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쌍용차 노동자ㆍ밀양 농민의 공동체 꿈일까?”(2013.12.21)

참된 2014. 5. 23. 18:06

“쌍용차 노동자ㆍ밀양 농민의 공동체 꿈일까?”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싸움터를 지키고 있는 이계삼·이창근씨의 ‘대화’



 

 

정의, 공동체, 희망. 가장 가치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력한 말들이다. 자본의 논리 앞에 가장 먼저 스러지는 말들이며, 여기 저기서 실체도 없이 남발되던 헛말들이다. 그러나 번번이 지기만 하던 이 말들에 숨결을 불어넣고 맥박을 뛰게 하고 결코 지지 않을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는 괴롭고 힘에 부치는 싸움의 현장에서 기어이 이 말들의 실체를 증명해내는 사람들이다.

‘밀양’과 ‘쌍용차’라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계삼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과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도 그런 사람들이다.

12월 19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서 이계삼 사무국장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만났다. 마흔한 살, 동갑내기인 이 두 사람은 각자가 겪어온 싸움의 현장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무자비한 힘들에 대한 분노와 후유증처럼 지속될 아픔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나누었다.

12월 19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서 이계삼 사무국장(왼쪽)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만났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계삼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이창근 실장님에게 말씀드리기는 뭐하지만, 우리에게는 밀양의 싸움이 쌍용차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다.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살하시면서, 우리에게는 극도의 좌절감, 집단적인 우울증 같은 것이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면서 7년째 싸우고 있던 때였다. 그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또 74세 노인이 분신자살을 했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다. 쌍용차에서 있었던 집단적인 연이은 죽음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얼마 전 3000명이 넘는 압도적인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유영숙 어르신이 자살하셨다. 세 번째 자살 시도도 있었다. 밀양이 쌍용차와 같은 불행한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지금 버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차와 밀양이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국가권력과 자본의 잔인함, 극악무도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창근 “사실 밀양 싸움이 쌍용차처럼 죽음의 공포로까지 이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 쌍용차도 스물네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숨졌다. 이게 막 연이어 번질 때는 말을 못하겠더라. 과거 파업할 때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그 말을 어느 시점에서 못쓰겠더라. 최근 밀양에서 반대투쟁을 하던 주민 한 분이 자살 시도를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밀양도 지금 긴급한 재난지역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이계삼 “쌍용차 문제를 다룬 ‘당신과 나의 전쟁’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평택공장에 경찰이 들어가서 잔인하게 진압하는 광경이었는데 큰 충격이었다. 또 하나는 해고되면서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한 노동자였다. 생업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노조라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했는데, 철저하게 고립되고 무력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이 두 가지를 밀양과 대조해서 이해했다. 밀양은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잔인한 진압을 당하더라도 함께 지탱해 나가는 일상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폭력적 상황에 물리적·심리적 외상을 입더라도 돌아올 공동체가 있다는 부분에 대해선 일정 정도 안도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이 생각도 수정이 됐다. 마을공동체도 개별보상을 매개로 이중삼중으로 갈리게 되면서 결국은 일상을 자기 혼자 힘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이나 세 번째 주민의 자살 시도로 이어진 것 같았다. 결국은 공동체가 존립을 했더라도 파괴되고 난 뒤는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창근 “쌍용차를 보면 희망퇴직자들이 자살을 많이 했다. 원인을 유추해 봤는데 싸우는 사람들은 두 명이 되든 세 명이 되든 집단이 된다. 그런데 희망퇴직자들은 공장에서 나와 홀로 버티고 있다. 세상을 홀로 버텨야 하다 보니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밀양은 그나마 마을공동체가 있어서 유지하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도 어느 정도의 물리력일 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압도하는 물리력이라고 하면 범람해버릴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둑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쌍용차 이창근 “돌아가신 분 중에는 희망퇴직자들이 많다. 싸우는 사람들은 집단이 되는데 희망퇴직자들은 홀로 버티다 보니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는 것 같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계삼 “그렇다. 최근에 한전이 점점 압도적인 공권력을 등에 업고 공사 시도를 하려고 하니까 감당이 안 되더라. 이 압도적인 공권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언론·시민사회의 어떤 동향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길바닥에서 거의 짓밟히다시피 한다. 노숙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음식물 반입도 못하게 한다. 주민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공산주의 국가도 이렇게까지는 안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박혀 있는 공산주의 국가는 김일성 독재 같은 이미지다. 한마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버린 일이라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폭력을 행사할 때 이를 감시하고 막아주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정치와 언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마디로 이들이 국가권력을 용인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폭력이 결국은 당사자들을 굴복시켜버리는 구조가 되었다.” 이창근 “폭력의 정도는 점점 더해지는데 권력에 저항하는 형식이 ‘희롱’과 ‘조롱’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아진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현실을 바꿔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오히려 저항하고 싸우지 않는 자기를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약간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담을 넘고 경계의 선을 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배척되어지는 느낌이 든다. ‘봐라, 저런 방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아는데’라는 식으로 마치 운동하는 사람들은 낡았고 울림이 없다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이계삼 “‘넘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을 넘어서는 상상력, 다른 세상이나 희망에 대한 상상력이 거세당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남은 것은 광범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조롱·푸념·냉소 이 정도다. 경계를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우군이 될 수 있는 시민사회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안전한 곳에서 할 수 있는 키보드워리어 정도로 자기 역할을 국한시켜버리는 것이다.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역량이나 에너지는 거의 거세당하고 아주 무력한 주체들만 남아 있는 셈이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만큼이나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쌍용차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밀양 싸움도 노무현 정부에서 배태된 측면이 크다. 지금 야당이 밀양문제에 대해서 무력하게 대응하고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이창근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50%를 넘는다. 철도민영화도 그렇고 밀양 송전탑 문제도 마찬가지고 효율과 속도의 문제다.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들여온 게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사실 지금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야당의 말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부채감 때문이 아니라 사실 이들도 정부가 들이대는 속도와 효율의 논리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책에 대한 근본적 반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특정 기관의 문제 혹은 설득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다. 사실 왼손으로 맞나, 오른손으로 맞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똑같다.”

