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유미야, 생각하기도 싫은 오늘이 어김없이 돌아오는구나” 고 황유미씨 7주기 맞아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합동추모문화제 열려

참된 2014. 3. 8. 08:32

 

 

 

“유미야, 생각하기도 싫은 오늘이 어김없이 돌아오는구나”

고 황유미씨 7주기 맞아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합동추모문화제 열려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민중의 소리
입력 2014-03-07 01:48:37l수정 2014-03-07 06:22:19
황유미 7주기, 삼성 앞에 선 황상기 씨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아직은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새봄이 오고 있다고
유미씨에게 숙영씨에게 지연씨에게 민웅씨에게 그리고
이름 없는 당신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역사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
진실은 정의는 밝혀진다고
새봄이 저기 오고 있다고
새봄이 와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때늦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일 오후 7시. 서울시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 노동자, 대학생 등 300여명이 모여 고 황유미씨와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합동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7주기를 맞은 고 황유미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추모문화제에는 황유미씨가 다니던 기흥공장 3라인 웨이퍼 생산공정에서 일하다 유방암을 선고받은 피해자 박민숙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9년이 흐른 후 백혈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인 김은경씨의 배우자 김진환씨,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숨진 고 윤슬기씨의 어머니 신부전씨, 백혈병 선고받은 남편 황민웅씨를 먼저 떠나보낸 정애정씨, 뇌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윤기호 PD와 주연배우 박희정씨도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추모문화제 시작 전부터 반도체 노동자 인권 지킴이 단체 '반올림'은 삼성전자 본관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삼성의 현실을 알리는 홍보물을 배포했다. 또 고 황유미씨를 비롯해 박지연, 윤슬기, 박효순, 이윤정, 김경미, 이은주, 황민웅씨 등 9명의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오가는 참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와 함께 시작된 추모문화제는 죽어서도 이곳을 아주 떠난 것이 아니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하늘 어디선가 이곳을 보고 있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노래 가사만큼이나 차분하게 시작됐다.

특히 가수 정밀아씨는 통기타 반주에 맞춘 '또 하나의 약속' OST '회상'을 불러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찬 바람이 부는 꽃샘추위 속에서 2시간가량 문화제가 이어졌지만 자리를 뜨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눈물 훔치는 삼성 황유미 추모제 참가자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직업병 피해자들의 영상을 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반도체 전자산업의 사망자 80%가 '삼성'… 백혈병의 왕국"

이날 고 황유미씨의 어머니 박상옥씨는 무대에 올라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박씨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오늘이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며 "그 독한 항암 치료와 힘든 골수 검사를 할 때, 그리고 긴 머리를 자를 때 울음을 터트리던 너를 생각하면 엄마는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던 박씨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박씨의 눈물에 피해자 가족들과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도 여럿 눈물을 보였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반도체 전자산업에 직업병 피해 제보자 243명 중 193명이 삼성 노동자"라며 "뿐만 아니라 직업병 사망자 92명 중 80%가량인 73명이 삼성이다. 통계 수치를 보면 삼성은 직업병 백혈병의 왕국"이라고 성토했다.

문화제에 끝까지 함께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주연배우 박희정씨는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피해자 가족들의 인사에 행사 내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박씨는 "작년 6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이번 7주기까지 참석하게 됐다"면서 "지난해보다 더 커진 규모와 참가자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더 많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참가 소감을 전했다.

이번 추모제는 삼성전자 본관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퍼포먼스로 끝났다. 형형색색의 종이에 삼성에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종이비행기들이 삼성전자 본관을 향해 날아갔다.

삼성을 향해 비행기 날리는 황상기 씨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참가자들이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며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헌화하는 삼성 황유미 추모제 참가자들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직업병 피해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눈물 훔치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 황유미 어머니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직업병 피해자 황유미 씨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왼쪽은 아버지 황상기 씨.ⓒ양지웅 기자


 

반올림,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 황유미씨의 7주기인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반도체 전자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문화제'에서 반올림 회원들이 방진복을 입고 삼성에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