사회적 연대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지금 마음 둘 곳이 없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10년 동안 노동자들을 엄청나게 탄압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 정치의 중심이 필요하고, 그 중심은 단단해야 하는 것이다. 색깔을 옅게 한다고 해서, 제도권에 한두 명 들어간다고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원내 교섭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통진당 사태가 생겼다. 그래서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인 것에 대해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 집권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종북이라는 칼을 들이대 당을 대중으로부터 분리하고 심지어 해산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국회의원 당선만이 목표가 아니어야 한다. 정의당이 오른쪽으로 갔다. 심상정 의원이 오랫동안 노동운동했는데, 헌법 안의 진보, 합리적인 방식 이런 얘기를 했다. 충격이었다. 진보정당이 자칫 조직된 대공장 노조 간부들을 위한 출세의 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도흠 : 투쟁이란 것은 동일성과 타자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타자인 자본-권력의 논리를 내면화하면 노동자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그 구분이 사라진다. 우리 사주가 되면 4분의 1에서 반은 자본가가 되어 버린다. 회사와 노동자가 어느 순간에 한몸이 되고, 자본주의 체제가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개선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동일성과 타자의 개념을 없애버릴 정도로 신자유주의 카르텔 공세가 먹혀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
![▲ 지난 9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던 2.25 국민 총파업 성사를 위한 2차 결의대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40105/art_1391094128.jpg)
사회자 : 민주노총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정면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노동 정치를 복원하자며 민주노총과 노동당, 정의당 등이 모였는데 정의당만 박근혜 정권 퇴진에 동의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도흠 : 박근혜 정권은 형식적 민주주의만 유지하고 있는 파시즘 정권이다. 디지털 형 유신정권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국민을 사찰, 통제하고, 합법적인 정당과 단체마저 해산하려는 공작을 감행하고 있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않으며 시민과 노동자에게 다양한 폭력을 구사하고 대중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는 파시즘 체제다. 하지만 고전적 파시즘에서는 권력이 자본 위에 섰지만, 권력이 자본의 마름 구실을 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한편,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지게 하고 드러나는 폭력 대신 드러나지 않는 폭력을 구사하고 직접적인 조작과 부정 대신 인터넷과 이미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파시즘이다. 대선 부정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3.15 부정선거식으로 했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를 활용하여 총체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직접 형사와 국정원이 미행하고 도청 장치를 이용하는 대신 패키지 감청을 하고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진보적인 인사나 노동자를 감시하고 사찰한다.
김소연 : 신 유신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도흠: 유신하고는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미국에서 셸던 월린이라는 사람이 ‘전도된 전체주의(inverted totalitarian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부시 정권도 파시즘이라고 규정한다. 기존의 파시즘과 다른 것은 첫째, 기존은 국가가 자본 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자본이 국가를 지배한다. 둘째, 그때는 대중을 무조건 동원했는데, 미국의 부시 정권은 대중을 냉소화시킨다.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가 다 있다. 신자유주의 공포를 통해 대중을 동원하거나 무관심하게 만든다.
김소연 : 이명박 정권 때에도 고공 농성을 하면 그래도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은 그냥 모른 체하고 괘념치 않는다.
이도흠 : 유신 때보다 더 무서워졌다. 자본-국가-대형 교회-언론-학계로 이어진 카르텔이 너무 공고해졌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그래, 너희들 어디 해봐라’하고 지켜보다가 조금 위험할 것 같으면 경찰로 쓸어버리고 언론과 학계는 이를 정당화한다. 엄청난 권력이다. 모순의 강도만을 생각한다면 수백만이 저항하고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데, 99%가 침묵하고 있다.
김소연 : 박정희 시대 유신의 공포처럼 박근혜 정권이 공포스러워서 다 포기하고 침묵할 것 같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 조합원들이 온몸으로 보여줬다. 지도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두려워하고 있는데 조합원들은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전 의장인 이도흠 한양대 교수와 기륭전자 조합원인 김소연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대표. ⓒ박점규](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40105/art_1391094081.jpg)
사회자 : 박근혜 정권에 맞서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정치를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 얘기를 해보자.