밀양 이계삼 “혹시 싸움을 지더라도 잘 져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다시 탑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끼리의 결속은 깨지지 않아야 한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계삼 “지금 밀양 싸움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개별보상이다. 원래는 마을공동체에 돈을 주게 되어 있는데, 주민들 70%가 반대하니까 그 돈을 쪼개서 개별 가구에 직접 꽂아주겠다는 꼼수다. 송전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주민 입장에서 보면 평상시 집회도 안 나가고 했는데 돈이 들어온다고 하니 냉큼 받는다. 남아 있는 주민들이 점점 더 불안해진다. 이렇게 가다 보면 전체 30개 마을 중 피해가 아주 큰 11~12개 마을만이 남아서 다른 데 탑이 서며 조여오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쌍용차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옥쇄상황이 되는 것이다. 기사로 나가도 될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절대 안 진다는 결속으로 버텨 왔던 건데 어쩌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 지더라도 잘 져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을과 마을끼리, 사람과 사람들끼리 결속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설령 탑이 두 개가 남고 세 개가 남더라도 마지막까지 버텨야 하고, 혹여 탑이 다 서더라도 이 탑을 다시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결속은 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근 “저도 집단적으로는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패배를 준비하자.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복직문제가 계속 해결이 안 된다면 어떻게 생계를 해나갈 것인가. 후원금도 계속 받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사회적 기업을 하려고 사람들과 논의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몇 번을 울었다. 혹시 이게 패배에 대한 구체적 준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울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말씀하셨던 것처럼 꽂혀 있는 송전탑을 뽑겠다는 각오라면 또 길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고 절대 지지 않겠다는 판단이 있다면 기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계삼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꿈꿔온 것이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밀양 농민들이 만날 수 있는 길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남들이 보기에는 밀양은 한국 사회의 지뢰밭이고 버려진 땅일 수 있다. 그러나 뜻 있는 노동자가 있다면 어르신들의 농토를 빌리든지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라든지 투쟁을 하다가 꺾였거나 투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기약이 막연한 사람들과 우리 송전탑 농민들이 같이 일을 하고 그 어르신들의 지혜를 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이 싸움 과정에서 만났던 인연들과 함께 우리가 같이 살고 먹고 놀 수 있는 그런 공동체의 꿈을 혼자서 꿔보고 있다. 그렇게 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열심히 싸워야 한다. 그저 어쩔 줄 모르고 수수방관하다 지금의 에너지가 좌절해서 꺾여 흩어져버리게 된다면 앞으로 누구도 이런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흩어져버리게 되면 후유증들이 남아서 남은 생애 내내 당사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창근 “함께 연대한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발전할 건지, 그리고 응축돼 있던 에너지가 어떤 지점을 뚫고 나갈지에 대해서는 기대가 되는 면이 있다. 아까 말씀했던 것처럼 지금 밀양 주민들이 구체적인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구체적으로 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공동체, 책임, 동지, 마음, 이런 불투명한 걸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돈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그래서 더 안 잡히는 거 같다. 말씀하셨던 게 그런 맥락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밀양에서든 어디서든 노동자와 농민들이 함께 다시 뭔가 할 수 있는 거다. 서로 그냥 흩어져서 이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싸웠던 힘들, 그때 우리가 느꼈던 희열들, 기쁨들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밀양 주민분들도 싸움하면서 스물네 시간 모든 시간이 아주 불행한 시간은 아니실 것이다. 싸우면서 만났던 기쁨과 소중한 시간들을 앞으로도 만들어가기 위한 새롭고 구체적인 계획들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