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또 하나의 약속'이 투쟁수단?... "삼성, 비겁하다" 개봉 3주차 <또 하나의 약속>을 둘러싼 네 가지 장면들

참된 2014. 2. 24. 19:45

▲ "왜 이 영화만 안되는거냐" 롯데시네마 공정위 고발 19일 오후 서울 영동포 롯데시네마앞에서 또하나의가족제작위원회, 개인투자자모임, 반올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참여연대, 민변 회원들이 롯데시네마를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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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지난 17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 인디스페이스. 삼성 노동인권 지킴이가 주최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시사회가 열렸다. 개봉 3주차임에도 상영관이 늘지 않아 애를 먹던 제작사를 위해 단체 차원에서 상영관을 통째로 빌린 행사였다. 이 자리에선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영화 상영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실제 상황은 이 영화보다 더 심했다. 이 영화를 많이 봐 주시는 것이 함께 싸워주시는 길이다"라고 관객들에게 호소했다.

장면 둘.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앞.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축소에 대한 불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및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또하나의가족 제작위원회, 개인투자자모임, 반올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참여연대, 민변 등의 단체들은 롯데시네마가 <또 하나의 약속>의 상영관 배정 등 불이익, 단체관람 예매 및 대관 거절, 광고거절 등으로 불이익을 준 데 대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장면 셋. 이에 앞선 19일 오전, <프레시안>은 '"기사 지웠습니다" 삼성에 사과한 언론사 대표'란 단독기사를 보도했다. 18일 모 경제신문사 대표가 <또 하나의 약속> 기사를 게재한 것에 대해 삼성그룹 한 간부에게 구구절절한 사과 내용의 보고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후 논란과 함께 기사 속 신문사 대표가 <뉴데일리 경제> 편집국장 겸 대표이사, 삼성측 간부는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전무인 것으로 알려졌다. SNS상에서는 언론사 대표이사가 재벌 기업 간부에게 기사와 관련한 보고가 이뤄진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거셌다. 

관객들은 단체관람... 롯데시네마는 모르쇠... 뉴데일리는 삼성에 사과

▲ <또 하나의약속> 고 황유미씨 아버지, 롯데시네마앞 항의시위 삼성반도체 입사 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롯데시네마앞에서 항의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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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3주차, 37만 관객을 돌파한 <또 하나의 약속>과 관련한 지난 한 주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먼저 요지부동인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각종 단체들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단체관람'이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이 단체관람은 개봉 4주차를 맞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중이다.

제작사와 참여연대 등 단체들은 상영관 축소 의혹을 가장 크게 받았던 롯데시네마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그간 저예산 영화 관계자들이 멀티플렉스들의 '퐁당퐁당'(교차 상영)에 대해 항의성명을 내고 꾸준히 문제제기 해왔지만, 공정위에 직접 제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 와중에 공정위 제소 기자회견이 있던 그 날, '뉴데일리 문자 사건'이 전해졌다. "또 하나의 가족 기사가 떠 서운했다고 하기에 돌아오는 즉시 경위를 알아봤고, 제 책임하에 바로 삭제조치 시켰습니다"란 내용이 포함된 이 장문의 문자는 일부 언론과 삼성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다는 측면에서 파장이 컸다. 특히 "제가 한국일보를 떠나 몇몇 매체를 도는 동안 항상 애정 어린 눈길로 보살펴 주신 점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는 표현은 '알아서 기는' 일부 언론인들의 자세를 보여줬다는 중평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상영관 확대가 요원해 보이던 23일(일요일)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삼성 투모로우'에는 <또 하나의 약속>과 관련된 글이 한 편 게재됐다. 김선범 삼성전자 DS부문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이 작성한 '영화가 만들어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란 제목의 글은 <또 하나의 약속> 상영 이후 삼성 그룹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한 개인적인 해명을 담고 있다. 삼성 측의 공식적인 첫 대응으로 보이는 이 글은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을 본 관객들을 물론 '반올림' 등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로 싸워온 이들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 단순한 투쟁 수단으로 변질돼"


 삼성전자는 23일 회사 공식 블로그 '삼성 투모로우'에 올린 글에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비판하고 나섰다.
ⓒ 블로그 '삼성 투모로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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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획부터 제작, 상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홍보를 펼쳤지만 회사가 그에 대해 한마디 입장도 밝히지 않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포장해, 제가 다니는 직장을 범죄집단처럼 그리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정말 영화가 얘기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일까? 회사는 독극물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면서도 직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불행과 고통에 빠진 직원의 아픔을 외면한 채 숨기기에 급급했었나? 또 돈만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사람의 목숨을 거래하고 저울질했을까?"

김 본부장은 "제가 기흥사업장에 근무하면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자신 역시 딸을 키우는 아버지라 황상기씨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김 본부장은 그러나 "제가 다니는 회사는 최소한 영화가 그려 낸 그런 괴물은 절대로 아니다"며 "제가 속한 이 회사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영화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외압설까지 유포하며 관객을 동원하고 80년대에나 있었던 단체관람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털어놓은 김본부장의 글은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이 제기하는 핵심 주제인 산업재해 소송과 관련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관객들의 단체관람 역시 "80년대에나 있었던 (동원된) 단체관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블로그 글에는 이례적으로 35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논란이 되고 있다. SNS상에서도 역시 23일 하루 이 글이 지속적으로 리트윗되며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반올림 측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래와 같은 답답함을 전했다.   

"정말 그들이 몰랐을까요? 노동자들이 무슨 약품을 사용했는지, 거기에 어떤 유독물질이 있었는지 몰랐을까요? 삼성이 알았다면,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면 이건 산재가 아니에요."

<또 하나의 약속> 측 한 관계자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 글에서 80년대에 있을 법한 단체관람이라고 표현했는데, 80년대에나 일어날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명백히 일어난 현실을 자신이 아는 한에서 호도하고 있다. 여전하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약속> 장기 상영 준비 중...'삼성 다큐' <탐욕의 제국> 3월 6일 개봉

스크린 수 138개, 누적 관객 수 44만 명. 23일 일요일까지 <또 하나의 약속>이 기록한 스코어다. 상영관 축소와 외압설을 시작으로 지난 6일 개봉 이후 논란의 중심에 있던 <또 하나의 약속> 측은 개봉 4주차를 맞아 '또 하나의 개봉'을 준비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제소 이후 '전국 재개봉'을 위해 기존 단체관람과 서포터즈 활동 외 제작사가 할 수 있는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개봉관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기상영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의도 국회는 물론 영진위 차원에서 물밑 얘기가 오가는 중이다.

<또 하나의 약속> 측 한 관계자는 "100만 관객이 상징적인 숫자고 유의미하다"며 "대관을 하든, 단체상영이든, DVD 상영이든 3, 4월까지는 유랑극단처럼 관객들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3월 6일은 고 황유미씨의 기일이다. 이날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영화'인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이 개봉한다. <탐욕의 제국> 역시 24일 삼성본관 앞에서 <송환>의 김동원 감독,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이 '삼성 바로 세우기'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삼성 백혈병'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

장기 상영을 위한 개봉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또 하나의 개봉'을 준비 중인 <또 하나의 약속>과 연이어 개봉하는 <탐욕의 제국>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지속해서 환기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