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 수렁에서 진보 정당은 '간당간당'
시사INLive 김동인 기자 입력 2014.04.07 09:04
새정치민주연합의 출범은 지방선거에서 양자 구도를 더 강화시켰다. 벌써 새정치민주연합의 성적을 야권 전체의 성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원내 제3, 4당인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물론 노동당·녹색당 등도 갑갑할 노릇이다.
통합진보당은 3월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통합진보당 6·4 지방선거 선대위 출범 및 후보 출정식'을 가졌다.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창영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어떻게든 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마한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미희·김선동 등 현역 의원도 3월 들어 지역 후보자들의 출마 기자회견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대오는 갖췄지만 당 안팎을 둘러싼 상황이 험난하다. 당장 야권 연대의 가능성이 낮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3월16일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과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통합진보당을 겨냥하는 듯한 의견을 밝혔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도 3월6일 PBC 라디오에서 "통합진보당은 현재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기 때문에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는) 일단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정당해산심판 청구다. 4월1일 4차 변론기일부터 증거조사가 시작된다. 변론 절차가 빨라질 경우, 5월 중 결론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여권은 헌재가 지방선거 전에 정당해산심판 결론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진보정치 제공 3월2일 임시 당대회에서 통합진보당은 1000여 명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태도 바꾼 통합진보당?
최근 당 지도부가 북한과 관련해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런 주변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3월23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금강산 사건,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조의 표명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이 대표가 북한에 조의 표명을 제안한 것은 이례적이다.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도 3월26일 천안함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려 했다가 유족의 저지에 발걸음을 돌렸다.
이정희 대표의 말이 화제에 오르자, 홍성규 통진당 대변인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당의 시각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태흥 통진당 서울시장 후보는 3월25일 < 오마이뉴스 > 와의 인터뷰에서 "북에 대한 태도가 변화됐다고 느끼는 것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원내 4당인 정의당의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5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지지율과 인지도가 낮아 고심 중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도 적다. 당내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이가 130여 명에 불과하다. 창당 이후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기 빠듯한 형편이었다.ⓒ서형원 블로그 과천시의회 전·후반기 의장을 지낸 녹색당 서형원 시의원.
야권 연대 역시 조심스러운 측면이 크다. 김성진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이 시장 후보로 나선 인천 등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야권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야권 연대를 현실화하기에는 협상 카드가 부족한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노회찬 전 대표의 박원순 지원 발언,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의 서울시장·경기도지사 불출마 선언이 너무 빠르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대 협상 카드를 너무 일찍 버렸다는 것이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천호선 대표에게도 (2010년 당시) 노회찬 전 대표의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당대표가 선거에 출마한 뒤 다시 출마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불출마 선언이 너무 이르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은 있다"라고 말했다. 노회찬 전 대표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3% 득표율로 낙선했지만,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0.6%포인트 차이로 이기면서 야권 지지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원외 진보 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은 자체적으로 후보 진용을 갖춘 상태다. 노동당은 광역단체장 2곳, 기초단체장 1곳 등 약 130명이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태훈 노동당 기획조정실장은 "신당(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긴 했지만 기존 진보 정당의 지지세가 옮아가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기초단체장 1곳(과천)을 비롯해 총 11명이 출마한다. 녹색당은 특히 과천시장 후보로 나서는 서형원 시의원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과천은 정의당에서도 황순식 시의회 의장이 출마하는 지역으로, 진보 정당 간의 경합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들 정당 역시 선거자금·인력·인지도가 매우 부족해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진보 정당별로 현직에 있는 기초의원이나 단체장의 인지도를 이용하려는 전략도 눈에 띈다. 기초선거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당에 대한 호감도보다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진보 정당에 속해 있는 한 현직 기초의회 의원은 "기초선거일수록 얼마나 지역과 밀착해 있는지가 중요한데, 열심히 일한 기초의원은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높아 불리하지 않다"라고 말했다.ⓒ황순식 블로그 정의당 황순식 시의원은 과천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야권 최대 이슈인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호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기호 3번 프리미엄을 기대한다. 투표용지만 봤을 때 사실상 제2당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기초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이 마이너스 요소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지역과 밀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양당 체제가 강화되면서 진보 정당이 설 땅이 좁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진보 정당의 성적이 야권 전체와 함께 움직인다는 걸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예전부터 야당에 대한 여론이 전반적으로 좋아야 진보 정당도 상대적으로 살아났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당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가 진보 정당에게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김동인 기자 /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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