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형 열사

‘우리 안의 비정규직’… 죽은 노동자에 대한 헌사 [미디어현장] 박종식 한겨레 사진기자

참된 2013. 9. 18. 14:47

 

 

 

‘우리 안의 비정규직’… 죽은 노동자에 대한 헌사
[미디어현장] 박종식 한겨레 사진기자
 
 
입력 : 2013-08-14  11:09:49   노출 : 2013.08.18  10:33:21 
 박종식 한겨레 사진기자 | media@mediatoday.co. 미디어 오늘

 

내게 <우리 안의 비정규직> 기획은 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2012년 4월 22일 저녁 평택 쌍용차 공장 앞, 해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 모인 노동자 중 그가 있었다. 당시 난 과거형이 되어 가던 해고노동자 문제를 다르게 접근해보려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집단화된 대명사로서의 해고노동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부인, 남편, 형, 누나, 동생으로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해고노동자들의 초상사진 연작을 신문에 싣는 기획을 진행 중이었다. 난 그것이 일간지에 속한 사진기자로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고노동자들의 초상사진을 찍고 있었고, 기아차 해고노동자 윤주형 씨는 내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단정하게 빗어내린 머리칼과 또렷한 눈동자, 맑은 얼굴빛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에 쫓겨 이름과 해고 날짜만 물어본 채 헤어졌지만, 그의 맑은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한겨레 8월 7일자 1면 사진기사. 현대차공장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지만 한 명은 비정규직이고 한 명은 정규직이다. <한겨레>는 다양한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과 사연을 소개하는 <우리 안의 비정규직>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그렇게 그와 헤어진 후, 그의 이름과 얼굴을 죽음으로 다시 기억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기아차 해고 비정규직노동자 윤주형 씨 자살’. 1월 29일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보는 내내 정신이 멍했다. 그는 1월 28일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3평 남짓한 자신의 월셋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마도 저는 평생 엄마를 찾아 헤맸나 봅니다.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구요.” 고아였던 윤씨가 B5크기 노란색 메모지에 남긴 자필 유서의 한 구절이었다. 대선 이후 이어진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 속에 세상은 그의 죽음을 ‘박근혜 당선 이후 여섯 번째 노동자 죽음’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내게 윤주형 씨의 죽음은 단순히 한 노동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내 사진과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살리고자 했던 사진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죽음으로 기억되는 그의 모습뿐 이었다. 사진기자로서 자괴감과 무력함이 몰려왔다. 마치 내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듯 했다.

나는 화성의 윤 씨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윤 씨의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원직복직 문제를 둘러싸고 해고자 모임과 정규직 노조 사이에 갈등이 빚어져 시신을 앞에 두고 노동자와 노동자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사망일 열흘 만에 백기완 선생의 중재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모습들은 왜 그가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나를 납득시켰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 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세상과 직면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사진과 글은 악한 세상에서 무기력한 것인가? 선의를 가지고 했던 나의 행동들이 도리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난 내 카메라 앞에 섰던 사람들을 피사체가 아닌 사람으로 대했을까? 난 앞으로 카메라 들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내는 울먹이는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자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믿는 사람이잖아.”

   
박종식 한겨레 사진기자
 

언제 어떻게 해고될지 모르거나 특정 시간만 쓰이고 버려지는, 이런 삶을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가 노동인구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9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이들을 둘러싼 노동환경은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보에 대한 희망을 품고 대한문 앞에서, 서울광장에서, 청계광장에서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어쩌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이며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우리 안의 비정규직> 기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다양한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과 사연을 소개하는 <우리 안의 비정규직>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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