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운동

[스크랩] [쓰여질 당사와 만들어갈 미래를 위하여] 진보정당, 학생운동에 말을 걸다 박용진

참된 2012. 12. 23. 16:04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진보누리[(www.jinbonuri.com)]라는 사이트에 출소이후부터 올리는 연재물이다.
음.... 감옥에서 써놓은 글들이라서 재미없고 시기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을텐데, 한번 봐라. 진보누리 사이트에 박용진의 다시열린세상 이라는 제목의 칼럼코너가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가서 보고, 앞으로 생각나면 그곳에 올릴때 이곳에도 올리마. 좀 기니까 각오들 하고...



제목 : 쓰여질 당사와 만들어갈 미래를 위하여

제 1장
미래를 말하기 위하여

16. 진보정당, 학생운동에 말을 걸다.



나는 '국민승리21 학생사업단장'이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달고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권영길 대표 전국순회강연'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다.

진보정당문제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학생운동 내에 화두를 던지는 방법은 그나마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권영길 대표를 활용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른 접근에 비해 거부감이 적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주노총위원장이었고 대통령후보였던 사람이니 강연회라는 형식이 가장 적절한 방법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연고도 없이 불쑥 총학생회실로 찾아간 적도 있었고 "'그런 곳'과 '그런 짓'하고 싶지 않다"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강연회 개최의 형식적 실무적 부분이야 사무국장 혹은 총학생 회장과 의논하면 되지만 이런 예민한 문제는 반드시 정책국장이나 언더 지도부의 책임자와 별도의 논의를 가져야 한다. 그런 자리는 밤샘토론이 되기 일쑤였고 나름대로 진보정당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설득하기란 좀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밤샘토론과는 별도로 가는 곳마다 일부러라도 술자리를 만들어 흉금을 터놓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견해차이는 좁히면 되지만 마음속에 의심이 있거나 벽이 쌓이면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지고 결정적으로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지나친 음주와 생활불안정으로 인해 지독한 장염에 시달리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어찌나 학생운동진영, 특히 좌파학생운동진영의 비판과 견제심리가 심했던지 나는 강연회 홍보포스터도 '파격적'으로 만들게 했다. 국민승리21을 비실천적이고 투쟁회피적인 조직이라 비판하고 권영길대표를 타협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그들에게 단호함을 어필하기 위해서 포스터를 온통 붉은색과 총파업 당시 삭발한 권대표 사진으로 도배했던 것이다. 하도 포스터가 엉뚱하여 홍보국장이던 노현기 선배는 형편없는 감각에 혀를 차고 있었고 이상현 조직위원장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아니 왜 이렇게 삭발한 사진만 썼어? 누가 보면 영길 큰스님 설법회하는 줄 알겠네"

내 속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무어라 놀리던 간에 그 포스터의 엉뚱함 덕분에 학생운동가들이 국민승리21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시선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만큼 그 당시 상황이 우리에게 좋지 못 했던 것이다.

국민승리21의 재정이 넉넉지 않으니 조직부장을 맡고 있던 내가 강연회문제로 어느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 단지 그 일만 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노동, 빈민, 농민, 청년 등 지역조직을 다 만나고 대선 때 국민승리21 지역조직에 관여한 사람들까지 만나서 당건설을 위한 지역조직결성 가능성을 타진해야 했다.
한번의 출장비로 두 세배의 출장 몫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총학생회 생활방이나 학생들의 자취방에서 신세지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루말로 다 할 수 없는 이때의 고단함과 마음고생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말 나중에 어쩌면 웃으면서 이야기 할 때가 있으리라.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냉담함과 적대감을 보이던 학생운동진영을 설득해 일단 권영길 대표의 강연회만이라도 열어보자는 데까지는 합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하여 전국 12개 지역대학에서 강연회가 진행될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삼백여 명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비가 내리는 중에도 야외집회형식을 고집해 권대표가 비를 맞아가며 연설을 하기도 했다. 가장 적게 모인 경우 20명이 채 되지 않는 청중을 앞에 두고도 나나 권대표는 즐거웠다.
그렇게라도 학생들에게 진보정당을 말 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학별 강연회 행사는 엄형식, 김민정, 김대건 등의 후배들과 진행했고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어쨌든 사전 답사 한번, 권대표를 수행하면서 한번, 끝난 뒤 그 성과를 챙기기 위해 또 한번 모두 세 번의 전국순회를 해야했다. 그때마다 술자리를 갖고 밤새 토론을 했었으니 위장에 탈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게 이일은 몹시 중요한 것이었다.

당이 건설되고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지지와 참여 못지 않게 학생운동의 지지와 참여를 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당에 새로운 젊은 지지자와 당원들이 계속 보충되지 않는다면 당은 정체되고 도태될 것이다. 대중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당의 활동가가 되고 간부가 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학생운동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이 아니겠는가.
젊은 층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우리 당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어떤 면에서 학생운동은 전체운동의 사관학교이다.
우리운동의 역사에서 학생운동출신들이 배신과 좌절의 길을 간 쓰라린 기억 못지 않게 제 몫을 훌륭하게 해내 학생운동 출신 노동자들의 당당한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이 학생운동과 우호적인 관계 혹은 지지연대의 관계없이 당을 건설하는 것은 모래 위에 건물을 쌓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
이때 건설한 학생사업단은 학생당원들을 모아내고 각 대학 총학생회와 연대활동을 전개하면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건설의 토대를 만들었다. 지금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숱한 실천활동을 전개하면서 성장하는 중이고 건설되는 과정에 있다.

지금 학생위원회의 규모는 국민승리21 학생사업단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해 학생당원이 수만 3천명을 넘고 활발한 연대활동으로 당의 위상을 강화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3-4년전 국민승리21 학생사업단이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끌고 있는 젊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출처 : always friendly
글쓴이 : Mia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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