김소연 : 박근혜의 폭력 앞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구와 노동자 정치를 할 것인가에 있어 일단 싸우고 있는 사람들부터 모아내는 것이 필요한데, 민주노총이 그 역할을 충분히 못 하고 있다. 정치 운동도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서야 하는데, 대중의 상태가 어려우니 그들을 묶어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색깔이 옅어지고, 결국 민주당과 차이가 없어진다. 통진당이 호남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에서 여당은 민주당이고, 그 민주당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패악질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힘이 있으니 같이 해보자는 것으로 야권 연대를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 정치세력이 중심이 되어 단결하여 싸워나가는 것이다. 단결의 전제, 최소한의 기준은 박근혜 정권 퇴진을 걸고 싸워보자는 것이다.
이도흠 : 열악한 상황에서도 세계사의 남을 신자유주의 저항 투쟁인 희망버스 운동이 있었다. 대중은 이용당하고 조작당하면서 모순을 인식하고 싸워나가는 이중성이 있는데 희망버스는 대중들의 모순에 대한 분노와 판단과 인식, 저항에 기름을 부으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줬다. 지금 신자유주의 모순 속에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생존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비정규직이 900만 명이고,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57.6%가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다. 이도 여의치 않아 다단계 판매로 나선 415만 명 가운데 4분의 3이 단돈 1원도 벌지 못한다. 그로 인해 생긴 분노는 내재화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엮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그걸 조직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등 분노가 나왔을 때 연대로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와 유사한 산업 단위의 노동자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운동으로 확산시키지 못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연대로 성취했던 원산파업은 중요한 교훈이다. 열악한 상황일수록 연대의 복원이 가장 중요하다.
김소연 : 철도 파업에서 연대 정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륭 투쟁의 경험에서 노동조합 지도부나 진보정당이 어떤 투쟁이 벌어지면 더 싸움을 키우고 확대하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까 하는 해결사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투쟁의 최고점에서 타결해야 한다고 투쟁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국회의원들도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라 투쟁 마무리를 위해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주체의 요구보다 낮은 수준으로 중재하게 되고, 그것이 진보정치 운동을 중재자로 인식하게 하였다. 해결사적 관점이 아니라, 함께 싸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자 :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투쟁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벌어지고, 철도노조 총파업과 민주노총 침탈,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된 연대로 인해 분위기가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금속노조 지도부가 삼성전자 서비스 투쟁에서 하청업체와 졸속 합의를 해버렸고, 철도노조도 결국 민주당에 기대 파업을 접으면서 대중의 열기가 식어버렸다.
이도흠 : 싸울 때 패배에 대한 공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냐, 패배냐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지배 블록에 균열을 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패배해도 역사에서 승리로 잉태할 수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 해결사적 관점, 개량주의적 관점으로 지도부들이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읽고 있는 고려대학교 학생들 모습. ⓒ프레시안(최형락)](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40105/art_1391094024.jpg)
김소연 : 조합원들이 그런 게 아니라 지도부들이 그런 것이다.
이도흠 :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싸우고 해결하고 싸우고 해결하고 그러면, 삼성의 예처럼, 오히려 자본과 국가의 카르텔을 더 공고히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제도권에 최소한 균열을 가하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김소연 : 기성 정치를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를 맡겨버리는 기대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한창 싸울 때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나서서 해결해 보겠다고 한 적도 있다. 여든 야든 우리가 치열하게 싸우면 나설 수도 있다. 투쟁이 커지고 연대가 확산하면 되는 것이다. 법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반쪽짜리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싸워서 법을 바꿔나갔다.
사회자 : 노동자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투쟁과 정치를 어떻게 엮어나가야 하는가?
이도흠 : 기득권들이 노동자들을 지배하기 위해 제도화한 법이 있고, 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제도 쪽에 노동자의 영역을 넓힌 법이 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정당이 노동자 투쟁을 제도화하고, 민주당을 압박해서 좌쪽으로 가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깨지니까 정치를 활용하지 못하고 정치에 기대든지, 투쟁을 개인의 성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번에 경찰이 민주노총 침탈할 때 우스갯소리로 박근혜가 민주노총 조직부장이라고 했다. 그런 분노들이 모여 10만 명이 모이고 그랬는데 지도부가 촛불을 죽여 버렸다. 촛불집회의 지도부는 집회에 모인 대중들이 요구하는데도 박근혜 퇴진을 내걸지 못하였다. 그래서 반 박근혜 전선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그 밑바닥에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치고 나가자, 두 전선 하에서 진보를 하나로 묶어 국가자본의 카르텔에 맞서는 균열을 내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지역 운동, 지역 거점에서 대중을 조직화하는 것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명박 시대의 쌍용차처럼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고 말 것이다.
