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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기 전 4일 오전 7시, 출근 차량 행렬이 끊임없는 창원터널 앞이었다.
잦은 접촉사고로 곳곳에 흠이 난 낡은 승합차 한 대가 길가에 서 있었고 주황색 옷을 맞춰 입은 사내 2명이 그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노동자 대통령 기호 5번 김소연 후보'를 알리는 선전판이 들려 있었다. 김소연 후보가 '세상을 뒤엎는 노동자 대통령'임을 홍보하는 중이었다.
자동차들은 무관심하게 쌩쌩 내달렸고 그들은 추워 보였다. 챙겨 입는다고 몸을 꽁꽁 싸매고 나왔지만 바깥바람을 5분 정도 맞으니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주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10명씩 20명씩 짝을 지어 시내 곳곳에서 선거유세를 펼치는 유력정당의 선거유세와 비교한 탓에 더욱 춥게 여겨졌던 듯싶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소연 후보가 생소한 만큼 이들 두 사내의 선거운동 역시 무척이나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발갛게 언 얼굴로 "경남 전역에 공식 선거운동원은 우리 둘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웃음을 지어 보였기 때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소연 후보 선거운동원 이김춘택(왼쪽) 씨와 양솔규 씨가 4일 이른 아침 창원터널 창원방향 출구 쪽에서 김 후보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
새벽 추위에 몸을 쉴 새 없이 떨고 있는 두 사내는 김소연 후보 선대위 경남 연락사무소에서 활동하는 이김춘택(40) 씨와 양솔규(39) 씨였다. 이김춘택 씨는 현직 금속노조 마창지역 금속지회장이고, 양솔규 씨는 전 진보신당 경남도당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이들이 치르고 있는 '북풍설한의 선거 운동'을 소개하기 전에 '세상을 뒤엎는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김소연(42) 후보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겠다.
김소연 후보는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에 맞서 '94일 단식 농성'과 '포클레인 고공농성' 등으로 점철된 1895일 투쟁을 이끈 인물이다.
비정규직 부당 해고와 비정규직 차별로 수년간 장기 농성을 벌이는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10곳을 넘는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대변되는 진보정당의 퇴조기에 이들 장기농성(파업) 사업장 노동자들은 지난 10월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 전국 활동가대회'를 개최하고 '노동자 독자 대통령 후보 완주'를 결의했다.
전국에서 1117명의 선거인단이 등록한 가운데 지난 11월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 현장투표에서 김소연 후보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이후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박현제 현대차비정규직 지회장 등 500여 명의 현장 활동가와 비정규직 노조 전·현직 간부들이 '선거투쟁'에 참여했다. 또한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당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이김춘택 씨와 양솔규 씨 역시 "노동자들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꿈이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전망을 마련하기 위해"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민승리 21로 촉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꿈이 무너졌다"고 단언했다. 이김춘택 씨는 "보수정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판갈이론을 내세웠던 진보 정치인들이 지금은 그을린 불판에서 타고 있는 고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비정규직 운동가들이 뭉쳐서 새로운 전망을 마련해가는 데 대통령 선거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양솔규 씨는 "노동정치가 실패하면서 현장에서는 피해의식과 냉소가 팽배해 있다. 이번 선거가 냉소를 극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의지와 전망은 힘 있고 뚜렷했지만 현실은 암울하기만 했다. 후원금으로 마련한 선거 자금은 기탁금 3억 원 제출과 공보물 제작에 거의 다 소요됐다. 며칠 전 경남 사무소로 100만 원의 선거자금이 내려왔다고 한다. 대형 현수막 하나에 300만∼400만 원씩 하는 선거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유세차량이라고 해봐야 2000년식 승합차 한 대가 고작이었다. 번듯한 사무실도 없다. 창원에 있는 박훈 변호사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인터넷 되고, 복사할 수 있고, 커피도 타 마실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만족해했다.
선거유세에 사용하는 노래는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 씨가 창작한 2곡뿐이었고, 노래패 꽃다지에서 2곡 정도를 더 제작해 줄 모양이었다. 현수막 부착도 늦어 이제야 부랴부랴 경남 전역을 돌며 요지를 찾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거나 힘들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두 선거운동원은 "홍보물을 나눠줄 수도 없고 오로지 유세차량과 현수막으로만 하는 선거라 힘들긴 하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노동자 독자후보의 필요성을 설명해 나가겠다"며 앞으로의 선거운동 계획을 담담하게 밝혔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소연 후보를 돕는 선거운동원은 현재 경남에서는 2명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언제 어떻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지 모를 5000만 국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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