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상 읽기] 해고자의 나이테 / 이창근

참된 2013. 8. 3. 15:39

[세상 읽기] 해고자의 나이테 / 이창근

한겨레    등록 : 2012.06.28 19:18 수정 : 2012.06.28 19:18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신랑 신부는 초조했다. 결혼식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신랑의 경력에 관한 주례 선생님의 친절한 소개가 탈이었다. 긴장 속에 유지되던 두 사람의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졌고 예식장은 술렁거렸다. 신랑이 서울지하철 해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신혼여행은 갑자기 가족들 앞에서의 비상설명회로 전환됐고, 신혼의 며칠 동안은 눈물바람의 친지들을 달래는 데 보내야 했다. 옹근 13년1개월의 해고기간. 7개월의 수배기간과 68일간의 구속. 기륭전자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익숙한 황철우의 결혼 이야기다. 마침내 지난 6월1일 그는 서울지하철에 원직 복직했다.

1987년 6월 민주화를 향한 시대의 열망은 평범한 고등학생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에 참여하게 했다. 고교시절의 명동성당 농성 경험은 그의 삶의 전조가 된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를 대학 대신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게 한다. 스물다섯 나이에 서울지하철에 입사한 그는 성실과 근면이라는 발품으로 가장 어린 나이에 노조 교육부장을 맡는다. 지하철은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직권중재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어 파업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1999년 4월19일 조합원들은 굴복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권리인 파업권을 행사한다. 지하철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듣는 파업이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처럼 곧바로 들어선 어용 노조집행부는 파업의 성과를 회사 쪽에 하나둘 헌납한다. 이를 묵인하고 방조할 수 없었던 그는 민주노조 깃발을 놓지 않고 현장을 지키며 싸운다. 그 때문에 다른 집행간부들이 순차로 복직됐지만 늘 명단에서 빠졌다. 13년1개월, 세월의 나이테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 싸움의 상징인 재능 농성장에서 그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만난다. 2007년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사회적 봇물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어려운 이들의 싸움을 외면 못하는 그의 정서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게 한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이 94일에 이르렀을 즈음 눈물로 중단을 요청하며 “단식을 중단하면 끝까지 함께하겠노라”고 약속한다. 기륭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은 건 그 약속의 실천이었다. 이후에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를 향한 실천을 함께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스스로 넘고 지웠다. 지하철 기관사로 복귀교육중인 지금, 그는 의외로 담담하다. 외려 긴 해고기간 경험했던, 약자 사이의 공감을 현장 노동자들과 어떻게 나눌까를 고민하고 있다.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102년 만의 극심한 가뭄. 이 가뭄은 나무들의 나이테를 검게 만들 것이다. 생장 조건과 변화를 나무 스스로 기록하는 나이테는 기후조건이나 환경 변화, 특정한 사건의 압축 기록물이자 블랙박스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가뭄과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해충의 부화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지금, 이 땅의 노동자들의 나이테는 어떤 상태일까. 특히 몇달, 몇년이 아닌 십년을 넘기기도 하는 해고노동자의 그것은?

힘겨운 상황에서 인간 존엄을 지키며 연대하는 해고자들의 안간힘이 막강한 자본의 힘 앞에 초라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건강한 나무 한 그루가 울창한 숲의 기본을 이루듯, 해고노동자 하나하나가 연대의 숲을 이루는 밀알이 될 수 있다. 13년1개월이란 긴 해고기간에 옹이 박히고 뒤틀릴 법도 한데 결 좋은 나이테를 간직한 그를 보면, 해고의 세월이 연대의 가치를 성숙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둥글둥글 어깨 겯고 걸어가는 동심원의 나이테처럼.

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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