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규항의 좌판](12)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참된 2013. 8. 3. 15:16

[김규항의 좌판](12)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글 김규항     경향신문   입력 : 2012-03-13 18:54:58수정 : 2012-03-14 10:55:07

 

 

ㆍ“쌍용차 문제, 죽음의 문제로 고착화… 본질 간과돼 후회”

노동단체의 회의나 토론회에서 혹은 집회에서 종종 그를 만나곤 한다. 얼마간 뜸하다 만난 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을 만치 말도 행동도 차분했다. 물어보니 지금이 제 모습이고 전에 에너지가 넘치던 모습이 ‘조증’ 상태였단다. 그는 해고 후 스물한명의 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떠난 동료들이 겪었던 고통을 역시 겪으며 제 전투를 수행 중이다. 그 죽음들을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를 밝히는 노력과 그 거대한 구조 앞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의 일상과 문화를 일구어내는 숙제는 그 전투의 중요한 일부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오른쪽)가 지난 8일 서울 경희궁에서 김규항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에서부터 희망버스까지 한국사회의 격렬한 현장 속에 빠지지 않고 서 있었던 그는 한결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 권호욱 선임기자


▲ “쌍용차 매각은 노무현 정권 때 벌어져 민주당이 책임 당사자
민주당이 정말 해결 의지가 있었다면 국조단 만들었어야
민노총도 제 구실 못하니까 정치권서 적당히 마무리”


김규항=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내면서 그 죽음에 대한 보도자료를 쓰는 일을 해왔는데요.

이창근=힘든 일이었어요. 특히 “또 한 번의 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세상의 대답은 없고 죽음은 자꾸 늘어가고. 나중엔 이걸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이렇게 써야겠다 저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제 감정에 충실하게 되더군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눈물이 납니다”라고 썼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김규항=단지 그 상황에 연대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그 상황의 당사자라는 점이 고통을 배가시켰을 것 같습니다.

이창근=죽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요. 이상하게도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나중에 겁이 나더라고요. 근조 플래카드나 검정으로 도배된 풍경들, 이런 게 세상에 상황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그걸 보는 해고자나 희망퇴직자에겐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만장기 들고 이런 게 점점 싫어지더군요.

김규항=쌍용차에서 유독 죽음이 많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창근=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보도자료를 쓸 때 자살 방법이나 상황을 너무 자세히 묘사했나 하는 생각까지 해봤죠. 그런데 쌍용차는 누적된 게 있어요. 상하이로 넘어가고 분명히 기술 유출하고 먹튀했는데 법적으로 해도 안되고 파업해도 다 작살나고 어용노조가 다 덮고 넘어가고 하면서 쌓이고 쌓인 울화통이 있는 거죠.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죽은 분들은 파업 때 마지막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싸운다는 건 이기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우뚝 세우는 체험이죠. 그 체험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구요. 죽은 분들도 많지만 해고 노동자들이 가족 관계나 삶 전반에 고통을 겪는 걸 많이 봅니다. 그걸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라고만 보긴 어려운데요.

이창근=경제적 어려움을 다들 겪지만 그 문제만은 아닙니다. 해고되고 나니까 가족 관계,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모든 게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에서 교육도 참 많이 했는데 대체 살아가는 것과 관련해서 무슨 교육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김규항=아이가 있지요?

이창근=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파업하고 감옥 갔다가 나왔는데 어느 날 경찰 놀이를 한다고 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 녀석이 시위 진압하는 전경들처럼 낭심 가리개를 만들어서 차고 있더라구요. 의자나 물건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화를 잘 안내던 아이인데 자꾸만 화를 내고. 안되겠다 싶어서 놀이 치료하는 곳에 데려갔는데 한 달 동안 계속 고함만 지르더군요. 토해내는 거죠. 아찔했어요.

김규항=무심코 넘어갔다면 결국 나중에 더 병리적으로 드러났을 테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해고되고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뭔가요.

