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현대사 이근원

‘아빠의 현대사’ 연재를 마치며[에필로그] 사람, 내 삶의 뿌리, 사람이 희망이다

참된 2013. 4. 11. 22:36

‘아빠의 현대사’ 연재를 마치며[에필로그] 사람, 내 삶의 뿌리, 사람이 희망이다

레디앙  |  webmaster@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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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14  13: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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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로 2년이 넘게 60회를 연재해 온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 시리즈를 마친다. 지난 역사이기도 하지만 끝나지 않는 지금의 역사이다. 필자의 말대로 지금부터의 현대사는 딸에게 들려주는 현대사가 아니라 딸 세대와 아빠 세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현대사일 것이다. 이근원의 연재 글은 올 4월경 레디앙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이근원이 현대사를 들려주었던 딸이 그린 삽화와 그림이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수고해주신 이근원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편집자>

***

다시 ‘공유’와 ‘기억’을 위하여

그렇게 삼십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미처 돌아볼 틈도 없었다. 네가 고등학생일 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너는 갈등과 번민 속에 시위를 결심하던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정말 쏜 살같이 세월은 흐른다.

지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영원히 곁을 떠난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동을 주었으나, 등에 칼을 꽂고 지금도 웃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감격했고, 때로는 외로웠고, 또 때로는 좌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산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고 있다.

감옥에 있을 때 사발면 용기에 꽃씨를 심은 적이 있다. 단지 물만 주었을 뿐인데 어느 날 거기서 백리향 꽃의 새싹이 올라왔다.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꽃이 피리라는 ‘낙관’은 결코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당장 지금의 상황은 비관적이지만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할 이유다. 2013년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를 둘러싼 만리장성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작은 담장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는 성이 없고 나라를 방어할 성벽이 없다면 제 집의 담장인들 온전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 동안 이나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신영복 교수님의 <더불어 숲>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만리장성에 올라 그 감상을 쓴 글이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 가정의 평화, 혹은 작은 소망도 우리를 둘러싼 외곽이 부실하면 한 방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담장은 작게는 가족일수도 있고 넓게는 민주노총이나 진보적인 정당일 수 있다. 지금 한반도를 몰아치고 있는 전쟁의 위협을 보자. 권력을 잡은 저들이 오판을 하며 한순간에 수많은 삶이 사라지게 된다. 지난 세월 수많은 우리가 함께 싸워 온 이유다. 나 못지않게 ‘우리’가 중요하다.

오는 3월 20일 민주노총의 일곱번째 위원장을 뽑는다. 많은 정파와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함께 한다. 바닥으로 추락한 민주노총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취지였다. 3~4일 동안 밤늦게까지 고민을 모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 여전히 해석이 다르다. 위기를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르다. 노동운동의 폭을 확대하려던 진보정당 운동이 거꾸로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나와 네가 넘어서야할 벽이다.


사람, 내 삶의 뿌리

<라면 두박스, 종이컵 한 박스, 반찬 통, 생수, 가스난로 한 개. 빼곡한 투쟁일정을 적은 작은 화이트보드 한 개> 낯익은 광경이다. 부여 고려인삼창 앞, 이제 조만간 200일이 될 투쟁 천막농성장에서 마지막 이 글을 쓴다. 지금까지 내가 천막에서 자고, 먹은 게 도대체 몇 번이나 될까?

   
▲ 담배인삼공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필자

지금껏 내가 살 수 있었던 힘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책을 통해 혁명을 꿈꾸고 논의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꿋꿋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운동은 아주 좋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한다.

지난 2011년 청주시청 앞에서 간병누님들하고 천막농성을 한다. 청주시에서 노인전문병원을 위탁받아 운영하던 효성병원은 계약기간 만료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 조합원만 골라 해고한다. 한 달 가까운 투쟁을 통해 원직복직은 물론 효성병원을 몰아내고, 직접 고용된다. 환갑을 넘겼음에도 “후배들에게 좋은 직장을 물려주기 위해 투쟁한다”는 매현누님, 선애누님 등과의 만남은 그 자체가 축복이었다.

   
 
   
▲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의 간병노동자 투쟁

청주를 떠나기 직전인 2012년에는 공민교통 택시 운전사들이 마찬가지로 그 장소에서 천막농성을 한다. 법이 정한 전액관리제 쟁취를 위함이었다. 민주의 탈을 쓴 상대노조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만 해고시키기 위해 정년을 무려 7년이나 단축한다. 물론 투쟁은 이기고, 부당하게 해고되었던 이창주 사무국장도 복직한다. 마찬가지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형님들과 동생들을 만난다. 그들은 지금도 다시 투쟁 중이다.

너와 은수의 손톱 끝에 붕숭아물을 들여 준 적이 있다. 너희의 손톱에 물을 들이려면 내 손도 물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사람과 부대끼면서 서로 물들게 된다. 사람으로 인해 실망하고,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누구나 빛나는 인생의 한 때가 있다.

지나가는 어떤 버스를 불 때 아득해질 때가 있다. 매번 그렇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법무부 버스다. 그 안에는 죄수들이 탄다. 창을 가려서 안이 안보이게 만들어져 있다. 그 버스를 보면 나는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 교도소에서 나와서 재판을 받으러 가거나 공주 혹은 마산 교도소로 이감 가는 중이다. 차창을 지나는 모든 풍경이 낯설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저 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나 빛나는 시기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 빛나는 시기는 당시에는 고통스러운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상처들은 너무 깊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만이 되돌아 볼 줄 안다. 또는 인간만이 과거의 기억을 씹어 미래를 기약할 줄 안다. 당장 ‘지금 여기’가 아니라 눈을 들어 ‘미래’를 보는 이유다.

앞으로 네가 겪을 수많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거꾸로 훗날 돌아볼 때 가장 빛나는 시기일수도 있다. 좌절이라는 단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의 가치

브레히트라는 독일시인이 있다. 그는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이라는 시를 통해 묻는다. 고대이집트 제국의 수도이자 화려했던 도시 ‘테베’는 누가 지었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바빌론’이나 ‘만리장성’은 누가 만들었는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노동자가 만든다.

그 노동의 가치를 항상 소중하게 여기길 부탁한다. 2년 넘게 ‘아빠의 현대사’를 쓰면서 주로 노동자들을 말한 이유다. 그러면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나 24시 마트의 청년들, 아파트경비 아저씨들이 따뜻한 이웃으로 보인다.

“우리들의 걸음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세상을 바꿀 이웃의 마음을 바꿀 때까지!”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위해 도보하던 사람들이 만든 표어다. 그런 마음이 모일 때 갈수록 인간을 탐욕스럽게 만드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끝내며

이 글은 한 개인이 살아온 기록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녹아있는 현대사다. 광주항쟁의 부채를 가지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 오늘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높은 철탑위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사람들, 미처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열사들 모두의 것이다.

비록 역사책에 단 한 줄도 기록되지 못할 것이지만, 언감생심 그런 바람 자체도 없이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사람들의 이름을 일부러 많이 넣은 이유다.

다행히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있어서 가능했다.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이 글은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 중에 겁 많고, 소심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가진 한 개인의 얘기”라고 했다. 혹시라도 그 시대 전체를 껴안고,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왜곡한 게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글을 쓰면서 되돌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너와 손잡고 ‘미래와 맞닿아 있는 과거’를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기억을 바로 잡아 주고, 자신들의 얘기를 들려주어서 너무 기뻤다. 이 글을 계기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자식들에게 말해주고, 기록을 남기고, 너도 훗날 네 아이들에게 ‘엄마의 현대사’를 들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By 이근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을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