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너는 감독이냐 활동가냐

참된 2012. 4. 26. 21:13

너는 감독이냐 활동가냐  한겨레 21 [2012.01.16 제894호]

[박은선의 즐거운 혁명] 예술과 실천의 경계를 뛰어넘는 특성 지닌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한국 고유의 영상 액티비즘 이해하는 비평은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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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투쟁을 기록한 <당신과 나의 전쟁>,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어머니> 등을 연출한 태준식 감독이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평 체계가 전무함에 대해 페이스북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태 감독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또는 영상 액티비즘이라는 영역에서의 창작 행위가 연구된 바 없다”며 “그것이 지금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의 원인”이라고 적었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작품들은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나 예술성으로 환원한다면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일반적으로 활동가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활동가 출신으로서 기록과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거나, 혹은 작품을 만들다 저도 모르게 현장에 들어가 활동가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작품을 제작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느끼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태동한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는 예술적 실험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향과 달리 액티비즘의 강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사실은 1990년대 이후 약해지던 그 전통을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켰다). 아직껏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주요 관심사는 주류 미디어들이 무시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 현장과 함께 호흡해 대중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은 무척 바빴고 1980년대 이후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지난해 희망버스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에는 부산의 미디어 활동가 그룹 ‘플로그 티비’가 있었다. 그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함께 숙식하며 김진숙 지도위원의 육성을 녹음하고, 편집하고, 인터넷에 올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부산 영도로 모여들게 했다. 최근 그들은 희망버스의 활동을 기록한 영화 <버스를 타라>를 완성해 공동체 상영을 시작했다.

 

4대강 공사의 엽기적 행태를 다각도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공동제작팀 ‘강(江)-원래’는 10여 명의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연대해 22편이 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 재작년 쌍용자동차 투쟁을 그린 <당신과 나의 전쟁>은 희망텐트에 1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끌어들었다. 그 밖에도 서울 용산과 홍익대 앞 국숫집 두리반, 제주 강정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은 현장의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싸우며 만들어낸 뛰어난 작품들이다. 작은 카메라로 만들어져 불완전한 화질과 음질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 작품들은 자칫 묻혀버릴 수 있던 사건을 꼼꼼히 기록해 큰 반향을 남겼고, 관객에게 물질주의를 뛰어넘는 삶을 꿈꾸게 했다.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다양한 운동의 흐름을 기록한 책 <뉴욕열전>의 저자 이와사부로 코소는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예술과 액티비즘은 노동의 가치를 물질의 교환 대상이 아닌 참된 일하는 즐거움으로서의 노동을 추구하기 때문에 쌍둥이와 같다”고 했다. 창의력과 혁명마저 상품이 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하는 적극적 움직임인 액티비즘과 예술은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다.

 

세계 예술철학의 흐름은 예술과 운동이 만나 새로운 대중을 만드는 한국의 예술-운동 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도 건설적 피드백을 받는 일이 드물다면 이 독창적 흐름은 소진될 위험이 높다. 태준식 감독의 우려처럼 현장과 호흡하는 특이점을 지닌 독립다큐멘터리의 독특한 구조를 이해하는 풍부한 영화 담론이 나왔으면 한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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