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마치고 농촌으로 간 언니들, 꿈을 이루다
[無공해 세상을 꿈꾼다②] 다큐멘터리 영화 <땅의 여자>와 권우정 감독
10.09.04 20:34 ㅣ최종 업데이트 10.09.04 20:34 성하훈 (doomeh) 오마이뉴스
땅의?여자, 다큐멘터리, 유기농
9월 9일, 귀농 여성 3명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가 개봉합니다. 그들은 다큐멘터리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2010년 대한민국을 사는 농민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땅의 여자> 개봉에 맞춰 다큐멘터리 배급사 '시네마달'이 4대강 사업에 신음하는 팔당 유기농민들, 대한민국 여성 농민들의 삶, 귀농 등에 대해 '無공해 세상을 꿈꾼다'란 타이틀로 연재기사를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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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 사는 세 명의 여성 농민이 우연찮게 한 영화의 주연이 된 것은, 다 홍콩 원정시위 때문이었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농촌에 들어왔다는 동질감으로 친하게 어울렸는데 WTO 반대를 위해 홍콩에 가 시위를 벌이던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의 눈에 띈 것이다.
감독은 유달리 활개를 치는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영화로 찍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비료 치지 않고 무공해로 담은 영화는 그렇게 출발했다.
서울에 사는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세 여성농민이 살고 있는 진주와 합천, 창녕을 줄기차게 왕복했다. 아예 1년은 부근에 집까지 얻어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녔다. 영화를 찍는 작업은 사실상 농사나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를 내려놓을 때면 틈틈이 호미질을 했고 토마토 따는 일을 도왔다. 덕분에 마늘 농사 짓는 법도 제대로 배우게 됐다. 그것은 영화에 담으려는 농민들과 소통 방식이었다.
"소똥을 치우고 있는 곳에 가서, 그냥 카메라 들고 있는 게 웃기잖아요. 남들은 소똥 치우는데, 몇 시간씩 카메라만 들고 서 있을 수도 없고요."
소똥을 함께 치우고 농사일을 거들던 감독은 농민들로부터 긍정적 시선을 받았고, 결국 농민들의 삶을 밀착해서 제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가 2년의 시간을 공들인 영화는 유기농 다큐로 완성됐다.
그런데, 나중에 뒷말로 들은 것이지만 감독이 영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농민들은 사실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30대 초반 여성이 혼자서 카메라 하나만 덜렁 들고 나타나니 '저게 무슨 영화감독이냐' 싶었던 게다.
그냥 일을 해야 하니까,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에서 어느 날 젊은 여성이 나타나 관심을 보이니 은근슬쩍 영화를 찍게 해 주겠다는 핑계로 꾀어낸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영화에 출연해주고 대신 일손을 얻는 일종의 품앗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2년에 걸쳐 찍은 310시간 분량의 촬영 테이프가 95분으로 편집돼 나온 것을 보고서야 '아 감독이 맞구나' 뒤늦게 인정해 줬다고 한다.
세 명의 여성 농민 삶에 관심 갖는 도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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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대학로의 예술영화상영관 '하이퍼텍 나다'에서 그 영화와 감독, 주연 배우들과 첫 만남이 이뤄졌다. <땅의 여자>와 권우정 감독, 그리고 농민 배우가 그들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 수상 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고 잇달아 두바이영화제까지 진출한 영화가 관객과 본격적인 만남을 앞두고 시사회를 통해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성 농민을 조명한 <땅의 여자>에는 농촌의 현실뿐만 아니라 개발과 파괴, 공해에 찌들어 있는 세상의 위협이 투영돼 있다. 한미FTA로 위협을 느끼는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정치화 문제, 그 가운데서 땅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각오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짚기보다는 생활의 한 단면을 비추며 발랄한 영상으로 말한다.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가볍고 산뜻하게 만든 것이다. 이유는 초점을 여성 농민의 일반적 생활에 맞췄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못한다 구박 받으면서도 농민회 활동에는 열성으로 참여하고, 여성 농민(거의가 할머니)들에게 트로트 가요를 가르치러 다니기도 하고, 농민대회 참석을 못하게 막는 경찰 앞에서 노래자랑을 벌이는 모습 등은 그저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덕분에 "영화를 먼저 본 도시 여성들이 농촌 생활에 관심을 보일 정도"라고 감독은 말했다.
"농촌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라 봤는데 오히려 도시 여성들, 특히 젊은 층에서 관심이 많더라고요. 농촌을 너무 이상화해서 보거나 아니면 너무 힘들게 보거나 하는 측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다 똑같은 현실의 문제라고 봐요. 힘든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고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 것이죠. 특별하게 꾸미거나 해서 리얼리티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니고 각자의 문제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거든요."
다큐멘터리 영화에 의도적인 연출이나 재연 장면을 쓰는 경우들이 종종 생기고 있지만, 감독은 그런 것을 다 배제한 채 아주 자연스런 일상적인 삶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래서 어느 순간 농민 배우는 카메라를 보고 "와 찍는데?"라고 묻는다. 무공해적 삶을 지향하는 농민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데는 그만큼 출연자들의 힘이 컸다.
'농촌 총각과 결혼하겠다' 고등학생 때 결심이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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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의 변은주씨는 고등학생 때 한 다짐이 결국 씨가 되고 말았다. 농촌 총각이 장가를 못 가서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며 '내는 농촌 총각과 결혼할끼라' 결심한 게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 내가 미쳤지'라고 한숨을 내쉴 때도 있지만, 대도시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남편을 따라 들어와 농촌의 아낙으로 눌러앉게 됐다.