이창근=구속되었을 때 참 많은 사람들이 구속자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구나, 세상이 이렇기도 하구나 새삼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의 너머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해고 노동자들이 또 집회도 많고 해서 많이 걷거든요. 그러면서 전보다 많은 생각도 하게 되고요. 이명박 정권을 넘어선 체제의 구조에 대한 고민도 늘고요.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나와의 차이 같은 게 공장에 있을 땐 또렷했는데 나와서 같이 투쟁하다보니 많이 극복된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김규항=정규와 비정규. 자본이 만들어놓은 골인데 정리해고되고 싸우는 노동자조차 그 골이 사라지지 않으니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뒤집어보면 정리해고라는 공식적인 삶의 파괴 이전에 이미 노동자 일상과 문화가 파괴된 상태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쳇바퀴 돌 듯 일상을 보낼 땐 잘 모르지만 그 일상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알게 되는.

이창근=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생활이라는 게 그런 대로 안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멀쩡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죠. 어떻게 웰빙을 즐길 건지가 아니라 내가 일하며 어떻게 살 건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 건지 이런 게 전혀 없더라는 거죠. 교육 문제만 해도 만약 우리가 공동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교육을 고민하고 시도해왔다면 똑같이 맞아도 데미지가 달랐을 거예요.

김규항=노동운동이 뭐냐, 노동해방이 자본가처럼 잘 먹고 잘사는 거냐라는 질문이 사라졌어요. 우리가 구조적 가난과 싸우지만, 더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상품이 되어 경쟁하지 않아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자본가처럼 살아야 한다는 목표밖엔 없게 되죠. 자본은 그런 욕망을 이용해 정규직을 체제내화하고 비정규를 배제하면서 손쉽게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요. 연이은 죽음이 사회적으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또렷한 해결의 실마리는 안보입니다.

이창근=쌍용차 문제가 연이은 죽음의 문제로 고착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쌍용차는 부침의 역사거든요. 여기 팔리고 저기 팔리고 그러면서 2000년 초반 1만명이 넘던 노동자들이 이젠 4000명이니 잘려나간 6000명이 그 동안 쌍용차를 유지시킨 근거였던 셈이죠. 그런 과정에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이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김규항=파업 투쟁과 살인적인 진압이 이 문제의 시작은 아닌데요.

이창근=민주당이 이 문제의 책임당사자죠. 노무현 정권 때 쌍용차 매각을 진행했죠. 당시에도 먹튀 논란이 많았는데 강행했던 거잖아요. 이런 사실에 대한 민주당 쪽의 반성이나 기조 변화 같은 게 없어요. 정동영 의원이 현장에 와서 계속 뭘 하더라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런 이유가 있죠. 당시 산자부 장관이라든지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매각 당시 세 개 은행에서 매각대금이 나왔는데 그게 진짜인지부터 시작해서 따지고 밝혀야 할 게 참 많거든요. 그런데 이걸 이명박 정권의 폭력진압에서 시작한 문제, 죽음의 문제, 안타깝고 불쌍한 문제로만 몰아가는 건 해결을 요원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규항=저도 이런 소리가 지겨울 정도입니다만, 쌍용차뿐 아니라 근래 주요한 사회 문제들이 하나같이 노무현 정권이 벌이고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하는 일들이죠. 며칠 전 한명숙 대표가 제주 구럼비에 가선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물으며 비난하더군요.

이창근=평택 대추리 때 마지막 날 저도 있었어요. 진압 작전 이름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던가요. 그 때 군대가 투입되어서 우리를 밤새 두들겨 패서 끌고 갔죠. 그걸 강행한 국무총리가 한명숙씨였어요.

김규항=그런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이명박 정권의 일인 양 욕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또 속아주고 심지어 희망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창근=민주당이 정말 해결의지가 있으면 몇몇 의원들이 다닐 문제가 아니라 당 차원으로 끌고가서 국정조사단을 만들었겠죠.

김규항=민주당이 사실 철저하게 반노동자적인 당이다보니 예외가 되는 의원, 현장을 자주 찾고 함께하는 의원은 상대적으로 미화가 되는데요. 좀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치인은 개인적 선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죠. 정치인이 할 일은 개인 활동을 통해 다른 정치인이다, 좋은 정치인이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에서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싸워야죠. 그러면 여론도 가만있진 않을 것이구요.

이창근=아쉽게도 거기까진 못가는 것 같아요. 쇼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당내에서 적극적인 전투를 했으면 좋겠어요.

