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운동

삼성 앞 유세 현장, 후보와 경찰이 뒤엉켰다

참된 2012. 12. 9. 14:20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등록 : 2012.12.07 21:05 수정 : 2012.12.08 15:17

 

 

 

 

5일 오후 서울 역삼동 삼성 본관 앞에서 벌인 유세에서 김소연 후보(무소속)가 바리케이드에 올라 경찰에게 인도 쪽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르포] 진보 후보 3명의 고군분투기


 

▶ “국민 여러분, 그동안 우리 사회는 1번 아니면 2번 뽑았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켜 온 아이디어와 힘, 어디서 나왔습니까? 3번(진보후보)에서 나왔습니다.” 4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말했듯, 진보정당은 한국 정치에서 작지만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올해 대선은 진보정치가 사분오열돼 맞는 첫 선거로 기록될 것 같다.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그들의 선거운동도 힘들어지고 있다.

 

 

5일 서울 역삼동 삼성 본관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제18대 대통령선거 5번 김소연 후보의 유세차량이 도착한 오후 3시에는 하얀 눈보라가 몰아쳤다.

 

대원관광, 아시아나관광 버스 수십대가 삼성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건물 처마 밑에서 여남은 명이 ‘집회 소음 발생으로 인한 행복추구권 침해 및 업무방해 행위 근절 촉구 결의대회’라는 펼침막을 들고 도열했다. 수십명은 눈삽질을 했고 경찰 100여명은 인도로 올라서려는 유세 대열을 막고 있었다. 유세차량의 확성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경찰이 유세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도로 올라가서 유세할 수 있도록 비켜주십시오.”

 

“박근혜가 와도 이렇게 할 건가요?”

 

50여명 되는 유세 대열은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의 유족들, 강정마을 지키기 운동원들 그리고 철거민들이었다. 경찰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대선후보와 경찰들의 몸이 엉켰다. 1시간 동안 5미터를 나아갔고, 인도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 절반은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경찰이 막고 있었다. 김소연 후보가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갔다. “박근혜가 와도 이렇게 할 건가요?”

 

이번 대선에는 진보후보들도 있다. 기호 3번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그리고 ‘노동자 대통령’을 표방하는 기호 5번 김소연 후보(무소속)와 기호 7번 김순자 후보(무소속) 등 셋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양강 구도에 가려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국회에 6석을 가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 후보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4일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과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6억원 문제 등을 제기해 박 후보를 코너에 몰아넣으면서부터다. 이정희 후보의 활약이 화제에 오르자, 통합진보당은 이튿날 예정된 지방유세를 서울로 급히 변경했다.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을 조중동과 방송만 보니 몰랐습니다. 어제 우리 국민은 역사 공부를 했습니다.”

 

5일 낮 12시40분 서울 여의도역. 선거운동원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를 1분에 한 번씩 말했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한층 고무되어 있었다. 이정희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함성이 도심을 울렸다. “12월19일 반드시 박근혜가 청와대 들어가는 걸 막겠습니다. 박근혜를 떨어뜨리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루겠습니다.”

 

11월25일 김순자 후보는 서울 강남의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향했다. 지난해 여름 은마아파트 일대에는 170㎜의 폭우가 쏟아졌다. 60㎝ 높이까지 물이 찬 지하실에서 물을 퍼내던 청소노동자가 감전돼 숨졌다. 김순자 선거운동본부는 “아파트 관리업체는 근무 중 사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고, 주민들은 아파트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 사건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밝혔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인 김순자 후보는 아파트 정문에서 분향소를 설치하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 그의 첫 단독 선거운동이었다.

 

 

이정희, 김소연, 김순자 후보
지지율 다 합해도 최대 2%
양강구도에 가려 존재감 미미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로
진보정당 사분오열 눈총받아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민주정부 10년땐 왼뺨 맞고
이명박 정부땐 오른뺨 맞아
이번 선거는 본격적인
노동자 정당운동의 출발선”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이래 진보진영은 독자후보를 내왔다. 1987년엔 백기완 후보(무소속)가 김영삼 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사퇴했고, 1992년에는 ‘민중후보’로 완주하며 24만표를 획득했다.

 

1997년부터는 진보정당 창당운동과 맥락을 같이했다. 1997년 권영길 후보를 낸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졌고, 2002년과 2007년에도 연달아 권 후보가 대선에 나섰다. 2000년대 총선과 지방선거에 선전하면서 진보정당은 제도권 안착에 성공했고 지난 총선에는 통합정당인 통합진보당으로 나서 국회의원 13명을 확보하며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다르다. 진보정당의 전열은 사분오열됐고, 진보후보들은 난립했다. 그동안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지지 표명을 미루고, 노동운동가들은 문재인, 안철수와 진보후보 세 명으로 흩어졌다.

 

 

5일 낮 서울 여의도 유세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유세를 벌이고 있다. 이 후보는 전날 밤 대선후보 토론회에 이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동자들마저 이번엔 문재인 찍자고…

 

가장 큰 원인은 진보세력이 합당해 만들었던 통합진보당이 지난 총선 부정경선 논란으로 내분을 겪으면서다. 옛 진보신당 출신들은 진보정의당으로 갈라져 나왔다. 통합에 참여하지 않은 진보신당도 무기력에 빠졌다. 총선에서 국회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대통령 후보도 내지 못했다. 3일 윤현식 진보신당 정책위원(비상임)이 말했다.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예전에 노동자들은 누굴 찍든 간에 적어도 선거운동 기간에는 진보정당에서 나왔으니 찍어야 하지 않겠냐고들 했거든요. 그런데 요즈음엔 아예 대놓고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안 되니 문재인 찍자’고 그래요. 진보후보의 존재감이 없어진 거죠.”

