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레디앙>에서 이근원 공공운수노조연맹 대협국장이 쓴 ‘아빠의 현대사’를 출간했다. 저자가 속해 있는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이근원씨와의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양해를 얻어 그 내용을 레디앙에도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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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이 희망의 촛불로 들끓던 시간이 어느덧 4년이나 흘렀다. 남녀, 어른아이 할것 없이 손에 손잡고 촛불로 밝힌 역사의 광장에서 우리는 좀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키웠다.
2008년 촛불 현장에서 고등학생 딸과 마주친 이근원은 엄마, 아빠가 살아왔던 삶의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울림이 ‘아빠의 현대사’(레디앙)로 세상에 나왔다.
80년 ‘서울의 봄’을 경험했던 대학생 이근원은 안산 반월공단, 서울, 울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공공운수노조연맹 대협국장으로 2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연맹일을 하면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설립 초기에 파견을 가서 일을 했었으니까. 그래서 만들 때의 경험과 고민을 글로 남길 수 있었지요. 물론 2009년 안식휴가 기간동안 여유가 생기면서 글쓰는 게 가능했지만”
촛불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아빠의 현대사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저항은 1980년대의 역사를 담았고 2부 전진은 2000년대, 3부 혼돈은 2010년대 박근혜 정부출범까지를 담고 있다.
“촛불에 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광주에 대한 부채감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촛불이 고등학생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죠. 은지가 그런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거나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 연맹의 역사도 마찬가지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싸움을 통해 바꿔냈기 때문이죠. 얼마전 취임식을 한 서울지하철노조 박정규 위원장도 99년도에 파업하고 해고됐다가 13년만에 복직했거든요. 당시 서울지하철 파업으로 100명 이상이 징계를 당했어요,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공공부문노동자들이 왜 철밥통을 벗어던지고 싸움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할 수 없는 싸움이고 결국 싸울거라면 어떤 맥락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그는 신입조합원이나 간부들이 역사를 알고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길 바라고 있다.
역사 알기를 통해 미래를 봐야
결국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어 20년 노동운동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칼날위의 판단’에 대해 물었다.
“KTX 비정규직 싸울때였죠. 당시 여성단체연합이 단독으로 당시 철도공사 이철사장과 만나서 합의안을 만들었더라구요. 그때 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욕을 엄청 먹더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당시 연맹 임성규 위원장에게 사표를 내겠다고 했어요. 연맹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거라면… 근데 타이밍을 놓쳤죠. 이철이 합의안을 다시 거부하면서 없었던 일이 된 겁니다.”
“청주간병노동자 천막투쟁이나 부여 민주인삼지부 파업투쟁의 경우도 천막을 걷는다고 노조간부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 토론을 거쳐 결단을 내린 거죠. 상대가 있는 싸움이라 100% 다 얻을 수 없기에 판단을 한 것이죠” .
노조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은 늘 결단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평상시 객관적이고 여유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동지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 이것이 리더십의 근원이 아니던가!!
그는 딸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이라 깊은 이야기를 담지 못했다. 특히 가장 후회되는 민주노동당 분당에 대해 깊은 얘기를 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 했다.
“민주노총이 있어서 당을 만들었는데 분당과정에서는 민주노총이 힘을 쓰지 못했죠. 우리가 정당을 만들때 노동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인데 독이 된 것이죠. 국회의원 10명을 만들때도 노동운동의 모범을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권력과 뺏지만 남게 되고…”
“지금도 공공부문 운동을 보면 의회가서 국회의원 만나고 법률학교하면 100명이 오지만 조직활동가 학교 같은 것 하면 10명도 안 모이는 현실이잖아요. 법에 기대고 국회의원에 기대는 것이 다 거기서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는 386세대라는 말 대신 자신을 광주세대라고 표현한다. 이 시대의 불행은 소위 386세대가 너무나 쉽게 정치일선에 뛰어들면서 권력을 우습게 여겼다는 생각이다.
“6월 항쟁의 정치는 끝났다고 봅니다. 7/8/9노동자대투쟁, 노동정치의 시대는 아직 안왔어요. 이것을 대비시켜 보면 6월 항쟁은 학생운동 출신들이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이지만 우리는 집단적으로 조직의 힘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정치도 세상도 안바뀌고 권력도 안바뀐다는 거죠”.
2년전 공공운수노조 완성을 위한 ‘100일 행동’을 제안한 그는 중부권 조직팀장으로 대전과 충북, 강원지역을 오가며 조직활동을 한다. 산별노조 운동이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지역은 삶의 터전이자 운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지치지 않고 노동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년반 동안 지역에 파견을 갔었기 때문입니다. 간병노동자, 택시노동자, 민주인삼공사 조합원 등 살아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어 천막생활이 좀 힘들긴 했지만…”
책의 마지막 글도 부여 민주인삼공사지부 천막농성장에서 썼다. ‘지금까지 내가 살 수 있었던 힘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적은 것도 그에게 삶의 뿌리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가까이 더 많이 현장으로
그는 보다 현장에 가까이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특히 고참들은 조직은 물론, 선전, 언론, 상담, 투쟁전망까지 다 할 수 있으니 노하우를 가지고 밑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80년대 1만 여명이 노동운동의 꽃을 피우기 위해 공장으로 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운동의 위기는 단시간에 극복되지 않아요. 저들이 법과 제도를 완비해서 들어 오는데 그걸 어떻게 이깁니까, 단시간에 극복될 수 있는게 아니죠. 대중의 커다란 힘을 가지고 극복해야 해요. 중앙에 앉아서 집회 몇 명이 오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다 넒은 진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에게 넓은 진지란 노조의 물적, 인적 자산을 가지고 지역운동에 기여하고 재편하고 모아나가는 것이다. 삶의 터전과 운동의 일터가 맞물려야 위기가 극복될 것이다. 지역에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상담소도 좋고 이주노동자센타, 카페등 노동과 삶의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아야 산별노조와 정치가 같이 갈 수 있다. 그래서 고참활동가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현장 가까이 좀더 지역에서 활동하기를 바란다.
“내 역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낙관적 저항이랄까 근거는 없지만. 좀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죠. 좌절할때도 있지만 버티고 넘어가야 되는게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살아 있는 노동자들, 사람들 속에서 낙관으로 희망을 품고 같이 웃고 울고 견뎌 내는 힘. 그래서 그는 머리로 하지 않고 마음과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몇 안되는 선배 고참활동가다.
그는 또다시 기회가 온다면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뭔지, 고민이 뭔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기록하고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철도나 발전노조처럼 큰 공장의 투쟁을 강조하지만 노동법개정투쟁때는 오창휴게소노조. 유신코퍼레이션노조, 하이텔노조도 파업을 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업장과 사람들의 이름을 남겼다.
누구 한사람의 역사, 투쟁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 함께 만들어 가는 역사라는 삶의 가치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박노해는 그의 시 ‘길이 끝나면’에서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고,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나의 선배 이근원이 딸 은지와 함께 만든 ‘아빠의 현대사’는 그래서 끝이 아니고 시작인 셈이다.
이제 모두가 희망을 시작하자. 지금 여기서.(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의 원문 기사)
*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는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4월 19일 저녁 7시 금속노조 4층 회의실(정동 경향신문 별관)에서 소박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