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이게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일 줄이야

참된 2012. 4. 14. 21:49

  
오마이뉴스노조 주최로 2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상영된 영화 <어머니>를 만든 태준식 감독이 참석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정민

이게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일 줄이야
다큐멘터리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의 마지막 2년
12.03.22 08:59ㅣ최종 업데이트 12.03.22 12:01ㅣ이정민(gayon), 이현진(mysyung)  오마이뉴스
태그: 이소선, 인디스토리, 태준식, 어머니, 전태일
  
이소선 어머니가 촬영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뒤로 아들 전태일의 그림과 옛 시절의 사진들이 벽을 메우고 있다.
ⓒ 인디스토리
태그: 어머니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그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40년 전, 정작 친아들 전태일을 불길 속에 잃은 이소선 여사는 대신 수많은 노동자를 자식으로 얻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들 편에서 어머니가 돼줬다.

 

<어머니>(감독 태준식)는 이소선 여사의 생전 2년여의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2009년부터의 기록은 2011년 9월, 주인공이 운명하면서 끝을 맺었다. 본의 아니게,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유언이 돼버렸다. 그래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 덕분에, 오히려 어머니는 화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치열했던 투쟁의 시간보다, 평범한 어머니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연속극 방영 시간을 적은 메모지라든가, '고도리'용 잔돈을 모아놓은 지갑 등에서 보이는 소소한 일상에 웃음도 난다. 하지만 아들 전태일을 향한 마음,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에 대한 말 한마디에서도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은 충분히 느껴진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2010년 MBC 파업 당시 현장을 찾아 연대사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인디스토리
태그: 이소선

 

<어머니>에서는 백대현과 홍승이가 출연하는 연극 <안녕, 엄마>의 프로덕션 과정도 담았다. 전태일과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날을 그린 이 연극은 아들이 돌아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대만인 연출자 왕모림과 배우들은 어머니에게 이 장면을 꼭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이소선 여사는 끝내 연극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머니>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이소선 여사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떠나보냈던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이 장면은 어머니 장례식 때도 기록에 대한 책임으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태준식 감독을 펑펑 울게 만들었다.

 

"스피커에서 내 귀에 들리더라고. 태일이가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분신을 해 위독하다고. 그래서 내 소리를 들으니까,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아들과의 약속, 지킨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답게 못 해준 것이···"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고 이소선 여사가 스카프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소선 여사는 아들 전태일의 분신 후, 40여 년을 노동자들을 위해 살았다. 다큐멘터리 <어머니>는 그녀의 마지막 2년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 인디스토리
태그: 어머니

 

태어날 때부터 이름조차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작아 아버지가 '소선'이라고 부른 소녀는 자라 누구보다 강한 만인의 어머니가 됐다. 아들을 먼저 보낸 후에도 살아남아, 평생 노동자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을 지킨 어머니는 말한다. "죽지 말고 싸워라, 하나가 되면 이긴다."       

 

"어머니는 말이 아닌, 온몸으로 삶을 보여줬다"

 

<오마이뉴스> 노동조합 집행부의 주최로 다큐멘터리 <어머니>를 개봉 전에 만나는 시간이 20일 저녁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어머니>의 연출자인 태준식 감독과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의 김화범 제작팀장이 참석했다. <어머니>는 4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음은 태준식 감독과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오마이뉴스노조 주최로 2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상영된 영화 <어머니>를 만든 태준식 감독이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태그: 태준식

 

- 이소선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기획 의도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 않나. 현대사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전태일이라는 인물의 어머니니까. 개인적으로는 노동 운동을 하는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활동하다 보니, 2000년대 이후 노동 운동이 수그러들면서 기대고 싶은 마음에 이소선 어머니를 찾아 갔다.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서고 난 다음에는 정치적 피로감이 쌓인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그 인물로 어머니를 꼽았다."

 

- 아무래도 돌아가시기 3년 전의 모습을 담다보니, 과거보다는 현재 이소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어머니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이런 질문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돌아가실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 과거 노동 운동에 대한 큰 업적을 연대기로 작업하지 않았느냐고들 묻는데, 어머니를 뵙고 그 생각이 사라졌다. 과거의 행적보다는 어머니라는 인간적인 향기를 먼저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오래 두고 어머니와 친해져야겠다 싶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이런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는 것이 가장 아쉽다. <어머니>는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사전정보만 가진 분들이 봐도 괜찮다. 어떤 분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발화되는 계기로 보여 졌으면 좋겠다."

 

- 일상의 이소선에 중심을 맞춘 이유가 있다면?

"아무래도 노동운동은 일반인들에게 비호감이다. 조중동이라는 언론의 공세도 있겠지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없는 언어 때문이기도 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다룬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들 때도 투쟁하는 장면을 굳이 넣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이 꼭 투쟁 현장을 보여주는 것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를 위한 영화가 아닌 대중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대중들에게 예쁘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하다.

"당연히 안 한다고 하셨다. 내가 찍을 게 뭐가 있냐고. 그런 말씀을 촬영 후 1년 지날 때까지 계속 하셨다.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도 계속 찾아 갔는데, 2010년에 진짜 영화를 만들 거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승낙을 하셨다. 그 이후부터는 안 오면 가끔 '왜 안 오냐'고 전화도 하시더라."

 

  
지난해 9월, 이소선 여사의 민주사회장 영결식 현장을 담아낸 사진에서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오열하고 있는 대형 그림을 볼 수 있다.
ⓒ 인디스토리
태그: 어머니

 

- 어머니 말고도 주변인이 여러 명 등장한다. 큰 이야기의 줄기에는 비중이 없을 법한데 다 담은 이유는?

"어머니는 말년에 외로움을 많이 타셨지만, 그 나이 또래 할머니에 비하면 주변에 사람이 많은 분이셨다. 이야기 나누려는 다양한 사람이 찾아왔고, 그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중 중요한 인물들도 인터뷰를 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 장기표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인터뷰 때문에 굉장히 귀찮게 해드렸는데 영화에 담지 못해 죄송하다. 그래서 아직 보여드리지 못했다.(웃음)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 (어머니가 중간에 돌아가셔서) 편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 촬영을 하면 데이터 백업을 하고, 뭐 그런 고민이 가득했다. 그리고 편집 수정을 하는 3개월 동안 내게는 화면 속에서 살아계신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일 마지막 부분을 편집할 때는 (눈물을) 왕창 쏟아냈다. 그런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돌아가신지, 안 돌아가신지."

 

- 카메라를 내려놓고 어머니의 손톱을 잘라주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 장면을 담고 싶었는지?

"열어 놓아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촬영했다. 어머니가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나오는 상황과 표정이 관객들에게 전달할 중요한 소스라는 생각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개인적으로 손톱 잘라드리는 장면은 꼭 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무대에서 연설하는 어머니를 보면 참 강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 똑같은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지를 많이 하신다.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오마이뉴스노조 주최로 2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상영된 영화 <어머니>를 만든 태준식 감독이 참석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정민
태그: 태준식

 

-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위안을 많이 받았나?

"나는 특별히 사람과의 관계가 좋거나, 표현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촬영할 때는 물론이고, 개봉을 앞두고 가면 갈수록 어머니를 좋아했고, 위안을 받았다. (영화에도 담겨 있지만) 크레인 농성을 하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어머니가 많이 걱정했는데, 사실 내 걱정을 가장 많이 했다.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어머니는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보여준 분이다. 어머니의 삶에서는 짧은 시간 뵈었지만 이렇게 기록하게 된 것이 영광이다. 돌아가신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