 

이번 정부 들어 주요 선거전략으로 떠오른 야권 단일화는 진보정당한테 ‘양날의 칼’이었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선 민주당과 역할 분담으로 선전하는 토대가 되었지만,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치공학적인 연대’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야권 단일화의 기조는 대선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네 명의 대선후보가 나와 한 명(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은 후보등록일 직전 사퇴했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사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박근혜 저격수’로 콘셉트를 잡았다. 이 후보는 선거일 전에는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수정 통합진보당 부대변인은 “당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진보적 정권교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이 후보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소연, 김순자 후보는 ‘후보 사퇴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김소연 후보는 기륭전자 파견노동자로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사람이다. 전국의 장기투쟁 사업장 활동가들이 모여 ‘선거운동본부’가 아닌 ‘선거투쟁본부’를 꾸렸다. 쌍용차노조의 이창근 기획실장,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 점거농성을 지원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등 유명 활동가들이 투쟁본부에서 일하고, 1만5000명의 진성당원이 있는 진보신당이 김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김순자 후보는 진보신당 내의 옛 사회당 계열 인사들과 정치조직들이 결합해 선거운동본부를 꾸렸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 안효상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이 선거대책위원을 맡았다. 김순자 후보는 울산과학대에서 청소노동자를 10년째 해왔다. 2007년 계약해지를 당해 부당해고 철회농성을 시작하면서 역시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정리해고제 폐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재벌재산의 사회화 등이 민주당과 다른 이들의 공약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두 후보를 합쳐봐야 0.5%를 밑돈다.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두 후보도 안다. 그들은 왜 선거에 뛰어들었을까? 5일 김소연 후보의 삼성본관 유세가 끝난 뒤, 후보 동행팀에서 일하는 이창근 실장에게 물었다.

 

“(여야가) 서로 이명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엠비(MB) 공포를 유포시키며 단일화로 몰아가는 분위기입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민주정부 10년 때에는 왼손으로 뺨 맞고, 이명박 정부 때에는 오른손으로 맞은 격이거든요. 본격적인 노동자 정당운동의 출발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를 정점으로 진보정치는 극적으로 갈라졌다. 조직적으로는 좌우로 갈라졌고, 전략적으로는 야권 단일화로 갈라졌고, 현시점에서 후보를 내는 게 옳으냐를 두고도 의견이 갈라졌다. 2007년까지만 해도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내는 데 이견이 없었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1997년부터 진보후보는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특별히 2012년이라고 해서 진보후보의 독자성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진보후보가 언제부터 정권교체 이야기하면서 단일화와 중도사퇴 이야기했는가”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김순자 후보(무소속)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에서 대선후보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김순자 후보 선거운동본부 제공

 

 

진보정당 지지해 온 진중권의 독설

 

그럼에도 진보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과거 어느 대선보다 바닥을 긴다. 이정희 후보는 1%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나머지 두 후보의 지지율을 더해봐야 진보후보 지지율 합계는 최대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에 나선 권영길 후보는 각각 3.9%와 3%를 득표했다.

 

진보정당을 지지해온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올해 처음으로 ‘보수야당’을 지지한다. 6일 진 교수는 “진보진영이 후보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자기 위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김소연, 김순자 후보의 경우 운동을 할 건지 정당정치를 할 건지 분명히 해야 한다. 선거운동은 표현주의적 예술활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내분이 대중들이 진보후보한테 등을 돌리는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자기 혁신에 실패한 진보정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 또한 적지 않다. 사실 김소연, 김순자 후보와 비교적 이념적 거리가 가까운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이 없는데도 ‘진보진영’으로 묶여 인식이 안 좋아지는 등 억울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윤현식 정책위원의 생각은 달랐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입니다. 제대로 된 정치이념을 못 가져갔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난 거 아닐까요?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해 2008년 분당해 나온 진보신당 또한 새롭고 멋있는 정당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진보신당의 한 전직 간부는 당이 김순자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당원들로부터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노동자 대통령 룰라도 5수 만에 대통령이 됐습니다. 정치인으로서 훈련되지 않은 단위노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다니요? 좌파가 실력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6일 밤 김소연, 김순자 후보가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섰다. 중소공장의 파견노동자, 대학의 청소아줌마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 텔레비전에 나온 것이다. 이정희 후보가 텔레비전에서 처음 ‘다카키 마사오’를 말한 것처럼, 두 후보에게서 터져나오는 날것의 서민 목소리를 듣고 ‘후련하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이들이 김소연과 김순자 후보를 찍을지는 미지수다. 윤현식 정책위원이 말했다.

 

“국내에 진보좌파가 몇명이나 있는지 밝혀진 게 없어요. 자기 이념과 정책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데, 항상 차선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잖아요. 한 번쯤은 자기 이념과 정책에 맞는 후보를 속시원하게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결선투표제를 하면 적어도 1차 투표 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잖습니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