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사입력 2005-01-15 오후 2:37:16
"민주노동당에 과연 '진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제부터인가 당은 모든 이슈에 '이것이 어느 정파, 어느 조직에 유리하냐'는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부유세와 조세개혁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과 기본원칙조차 없었다"
지난해 4.15 총선후 참여연대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적을 옮겼던 윤종훈 회계사가 14일 '사직서'를 제출, 민노당 안팎에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 회계사는 참여연대 재직시절 삼성그룹을 집중공격해 궁지에 몰았던 회계-조세 전문가로, 그의 민노당 입당은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기 때문이다. 반년만에 민노당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희망도 없는데 배고픔을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나의 사표가 당에 자극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윤 회계사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금 민노당, 부유세 다룰 능력도, 의지도 없다"
프레시안 : 당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윤종훈 : 부유세 문제는 단순한 법안 하나가 아니다. 누가 얼만큼 벌고 얼만큼 갖고 있는지 철저히 파악해 조세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시스템 구축 과정이다. 여기에 따를 엄청난 저항에 대응하려면 세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물론, 설득할 수 있는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진짜 '선수'들을 모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당력을 총집결시켜도 힘든 문제인데, 그간 당 지도부나 간부들이 보여준 몰이해를 봤을 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처 음엔 몸으로 때우며 좀 고생하고 문제가 있어도 희망이 보이겠지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당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과도기적 상황이 아닌 본질이구나 싶었다. 지금 당은 부유세를 다룰 능력도, 의지도 없다. 차라리 당 밖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
윤종훈 : 조세개혁 법안이 1차로 최고위원회에서부터 부결됐다. 이 때 '소위 말해 지도부의 인식이 이 정도구나'하고 굉장히 충격받았다. 자영업자 소득파악과 간이과세 폐지에 대해 당의 간부가 일방적으로 인터넷에 조세법안에 대한 반대글을 올려 당내 논란이 있기도 했다.
택시노조들이 LPG 특소세 폐지를 들고나왔을 때도, 당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 특소세를 폐지해도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몇 만원 안된다. 더구나 노조가 세금 빼서 사업주와 나눠먹기 식으로 에너지세제를 왜곡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에너지세제는 에너지 및 환경정책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고, 조세는 기본적으로 어떤 특정업종에게 혜택을 주기 시작하면 왜곡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에 당이 단호히 반대해야 했음에도 노조가 자기 지지기반이라고 우왕좌왕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밖에도 진보의 가치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흔들리는, 진보정당에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런 사소한 문제 갖고도 중심 못 잡고 원칙을 포기하는데, 부유세는 어림도 없었다. 구호가 공허했고, 앞길이 보인다 싶었다.
참여연대가 힘을 얻기 시작한 계기가 98년 부가세 면세 혜택 폐지 운동이다. 이는 변호사가 먹여 살리는 참여연대로서는 지지집단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개혁의 가치에 맞았기에 당시 진정성을 인정받았고 지지를 받는 시발점이 됐다. 민주노동당에는 이러한 진보의 가치에 대한 진정성이 안 보인다.
"지금같은 당내 정파간 정치공학적 구도로는 아무것도 못해"
프레시안 : 인력 보충등 지원요청을 했었나.
윤종훈 : 당연히 했다. 적어도 단 한명이라도 더 뽑아야지 이대로는 못간다고 경고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현 지도부의 부유세에 대한 진정한 의지와 동력에 의구심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국보법 철폐'에 올인하면서 부유세에 당력을 기울이는 게 낭비라는 분위기가 당내에 분명히 있었다.
아무리 정파가 있어도 할 일은 하면서 싸워야 한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공통인식도 없이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누구한테 유리하냐 주판알 튕기는 정치공학적 구도가 현재처럼 팽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유세는 삭발하고 단식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진보정당의 진짜 진검승부인데, 지도부의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당은 그간 조세문제를 내 개인의 원맨쇼로 해결하려 했다. 내가 먹고 싶은 음료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도 아닌데,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어떻게든 내가 하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연구원들도 많이 다운돼"
프레시안 : 가족수당 삭감등 연구원 월급이 현재보다 더 깎인다는 말도 있는데, (나가는데) 경제적 요인도 컸나.
윤종훈 : 월급은 적지만 활동예산 지원등 여러 다른 방식의 보완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게 가당찮은 기대라는 것은 곧 깨달았지만...사실 내가 안 나간다 해도, 백몇십만원의 월급으로는 선수들을 더 못 뽑을 뿐더러, 월급이 개선돼도 지금 당내 분위기에서는 들어올 사람도 없다.
정책 경향이 민주노동당 쪽임에도 정서적 이질감등 벽 때문에 접근 못하는 연구자도 많은데, 그것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이 스스로 그 선입견을 깨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많이 노력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웬만한 자극 가지고 될까 싶다.
프레시안 : 지난해 청운을 품고 왔는데,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윤종훈 : 허탈하다. 처음에 당에 출근할 때 고2 아들한테 괜히 미안해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새벽 5시반에 나오고 그랬다. 그래도 몇년 열심히 하면 뭔가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신년 사업계획을 봐도 전망 없단 생각이 들고 고작 출근부 작성같은 문제 가지고 당이 시끄럽기나 하고 다른 연구원들도 많이 다운됐다. 지금은 우선 아무 생각없이 좀 쉬고 싶다.
