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고용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웠던 비정규직들이 요구한 것은 7월 22일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대로 정규직화였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은 끝내 정규직화를 얻어내지 못하고 농성을 풀었다.
▲ 9일 오전 농성 조합원이 이탈한 자리는 깨끗히 정리 돼 있었다. |
농성해제는 급격하게 진행됐다. 가장 고비라고 했던 8일 현대차 정규직 노조(지부)의 파업 찬반 투표는 조합원들에 큰 압박은 아니었다. 애초 조합원들은 정규직 노조의 연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현대차지부가 확대운영위에서 선농성해제를 결정했을 때도 조합원들은 ‘이제 용역이든 공권력이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 될 것“이라고 지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리고 8일부터 식사가 한 끼도 들어오지 않았다.
25일 동안 침낭도 없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조합원들에게 김밥 한줄 조차 끊긴 것은 큰 고통이었다. 실제 많은 조합원들은 투쟁도 먹어가면서 해야 하다는 자조 섞인 얘기와 함께 애초 지부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원치 않은 단식 투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성장은 8일 저녁부터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각오를 했고 식량반입 중단도 예고 됐는데도 의지를 보이던 조합원들이 무너진 것은 사쪽의 8일 농성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협박이 농성자들의 가족을 덮쳤다. 여기에 조합원들은 배고픔이 겹쳐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 농성 25일째 비정규직 지회는 교섭을 위해 농성해제를 전격 결정했다. |
"나를 지지해 주던 가족과 처음 다퉜다"
1공장의 한 조합원은 “저희들은 손배나 가압류가 별로 두렵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24일 동안 나를 믿고 꼭 정규직이 되라고 지지해 주던 아내나 부모님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이 조합원은 그날 처음으로 아내와 싸웠다.
엔진 변속기의 다른 조합원도 “오늘 빠진 상당 수 조합원들이 손배 가압류 때문에 엄청난 전화에 시달리는 것을 봤다. 그래도 잘 버티는 것 같더니 하나둘 빠져 나가더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 8일엔 회사와 일부 정규직 대의원들의 전방위적인 협박과 회유 공세가 있었다고 쟁대위는 밝혔다. 여기에 언론에 보도 된 손배와 가압류, 부상 등을 염려한 가족들의 전화공세도 엄청난 심적 부담을 줬다. 1공장 조합원은 “가족들이 이젠 정규직화도 필요없고 몸만 안다치게 나오라는 전화에 솔직히 나도 농성장을 나갈 생각을 먹었었다”고 토로했다.
8일밤 조합원들의 농성장 이탈은 오후 5시에 있었던 보고대회에서 이상수 지회장의 발언에서도 감지됐다. 이날 이상수 비정규직 지회장은 “농성장 상황이 어렵지만 투쟁을 원하는 동지 있다면 끝까지 가겠다”면서도 “결단의 시기가 다가온다. 결단을 할 때는 과감히 결단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개인적으로 조합원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볼 수 없다. 우리 투쟁이 정당한데 피를 흘리면서 아픔을 느끼며 갈 이유 없다. 지회장으로써 동지들이 무사히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할 것이고 이후 이 노조조직이 보존되고 동지들이 현장에서 현장의 주인으로써 설 수 있는 그런 모든 방식들을 고민하여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회장은 또 “그때까지 힘들더라도 동지들께서 함께 이곳을 사수 했으면 좋겠다”며 “지금 갖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우리가 최종선택 까지는 일말의 시간이 있다고 보고 잇다. 그때까지 동료들과 격려하면서 힘들게 24일 동안 투쟁한 것을 다시 다지면서 힘차게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이 같은 이상수 지회장의 발언은 이미 상당수 조합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5시 보고대회가 끝나고 밤 9시 30분께 어둠속에서 10여명이 가방을 메고 농성장 입구 계단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 사업부에서 상당수 조합원들이 이탈을 한 후였다. 이때부터 지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하루만 버티자고 설득에 들어갔다. 그리고 개별적인 이탈이 계속 되자 11시 10분께 다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상수 지회장은 “지금부터 저희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사측에 빌미를 제공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며 “사측이 갖가지 행위로 우리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내용을 알고 잇다. 저희들이 여기 올라올 때 하나 되서 올라왔듯이 내려가는 것도 하나 되서 내려가야 힘을 발휘 할 수 있다”고 이탈 방지를 호소했다. 이 지회장은 이어 “내일 오전 농성장 총회를 실시하고 이후 방향에 대해 결정하겠다. 그때까지 이 농성장을 버티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사라진다. 내일 어떤 형식이든 교섭창구를 마련하겠다. 24일을 버텼는데 마지막에 끝을 내서 아무것도 못 가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일 오전까지만 버텨 달라”고 밝혔다. 일부 조합원들들은 이날 밤에 짐을 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농성장 유지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 8일 오전 농성장 풍경 |
보고대회가 끝난 후 한 조합원은 이어진 사업부별 간담회에서 “조합원들 이탈이 있어도 나라도 끝까지 남겠다. 여기 100명만 있으면 용역들도 못 들어온다. 여기서 몇 일 만 더 버티면 반드시 회사가 교섭에 나설 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밝히기도 했다. 다른 조합원은 “3주가 넘자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렇게 지치니까 전엔 사측의 문자나 협박도 신경이 안 쓰였는데 나도 지금은 흔들린다. 누가 그러더라. 하지만 우리가 정규직화 열망이 크다면 답이 안보여도 조금 더 버티면 반드시 교섭이 될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어제 오늘 특별히 달라진 상황은 없다. 이미 지부장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사람들이 지쳐서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농성조합원 손배가 진짜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정신이 지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언론이 우리를 나쁜 놈으로 만들었다. 언론 얘기만 듣고 아들이나 남편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한 거다. 우리 어머니도 오늘 유달리 짜증을 내셨다. 농성자만 손배를 때린다고 하니 정규직 안 되더라도 그냥 나오라고 하셨다. 저를 늘 믿고 지지하던 어머니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쩌겠느냐”고 한숨을 내뱉었다.