김규항=쇼인가 아닌가, 사람의 내심은 알 수 없고 굳이 따질 필요도 없죠. 이건 연애가 아니라 정치니까. 정치인에게 정치인으로서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나 타당한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시점에 맞물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창근=파업 당시에도 많이 느꼈는데요. 말은 총자본과 총노동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는 걸 봐야 했죠. 김진숙씨 싸움과 희망버스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밑에서 밀고 올라왔으면 민주노총이 더 조직하고 밀어붙여서 한진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거든요. 민주노총이 제 구실을 못하니까 결국 정치권에서 적당히 마무리해버렸죠.

김규항=우리 사회는 좌파 정치랄까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가 의회정치에 없다시피하다보니 의회 밖의 정치, 운동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민주노총은 그 중요한 결실이고 담지자이기도 하죠. 이석행 전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나선 일로 시끄럽습니다.

이창근=예사로 볼 문제가 아니죠.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자기고백을 한 것 아닌가, 포기를 공식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일에 대한 민주노총 논평이라는 게 딱 세 줄인가 그랬어요. 위원장 사퇴 이후 어떠한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번 일 역시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일 뿐 민주노총과는 무관하다, 끝. 어이없는 일이죠.

김규항=거액의 손배소가 걸려있잖아요. 쌍용차 사측에서 노조 간부와 대의원 140명을 상대로 50억원, 경찰이 파업 참가자 103명을 상대로 20억원, 메리츠화재에서 141명에게 110억원.

이창근=저도 그렇고 다들 출소하고 나서 한동안 그 문제에 진을 뺐어요. 집도 다 가압류 들어오고 이걸 어떡해야 하나 걱정들이 많았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건 못 갚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 에이, 잡아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그러니까 마음은 편해졌어요. 마음이 편해졌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로선 미루어놓은 큰 산이죠.

김규항=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는 근래 어느 사업장에서나 애용되는 자본의 무기인데, 우리가 지키는 법이라는 게 얼마나 자본의 편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죠. 대화하다 보니 해고 후 노동자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군요.

이창근=노동자들, 특히 대공장에서 컨베이어 타는 사람들의 문화라는 게 정말 앙상해요. 일하고 마치면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우리 이야기는 언론에서 안 다루어준다고 투덜대면서 신문도 잘 안 보고 책도 안 보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상태론 위기가 닥치면 큰 일일 뿐 아니라 늘 해오던 싸움도 밀릴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80년대 활발했던 노동자문화 운동은 노동자들의 일상이 소비적 시민문화에 포섭되면서 지속적으로 쇠락하거나 협소한 시위문화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죠. 근래 보면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게 감지되기도 해요. 그러면서 옛 문화를 무작정 깔보는 우려스러운 경향도 종종 보이구요.

이창근=희망버스 때 다들 새로운 시위문화의 발랄함 유쾌함을 얘기하는데 기존의 시위문화에 대해선 아예 경멸을 하더라구요.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생각하는 희망버스는 실사구시였어요. 해왔던 것을 조금씩 바꾸고 보태고 하면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거였거든요. 시위문화라는 게 무거울 땐 무거워야 하고 발랄할 땐 발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규항=그런 진통들이 건강한 노동자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해요. 국제적으로도 이른바 ‘신좌파’ 문화라는 게 구좌파의 문제들에 대한 부정에 집착하다보니 엉뚱하게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부응해버린 경향에 대한 비판들이 근래 있습니다. 발랄함이 무거움을 경멸하는 경향을 비판했지만, 여러 매체에 기고도 하고 늘 아이패드를 끼고 다니는 ‘신식 노동자’인데요.

이창근=시위 아이디어랄 것까진 없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파란 잔디 위에서 5000명이 모여서 조용히 책을 읽는 거예요. 주제가 만일 삼성 비판이라면 삼성 문제와 관련한 모든 책과 자료들을 다 모아서 앰프나 확성기는 일절 쓰지 않고 조용히 그걸 읽는 거죠. 저놈들이 정말 아파하는 일을 함께 해보는 거죠.

김규항=수천 명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여 밤새 레이브파티를 하면서 한국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광경을 생각한 적이 있는데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이야기군요. 발랄하게 그리고 무겁게, 조용하게 그리고 시끄럽게 함께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