이 문제는 나에 대한 별도의 배려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표는) 어차피 누가 해도 언젠가 터질 문제였다. 그동안 당이 너무 정신없이 지내왔는데 이를 계기로 당의 운영방향과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4.15 총선후 참여연대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적을 옮겼던 윤종훈 회계사가 14일 '사직서'를 제출, 민노당 안팎에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 회계사는 참여연대 재직시절 삼성그룹을 집중공격해 궁지에 몰았던 회계-조세 전문가로, 그의 민노당 입당은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기 때문이다. 반년만에 민노당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희망도 없는데 배고픔을 참을 이유가 없었다. 나의 사표가 당에 자극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윤 회계사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금 민노당, 부유세 다룰 능력도, 의지도 없다"
프레시안 : 당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윤종훈 : 부유세 문제는 단순한 법안 하나가 아니다. 누가 얼만큼 벌고 얼만큼 갖고 있는지 철저히 파악해 조세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시스템 구축 과정이다. 여기에 따를 엄청난 저항에 대응하려면 세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물론, 설득할 수 있는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진짜 '선수'들을 모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당력을 총집결시켜도 힘든 문제인데, 그간 당 지도부나 간부들이 보여준 몰이해를 봤을 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처 음엔 몸으로 때우며 좀 고생하고 문제가 있어도 희망이 보이겠지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당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과도기적 상황이 아닌 본질이구나 싶었다. 지금 당은 부유세를 다룰 능력도, 의지도 없다. 차라리 당 밖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6월 <프레시안>과 인터뷰 중인 윤종훈 회계사. 그는 "(부유세에 대한)저항이 아니, 반역이 심하더라도 정도를 가는데 못가게 하면 싸워야죠. 그러면 사건이 되는 겁니다"라며 자신만만했었다. ⓒ프레시안 | |
윤종훈 : 조세개혁 법안이 1차로 최고위원회에서부터 부결됐다. 이 때 '소위 말해 지도부의 인식이 이 정도구나'하고 굉장히 충격받았다. 자영업자 소득파악과 간이과세 폐지에 대해 당의 간부가 일방적으로 인터넷에 조세법안에 대한 반대글을 올려 당내 논란이 있기도 했다.
택시노조들이 LPG 특소세 폐지를 들고나왔을 때도, 당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 특소세를 폐지해도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몇 만원 안된다. 더구나 노조가 세금 빼서 사업주와 나눠먹기 식으로 에너지세제를 왜곡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에너지세제는 에너지 및 환경정책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고, 조세는 기본적으로 어떤 특정업종에게 혜택을 주기 시작하면 왜곡되는 건 순식간이다.
이에 당이 단호히 반대해야 했음에도 노조가 자기 지지기반이라고 우왕좌왕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밖에도 진보의 가치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흔들리는, 진보정당에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런 사소한 문제 갖고도 중심 못 잡고 원칙을 포기하는데, 부유세는 어림도 없었다. 구호가 공허했고, 앞길이 보인다 싶었다.
참여연대가 힘을 얻기 시작한 계기가 98년 부가세 면세 혜택 폐지 운동이다. 이는 변호사가 먹여 살리는 참여연대로서는 지지집단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개혁의 가치에 맞았기에 당시 진정성을 인정받았고 지지를 받는 시발점이 됐다. 민주노동당에는 이러한 진보의 가치에 대한 진정성이 안 보인다.
"지금같은 당내 정파간 정치공학적 구도로는 아무것도 못해"
프레시안 : 인력 보충등 지원요청을 했었나.
윤종훈 : 당연히 했다. 적어도 단 한명이라도 더 뽑아야지 이대로는 못간다고 경고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현 지도부의 부유세에 대한 진정한 의지와 동력에 의구심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국보법 철폐'에 올인하면서 부유세에 당력을 기울이는 게 낭비라는 분위기가 당내에 분명히 있었다.
아무리 정파가 있어도 할 일은 하면서 싸워야 한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공통인식도 없이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누구한테 유리하냐 주판알 튕기는 정치공학적 구도가 현재처럼 팽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유세는 삭발하고 단식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진보정당의 진짜 진검승부인데, 지도부의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당은 그간 조세문제를 내 개인의 원맨쇼로 해결하려 했다. 내가 먹고 싶은 음료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도 아닌데,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어떻게든 내가 하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연구원들도 많이 다운돼"
프레시안 : 가족수당 삭감등 연구원 월급이 현재보다 더 깎인다는 말도 있는데, (나가는데) 경제적 요인도 컸나.
윤종훈 : 월급은 적지만 활동예산 지원등 여러 다른 방식의 보완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게 가당찮은 기대라는 것은 곧 깨달았지만...사실 내가 안 나간다 해도, 백몇십만원의 월급으로는 선수들을 더 못 뽑을 뿐더러, 월급이 개선돼도 지금 당내 분위기에서는 들어올 사람도 없다.
정책 경향이 민주노동당 쪽임에도 정서적 이질감등 벽 때문에 접근 못하는 연구자도 많은데, 그것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이 스스로 그 선입견을 깨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많이 노력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웬만한 자극 가지고 될까 싶다.
프레시안 : 지난해 청운을 품고 왔는데,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윤종훈 : 허탈하다. 처음에 당에 출근할 때 고2 아들한테 괜히 미안해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새벽 5시반에 나오고 그랬다. 그래도 몇년 열심히 하면 뭔가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신년 사업계획을 봐도 전망 없단 생각이 들고 고작 출근부 작성같은 문제 가지고 당이 시끄럽기나 하고 다른 연구원들도 많이 다운됐다. 지금은 우선 아무 생각없이 좀 쉬고 싶다.
이 문제는 나에 대한 별도의 배려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표는) 어차피 누가 해도 언젠가 터질 문제였다. 그동안 당이 너무 정신없이 지내왔는데 이를 계기로 당의 운영방향과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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