김소연 : 지난번 이남종 열사 장례 때 촛불 시민들이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박근혜 퇴진을 걸고 싸우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을 봤다. 함께 싸워보자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함께 책임질 진보 진영의 구심이 없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 답답했다.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걸고 싸우자고 하는데 운동 진영이 그렇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역전된 모습이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을 걸고 같이 싸울 사람들이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이자. 다양성은 인정하되, 중심에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싸워보자는 것이다.
이도흠 : 반(反) 박근혜 전선으로 명확히 하고 이를 견인할 수 있도록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민주노총이 서야 한다. 그 밑으로는 노동자들과 신자유주의 체제로 생존 위기에 놓인 시민이 연대하여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김소연 : 박근혜 투쟁도 그렇지만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분열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투쟁을 통해서 신뢰를 회복해야지, 지도부 몇몇이 모여서 되는 게 아니다. 왜 함께 싸워야 하는지 절박한 문제로 다가와야 한다. 그리고 같이 싸우면서 신뢰가 확보되어야 정치 문제로도 연결된다.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입장에서도 반야권연대와 박근혜 퇴진을 걸고,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를 위해 함께 하자고 얘기했다. 어느 단위든 여기에 동의하면 함께 하면 된다. 이걸 통해 노동 정치도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고난의 길이지만 같이 갈 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바꾸고 싶은 사람들,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모으는 것이 노동자 정치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도흠 : 분열이 창조적인 분화로 가려면 크게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김소연 대표의 말처럼 진보는 투쟁을 통해 하나가 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차이를 소멸시키거나 인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도부 몇 명이 합의 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동자와 조직구성원이 공감하고 판단의 공유를 하는, 합리적 토론과 합의가 가능한 공공 영역을 확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세 번째는 반박근혜 반신자유주의 반자본 전선의 깃발 아래 이를 지향하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의 정책과 담론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몇몇 상층이 모여서 하는 합의는 정치적 술수로 나갈 수밖에 없고, 대중들도 신뢰하지 않는다.
사회자 : 노동자 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이도흠 : 민주노총이 분열된 정파를 묶어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이뤄내 반박근혜 전선으로 전체를 끌어내 투쟁을 주도해나가면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만들어내야 한다.죽 쒀서 뭐주듯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싸움의 성과를 가져가게 해서는 안 된다. 6월 4일까지 정치는 급박하게 변하겠지만, 지방선거에 전면적 대응이 어렵다면 쌍용차의 평택이나, 비정규직의 울산, 평화의 강정과 탈핵의 밀양 등 주요 거점에 후보를 내서 반박근혜 기조에 동의하는 진보세력이 하나의 후보로 승리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지방선거를 건너뛰는 게 낫다.
![ⓒ프레시안(최형락)](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40105/art_1391094046.jpg)
김소연 : 투쟁을 해야 할 때다. 박근혜 퇴진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싸우는 장이 되어야 하고, 당선되면 좋지만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쟁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중심을 세우는 장으로서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도흠 : 그런 면에서도 만약에 후보가 당선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거 국면을 이용해 무상급식처럼 비정규직 철폐를 걸고 진보의 정치 세력화를 늘리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중들이 이중적이고 레드컴플렉스도 있지만 임계점이 넘으면 동의하고 돌아온다. 이런 이슈투쟁 담론 투쟁을 해야 한다. 거점 투쟁과 함께 담론 투쟁이 필요하다.
사회자 : 노동 정치에 실망해서 정치를 외면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도흠 : 연대정신을 회복하자.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 결국은 노동자가 평등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은 노동자의 투쟁과 노동 정치 없이는 도래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투쟁을 노동 정치로 구현하고, 노동 정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변증법적 종합이 되어야 한다. 이제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로 전선을 명확히 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고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하되, 탈핵 등 생태와 복지와 사회 정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하여야 한다. 노동과 환경, 소수자, 소위 적녹보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다. 환경은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 없이 환경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함을 수용하고, 여성과 소수자 또한 가부장적 폭력과 배제가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며, 용산참사, 강정마을, 4대강에서 싸우던 이들과 함께하여야 한다.
김소연 : 우리가 포기하면 희망이 없다. 다 싫고 밉고 그놈이 그놈이지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 좋은 게 아니라 1% 자본가들에게만 좋은 일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나서서 노동자 정치를 새로 복원해야 한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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