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능스님

[범능스님] 직설의 노래로 타살의 시대를 넘었던 그대

참된 2013. 6. 20. 11:51

[범능스님] 직설의 노래로 타살의 시대를 넘었던 그대
2013년 06월 17일 (월) 14:33:34 허연식 simin6678@hanmail.net   광주인

직설의 노래로 타살의 시대를 넘었던 그대, 어디로 가는가!

김지하 시인이 말한 풍자와 자살의 70년대와 구별하기 위해 언젠가 범능을 비롯한 노래패 친구들과 용봉문학회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고규태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직설이 아니면 타살의 시대라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광주출정가'가 고규태 시인의 작사와 범능, 당시 정세현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그의 작곡으로 만들어졌다.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시 민중문화연구회의 간사로 일하면서 그를 만났다. 당시 사무실이 있었던 광주 북구 유동의 YWCA 6층은 서울 종로의 기독교회관과 명동의 명동성당과 더불어 광주에서는 유일하게 공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이른바 운동권의 메카였었고, 그곳에서 민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다양한 문화투쟁이 기획되고 창작되었다.

   
▲ 지난 15일 범능스님이 손수 주창한 전남 화순 북면 옥리 불지사에서 13일 입적한 범능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고 있다. 스님의 유골은 수습돼 불지사 주변에 뿌려졌다. ⓒ광주인

홍성담의 유명한 5월판화, 용봉문학회의 벽시에 가까운 문학 창작, 광주학살 만행의 잔혹한 상황을 공동으로 그려 집회 현장에 내걸었던 대형 걸게그림, 그리고 범능을 비롯한 노래패들의 민주화투쟁을 독려하기 위한 투쟁가가 작곡되고 녹음되었다.

정세현은 당시 진도에서 오랜동안 기거하면서 남도의 한과 민중들의 애환을 노래로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공부했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노래는 민주화투쟁을 독려하는 것이면서도 음율은 진도의 씻김굿 가락과 같은 절절함이 늘 베어나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꽃등들어 님 오시면', 박승희 열사의 분신을 담고 있는 '5월의 꽃', '봄날의 코스모스' 등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부르는 노랫말의 직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일상이었다. 목소리 한 번 크게 내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시위 현장이나 집회 장소에서 뒷전에 서 있는 경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1990년대 초반 갑작스럽게 광주를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출가였다. 당시 심한 병치레를 하고 있던 그에게 불심은 그 병치레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이후 그의 삶은 불가에 귀의하여 불자들에게 노래를 통한 불심을 잦아들게 하는 스님, 범능이었다.

그런 그를 2000년 5.18민주화운동 제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전국의 역사교과 교사들의 5.18연수를 하면서 불렀다.

당시 대전의 사찰에서 불심을 전하기 위해 노래활동을 하던 스님으로 찾아 온 그에게 전국에서 모인 역사교과 교사들은 1980년대 그가 만들고 불렀던 이른바 민중가요를 불러주기를 요청했고, 십수년만에 다시 그의 기타 반주와 허스키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단아한 목소리를 통해 불려졌던 1980년대 민중가요들이 투쟁가가 아닌 서정 짙은 울림으로 되찾아왔고, 이날 밤 그의 노래를 들은 이들에게 밤세워 술잔을 기울이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 범능스님 생전 공연 모습.

"긴 어둠을 뚫고 새벽닭 울음 소리 들리면 안개낀 강물따라 꽃등들고 가는 흰 옷입은 행렬 보았네" 로 시작하는 꽃등들어 님 오시면이라는 노래처럼 불편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민중이 타살되는 아픈 시대를 넘어 개인적으로 죽음을 넘어야 하는 병마와 투쟁해야 했던 그의 긴 어둠의 삶은 마침내 새벽닭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민주화의 세상에서 꽃등을 밝히는 불심 가득한 노래로 흰옷 입은 사람들의 번뇌를 대신해 왔다.

이제 그는 우리에게 민주화의 실현이라는 지난했던 역사의 면면에 모두가 일어서지 않으면 그대로 죽임을 당할 것 같은 투쟁심으로 일으켜 세운 부름을 남기고, 먼저 간 이들을 향해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하고 자칫 엷어질 수밖에 없는 떠난 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살도록 권유하는 서정을 남기고 떠났다.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을 기억하자고 노래하던 그가 이제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난 것이다. 그가 노래했던 것처럼 그가 가는 저승길에도 새가 울고 꽃은 피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