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예술

오월, 아직 놓아선 안 되는 기억

참된 2013. 1. 15. 03:30

오월, 아직 놓아선 안 되는 기억
<5·18 32주년 주목! 이 행사>오월극 `일어서는 사람들’과 `마중’
 
황해윤 nabi@gjdream.com    광주드림
기사 게재일 : 2012-05-16 06:00:00
▲ 놀이패 신명 `일어서는 사람들’.

 

 

5·18. 오월정신계승. 대동세상. 독재. 저항. 언제부턴가 무감하게 흘러다니는 단어들. 이제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가치지만, 그 가치에 진심으로 접속하지 못하는 현실. 32년 전 과거의 사건으로 누워버리고 마는가? “한 세대가 흘렀으니까. 이제는 좀 가벼워져야지.” 애써 변명하며 느슨해지는 마음에 일침을 가하는 것들이 있다. 죽음이 올 것을 알고서도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했던, 도청의 그 밤으로 데려다 놓는 것들이 있다. 오월극이 그렇다.

 5·18 광주민중항쟁 32주년에도 오월극은 여전히 관객들에게 기억해야할 역사를 던져 놓는다. 놀이패 신명의 ‘일어서는 사람들’과 극단 토박이의 ‘마중’은 그러한 고민의 현재적 결과물이다.

 올해 오월에도 어김없이 오월극들이 우리에게 온다. ‘일어서는 사람들’과 ‘마중’이 민들레 소극장에서 18·20·22·27일 공연된다.

 

 놀이패 신명 200회 넘는 공연

 놀이패 신명의 ‘일어서는 사람들’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다. 88년 초연된 뒤 지금까지 공연횟수로만 200회가 넘는다. 97년에 한 번 개작됐다. 97년 이후 공연횟수도 100회가 넘는다. 5만 여 명이 ‘일어서는 사람들’을 관람했다. 공연장에서도 거리에서도 학교에서도 펼쳐졌고, 전국 각지는 물론 일본 공연도 했다. 놀이패 신명의 대표극이 됐고, 오월극의 대표극이 됐다.

 ‘신명’에게 ‘일어서는 사람들’는 “신명을 신명답게, 신명의 정신으로서 지켜져야 할 지점을 늘 가리켜주는 작품”이라 여긴다. 놀이패 신면 박강의 씨는 “계속 풀어내야 할 숙제와도 같다”고 말한다.

 ‘일어서는 사람들’은 80년 오월 광주사람들이 일구어냈던 대동세상에 주목한다. 광주시민들이 피와 눈물로 이룬 투쟁의 공동체, 희망과 평화의 공동체를 마당굿으로 형상화했다. 역동적인 춤과 노래, 재담을 통해 광주의 5월 정신을 전한다.

 ‘일어서는 사람들’은 봄날의 사랑으로 시작해 봄날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다시 봄날의 부활로 마무리된다. 기층민중으로 상징되는 곱추와 곰배팔이 부부가 그 중심에 있다. 부부는 오월을 겪으며 아들 일팔이를 잃지만,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다. 질곡과 상처는 희망과 저항으로 역전된다.

 신명 역시 오월과 관계가 깊다. 신명의 전신은 1980년 1월 결성된 극회 ‘광대’. 광대는 농촌문제를 다룬 ‘돼지풀이’를 그해 3월에 공연하고 두 번째 작품으로 ‘한씨연대기’를 준비하던 중 오월을 맞는다. 오월항쟁 한복판으로 투신한 단원들은 ‘투사회보’를 제작 배포해 고초를 겪고, 그 과정에서 광대는 와해된다. 이후 1982년 광대 단원 윤만식 씨 등을 중심으로 전라도 마당극의 맥을 잇기 위해 다시 꾸린 것이 바로 ‘신명’이다.

 극단 토박이, 오월 세대간 갈등 그려

 지난 83년 창단 이래 오월극을 꾸준히 올려온 극단 토박이는 매번 오월에 대한 고민을 달리 한다. 이번에 공연되는 ‘마중’(원작 박정운, 재해석 토박이)은 5월을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에 주목한다. 80년 5월 행불자를 통해 오월을 들여다본다.

 “국립 5·18묘지 한쪽에 행방불명자를 위한 묘가 있다. 세월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사람을 잊게 만들지만 그 가족은 여전히 죽는 날까지 그 사람을 기억하며 기다린다. 5·18은 역사적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이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5·18이 주는 의미와 정신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연출을 맡은 토박이 임해정 씨의 이야기다.

 ‘마중’은 지난 2008년 ‘상중’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됐다. 매번 공연을 하면서 조금씩 각색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마중’의 주인공은 할머니 삼례와 손자 기태. 오월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다.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서 아들 영식을 키웠던 삼례. 삼례와 영식이 그렇게 소원하던 집을 장만하고 이제 살만해졌다 싶었던 80년 5월. 장사를 떠난 영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30여 년이 지나도록 삼례는 손자 기태와 살면서 아들을 기다린다. 기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동네가 재개발 되면서 이사를 가야만 한다. 삼례는 기태의 성화에 이사 준비를 하지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토박이 송은정 씨는 “광주 오월이 점점 묻혀지고 사라져가는 것이 아닌가, 역사에서 한 줄로 정리되는, 그것마저 삭제되는 현실에서 5월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마중’에는 그 같은 고민이 담겨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또 시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거리 곳곳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고민하는 ‘오월극’은 여전히 ‘기억’을 두고 전투중이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