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운동

이제 탈당합니다! 송태경(2008.8.2)

참된 2012. 12. 2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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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탈당합니다!

 글쓴이 : 송태경
 등록일 : 2008-08-02   18:56:57 조회수 조회 : 157    추천수 추천 : 0    반대수 반대 : 0    
   



뒤늦게 탈당의 글을 올립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민주노동당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마저 이제는 훌훌 털어 버리고자 합니다.


사 실 당직을 사직하고 탈당기자회견의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곧바로 탈당계를 제출하지 못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이유는 어느 이의 간곡한 호소와 부탁(개인적인 인연으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호소와 부탁)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7월 정도까지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며 기다려 달라”는...

그렇지만 이제 그 시한도 종료되었습니다.
자의든 타이든 당적을 유지하고 민주노동당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어야할 그 어떤 이유도 이젠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희망이 될 가능성”, 그 미약한 가능성 하나를 사랑하며 내 젊음의 대부분인 만 10년 5개월을 쏟아 부었던 정당, 돌이켜보니 참 많은 기억들이 아스라이 스쳐지나갑니다.

꼬박 6박 7일을 홀로 밤샘하며 “경제종합대책”을 정리 기자회견을 성사시켰던 97년 대선의 짜릿한 기억과 장미 한 송이,

황망하게도 대선의 와중에 조직적 철수 결의를 해버린 당시 전국연합 사람들(또한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분들이 08/2/3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의 주역이자 현재 당을 압도적으로 주도하게 된 분들이지요!),

“IMF 구제금융의 위험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퇴보세력이지 어캐 진보냐”는 등의 독설을 퍼부으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덕분에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쟤는 짤라야 하지 않을까”던 천영세 전의원님의 목소리(아직도 그 때의 그 목소리는 생생 선명하며, 그 때 정리해 주셨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97 대선참패와 청산 분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노동시간단축부터 고용보험 실업통계의 문제까지 이재영 황정아등과 함께 실업대책을 정리했던 일,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기획 등을 둘러싼 에피소드들,

용서등과는 별개로 마음 한 구석에서 도무지 찝찝하게 지워지지 않는 최모씨의 폭행 사건,

99년말 “작은 거 말고 큰 거 하나”를 부탁했던 권영길 대표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상가임대차보호운동 정책기획을 둘러싼 수많은 에피소드들,

00년 울산북구 선거 패배의 충격,

고리대추방-신용회복운동(가계부채 SOS운동)에서 만난 수많은 서민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희망의 눈 빛들,

03년 경기도당(경기동부연합)의 레이저복합기 배분을 둘러싼 잡음(개인적으로는 가장 안 좋은 기억의 하나이며, 이후 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일체의 후원을 권유하지 않게 되었고 진보돼지도 키우지 않게 되었지요)

민주노동당을 구조적으로 망가뜨렸던 03년 11월의 당대회 결정(이로 인해 3층 옥상옥 구조인 최고위원회 등이 성립될 수 있었고, 당내 정파전쟁이 가속화 되었지요)과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

04년 국회진출 기쁨의 배후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로 감내해야 했던 엄청난 과로,

개 인적으로는 매우 충격적이게 다가왔던 최기영의 이혼(당시 그의 이혼은 전적으로 민주노동당 활동에 채인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서조작사건(지나간 일 부질없지만, 이 사건 당시 권영길의 측은지심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생탐방의 수많은 기억들(덕분에 전국 각지의 온갖 명물 음식들을 섭취해보는 특별한 호강도 할 수 있었지요!),

많은 분들의 만류에도 정책위를 떠났던 일과 정당간부 연수를 위해 일본을 두루 둘러봤던 기억들,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윤종훈 회계사 사태,

97년 이후 내내 나와 함께 정책위를 지켰던 동료 이재영 실장에 대한 사실상의 해고조치와 그 배후에 있었던 것들에 대한 내색하지 않던 분노,

그렇지 않아도 중앙당 사직의 빌미를 찾던 나에게 “본의 아니게” 업무공간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최상의 사직서 제출의 빌미를 제공해 주셨지만 끝내 불발로 끝났던 기억들,

분당의 파국은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07년 대선 후부터 08/2/3 사태까지의 기억과 영문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았던 시간들(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많이 아파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2월 3일 파국의 현장...



물론 이런 저런 수많은 기억들과는 별개로, 사상이나 정파적 색채 등을 떠나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 소중한 인연들의 얼굴도 스쳐 지나갑니다.

민주노동당의 파국사태에 나만큼이나 몹시 아팠을 김문영,
당시로선 혁신 그 자체였던 CMS 체계를 도입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며 재정안정화의 토대를 마련했던 1호 당원 최철호님,
한 때 나와 같이 사무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홀로 홈페이지 등을 만들어 냈던 정보통신의 김창현,
입장이 다름에도 내 얘기를 진솔하게 경청해 주었던 울산의 하부영님,
노동자 서민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배우고자 했던 이영순 전의원실의 정경윤,
3층 옥상옥 구조인 최고위원회 구조 등에 갇혀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문성현 전대표,
“항미연북하면 진보하냐?”고 힐난이라도 하고 싶지만 “다른 이유로” 여전히 일정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박승흡님,
민주노동당의 과거와 현재 심지어 어쩌면 미래까지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권영길 대표,
비록 소수임에 분명하지만 나 이상으로 노동자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활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 서울 양천의 권혁태 등 건강한 지역활동가들,
미우나 고우나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진심으로 수습의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는 김성진 전최고, 그리고 기타 등등.


그러고 보니 이들 소중한 인연들도 앞으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만날 일이 없겠군요.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기엔 너무 늦었고, 개인적으로는 미우나 고우나 “진보신당 지지”를 분명히 한 이상에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싫든 좋든 사회적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일인지라, 10년 넘게 진심으로 몸담아왔던 공간에 대해 인사는 해야겠기에 이리 된 듯합니다.

아무쪼록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정파싸움) 등에 몰두하면서 “말로만” 노동자 서민들을 위한다고 참칭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노동자 서민들을 위한 정당의 구성원답게 감동의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송태경 (전)민주노동당 정책위⋅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 올림 2008년 8월 2일
p.s 탈당계는 월요일에 팩스로 보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