농성자들의 급속한 이탈 분위기를 느낀 1공장의 한 조합원은 “아무래도 우리의 이번 투쟁은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며 “지금 저 아래 우리자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5년이나 10년 후에 또 우리처럼 싸울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 다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자조 섞인 말을 뱉었다.
남은 조합원 248명 농성사수와 해제 두고 격론, 만장일치 끌어내
다음날인 9일 오전 농성 조합원 총회에 모인 농성조합원은 248명이었다. 애초 200명이 안 될 것 같았던 조합원들이 쟁대위의 이탈 중단 호소를 받아들여 애초 인원의 절반 정도가 남은 것이다.
쟁대위는 총회 토론에 앞서 “현재 밖에 있는 조합원을 안으로 들이는 문제가 쉽지 않다. 어제도 많은 동지가 들어오려 했지만 소수였다. 농성장 내 음식물 반입도 힘들다. 그럼에도 248명이 여기를 지키면 지켜진다. 먹을 게 없으면 단식도 있다. 끌려 나가는 방법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성장 사수를 결정하는 것도 교섭을 하는 것도 동지들의 결정한다. 다만 어떤 결정이 나도 결과에 모든 조합원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총회는 지회가 회사와 교섭에 나서고 교섭결과에 따라 농성해제 여부를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비정규직 지회는 이 같은 결정을 농성 조합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내렸다. 애초 교섭을 하고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가 나오면 조합원 총회를 통해 농성을 해제 한다’는 입장에서 한참을 후퇴하는 안으로 정리가 됐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일단 교섭을 하고 지회장에게 농성해제 판단 권한을 위임하자는 쪽과 끝까지 농성을 해제하지 않고 사쪽의 침탈에 맞서 싸우다 회사 쪽이 전향적으로 교섭에 나올 때 까지 버티자는 쪽이 팽팽하게 의견대립을 이뤘다.
농성으로 버티자는 한 조합원은 “KEC 사태를 찾아 봤는데 그 꼴을 당하기 싫다. 우선 농성해제를 전제한 교섭을 하자는 안은 05년 패배와 비슷하게 된다. 이때까지 싸웠는데 이런 안 자체가 솔직히 쪽팔린다”고 농성유지를 강조했다. 다른 조합원도 “이런 영광스런 투쟁은 꿈에도 몰랐다. 4공장 황인하 동지가 분신으로 항거했고 아직 병상에 누워 있다. 안타깝게 우리는 배고픔과 추위, 사측 협박과 타압에 시달리는 것 같다. 투쟁 가능성 열어놓고 봤을 때 농성 유지 안에 찬성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반면 농성 해제를 주장한 조합원은 “전투력으로 가자고 하지만 저희도 눈으로 봤다. 처음 자존심과 양심으로 여러 이유로 이탈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내려가겠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라고 한다. 배고파 내려가는 조합원들 데리고 어떻게 끝까지 갈 건가. 30일 가까이 있었던 것은 고용불안 때문이었다. 뭣 때문에 싸우는지 생각하자. 해고통지서가 나와 내 자리가 없어진다는데 끝까지 가면 뭐가 남는가. 끝까지 가자고 했을 때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보라”고 반대했다.
시트의 한 조합원도 “이 투쟁을 끝까지 가면 뭐가 남겠냐라는 질문이 많은데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를 또 다른 경로를 통한 교섭창구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건 만의 하나 가정한 경우다. 아무 성과와 내용 없이 마지막 까지 깨지고 내려간다면 고용을 비롯해 모든 부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본다. 다 해고자 투쟁으로 간다면 이후 비정규직 지회 존립 자체가 힘들다고 본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은 농성사수와 해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조합원들이 농성 사수를 결정해도 개별 이탈 가능성이 점쳐진 상태였다. 이상수 지회장은 자신에게 교섭과정에서 농성 해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 위임을 요청했고 조합원들은 받아들였다. 그리고 농성해제는 조합원 총회에서 위임을 결정한지 한 시간여 만에 결정이 났다.
한 조합원은 “일단 이번엔 아쉽게 농성을 접어도 우리에겐 대법판결과 소송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합원들이 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나올 때를 또 다른 카드로 보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농성장을 나가던 한 조합원도 "이번엔 아쉽게 나가지만 다음엔 또 다른 공장을 언제든지 다시 점거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직 우린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5일 동안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던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농성은 일단 사쪽 과의 교섭을 전제로 일단락 됐다. 이번 점거농성은 한국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
2010.12.10 08:34