일 못한다는 타박에, 집안의 대소사 결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서운함에, 분가를 강행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보는 시부모님의 시선에 힘들 때도 많지만 농사꾼이 된 것을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꿈을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합천의 강선희씨는 운동이랑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였다. 대학 다닐 때부터 '농촌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바탕이었다. 지난할 수 있는 삶을 일찍부터 결심한 것이었다.
만만치 않고 어려움 가득한 현실이 앞에 닥쳤지만 땅은 그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삶이다. 농사는 기본이요, 공부방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역 농민들을 추스르는 일도 모두 하나같이 벅차지만 땅의 여자는 오늘도 묵묵히 트랙터를 몬다. 젊을 때의 생각이 기성세대 소리를 듣는 와중에서도 오염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주 소희주씨는 대학 시절 농활을 다니며 농민들의 값진 땀방울에 반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진주의 한 농가로 시집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농민운동을 돕다가, 지금은 땅의 여자로 정착했다.
하지만 1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서툴고 미흡한 부분이 더 많다. 그래도 농촌은 그에게 로망이다. 농사를 통해서 맺어지는 관계들, 그게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그에게 농촌은 어쩌면 딱 맞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소를 키우고 토마토를 따면서도 때론 남편 혼자 일하게 놔두고는 농민운동을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닌다.
"좌절하지 말고 자기 위치 안에서 꿈을 풀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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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정 감독은 유기농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이 이뤄낸 꿈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농촌으로 들어온 이들 세 여성은 스스로 꿈꾸던 목표를 이뤄낸 사례였다"며 "그런데 요즘 20대들에게 사회가 그런 꿈조차 막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갖고 있는 꿈을 포기하지 말고 현실에서 찾았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는데, 요즘 사회는 20대들이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게 막고 있잖아요."
꿈을 꾸라는 것은 현실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자는 감독의 각오이기도 하다. 우연찮게도 한 편의 영화에 우리의 시대상이 여러모로 연결돼 있다. 농민들에게는 농촌의 삶을 붕괴시킬 수 있는 한미FTA가 위협이고, 같은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팔당의 농민들에게는 4대강이 위협이다. <땅의 여자>에겐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영화 지원금을 전부 없애며 일방적 옥죄기를 하는 것이 위협이다.
그래서 감독은 "힘들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꿈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 안에서 풀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영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연대다. 여성 농민 셋은 학교 때부터 생각을 나눴고, 농촌에 와서는 농민회를 매개로 연대하고 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들이고, 한 사람의 어려움을 바로 눈치챌 만큼 그 연대는 끈끈하다. 덕분에 감독도 이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촬영 중간에 제작비가 부족했는데, 출연진이 돈까지 꿔주며 도왔다고 한다. 출연자가 제작자의 역할까지 감당해 줬던 것. 영화제에서 받은 상금으로 이를 갚을 수 있었지만 감독에게 큰 힘이 됐음은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인 듯 여성 농민을 통해 드러나는 농촌의 모습에는 희망이 있다. 바른 세상을 꿈꾸며 거친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 농촌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무공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담겨 있었다.
"언니들의 삶이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이렇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하잖아요."
여성 농민 "아내한테 어찌 저럴 수가" - 남성 농민 "남편 참 착하게 사네" <땅의 여자>, 농촌과 농민을 향한 감독의 호기심 어린 시선 | ||||||||
2001년 <농가부채특별법 그 후, 우리 농업의 살 길은 무엇인가>, 2003년 <개방농정의 시대, 2001 농촌보고서>, 2004 <농가일기>, 2006 <우리가 홍콩에 간 이유- WTO 투쟁보고서>, 2009 <땅의 여자>
권우정 감독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는 모두 농촌에 맞춰져 있다. 대학시절 16번이나 농활을 다녀올 만큼 농촌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농촌의 쇠락한 현실과 도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갖고 있는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보고자 했던 마음이 그가 농촌 이야기에 천착하게 된 이유였다.
농촌과 농민들을 전문적으로 다뤄왔다고는 하나, 농민들의 삶을 찍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유기농 영화로 만들어낸 <땅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부부 간의 갈등을 꾸밈없이 담아내 해외 영화제에서는 몰래 카메라로 찍었냐는 질문까지 받기도 했다지만, 촬영 도중 한 출연자가 큰 아픔을 당했을 때 카메라를 들이댄 것 자체가 사실 폭력적이었고 힘든 일이었다고 감독은 토로했다.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땅을 일구며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다 아픔을 겪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들을 영상에 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은 작업이었다.
농민의 삶을 찍은 작품이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본 농민들의 시각은 제각각이라고 한다. 영화를 통해 변은주씨의 가정생활이 드러나자 여성 농민들이 남편을 둘러싸고 "어떻게 아내한테 저렇게 할 수 있냐"며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남성 농민들은 변씨의 남편에게 "참 착하게 산다"며 격려할 만큼 남녀 농민들 간 시각차가 있다는 것.
<땅의 여자>는 주요 영화제 수상 이후 주가가 높아졌다. 처음 공개된 후 개봉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렸지만. 개봉관이 적고 그나마 시간이 조금 흐르면 교차 상영하는 곳도 많아지는 것은 독립영화로서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어려움이다.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유기농 삶이라 불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오는 9일 개봉하며, <오마이뉴스> 최인성 기자가 조연출로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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